간혹 지인들에게 전화를 받는다. 곧 양평에 놀러 가는데 걷기 좋은 길이나 맛있는 식당이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것이다. 그럴 때 대번에 추천할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번번이 ‘나도 잘 몰라 미안하다’라는 답을 건넨다. 양평은 내가 나고 자란 곳임에도 가본 곳이나 잘 아는 식당이 그다지 많지 않다. 굳이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유달리 빼어난 어머니 음식 솜씨 때문이 아닐까? 계절마다 냉이, 달래, 엄나무 순, 민들레 겉절이 등 갖가지 나물 반찬에, 고기며 생선요리를 척척해 주시는 어머니 덕에 웬만한 식당에선 맛있다는 소리 하기가 쉽지 않았다. 외식을 한다 해도 마음에 드는 곳만 반복해서 가는 가족 성향 때문에 새로운 식당을 다녀 볼 기회도 별로 없었다.
어머니의 자질을 물려받았는지 나도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밖에서 맛있게 먹은 음식을 따라 해 보는 것도, TV에서 배운 레시피대로 음식 만드는 일도 모두 재미있다. 한 가지 단점은 그러다 꽂히는 게 있으면 같은 메뉴를 몇 날 며칠 동안 계속한다는 것이다. 한 번은 튀김에 푹 빠져서 고기, 새우, 연근 등 갖은 재료를 날마다 튀겨냈고, 간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만든 패티로는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족히 2주도 넘게 만들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같은 메뉴를 며칠씩 먹어야 했던 가족들은 조금 고달팠을까? 어쨌든 음식을 만드는 나도, 함께 먹던 가족이나 이웃도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슬슬 힘에 부친다. 맘만 먹으면 뚝딱, 한 상 차려내곤 했는데 요즘은 반찬 두어 가지만 해도 어질어질하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레 음식 만드는 일이 줄어드는 반면 외식하는 즐거움은 야금야금 늘어가고 있다.
문제는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를 정하는 일이다. 고민하다가 유튜브에 ‘양평 맛집’을 검색했더니 순식간에 관련된 영상이 줄지어 올라온다. 몇 개 골라 시청했는데 놀랍게도 아는 곳이 거의 없다. 재밌는 건 이런 영상을 올린 유튜버 대부분이 양평으로 이주한 지 겨우 1~2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짧은 기간 거주한 외지인들에게 고향 맛집을 소개받고 있자니 영 체면이 서지 않아 멋쩍은 웃음이 났다. 그래도 관심 가는 곳은 메모하며 열심히 연구한 끝에 꽤 많은 맛집 리스트가 채워졌다.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를 훌쩍 넘기자 간간이 봄 햇살이 느껴진다. 추운 게 싫어 겨우내 머무르던 집에서 드디어 벗어날 용기가 생겼다. 지난 세월은 음식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으니, 이제는 훌훌 돌아다니며 맛있게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더불어 내가 사는 동네를 새롭게 알아가는 기회가 될 듯해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주방을 지키며 수고해 온 사람에게 세상 제일 맛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남이 해 준 음식이라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