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때 듣고 싶은 곡

슬픔과 즐거움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by 나무지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

듣고 싶은 음악이 있는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듣고픈 곡은

저마다 다르리라.


어느 호스피스 병동에는

좋은 오디오가 놓여 있다고 한다.

마지막 가는 길에

환자가 평소 좋아한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

음악을 들을 상황일지 알 방도는 없다.

어느 누가 제 앞일을 꿰뜷어 보겠는가.

만약 생의 끝에서 음악을 들을 기회가 있다면

나는 이 곡을 듣고 싶다.


이 곡은 연주 음악이다.

더 정확히는 재즈 음악이다.

이 곡을 듣기는 중학생 때가 처음이다.

라디오 공익 광고 배경음악으로 나온 곡인데

'플루트 소리'로 시작되었다.


그 소리를 듣는데

윤슬이 넘실대는 느낌이 들었다.

기운과 분위기는 신비로운 듯 좋았다.

태고적 기억을 건드리는 음률이었다.


계절이 달라지고 해가 바뀌면서

라디오에는 다른 공익 광고가 나왔다.

배경음악도 딴 것이었다.

그 곡을 들을 일이 없었다.

곡명은 더더욱 알 길이 없었다.

당시에는 음악 정보를 접할 통로가 적었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되었다.

국내 음반 산업도 발달했다.

곡 이름은 휴대폰 컬러링을 찾다가 알게 되었다.


그 곡에 붙은 이름은

'보사 바로크(Bossa Baroque)'다.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 1934~ )이

만는 곡이다.


플루트 소리로 알았던 곡 도입부 곡조는

신디사이저(신서사이저) 소리였다.

그루신이 실험적으로 연주에 도입했다.

우리의 조용필도 '단발머리'(1979)에서

신디사이저를 사용했다.



데이브 그루신.jpg Dave Grusin의 Night Lines(1984) 음반



지금은 '보사 바로크'를 들으면

바닷가에서 찬바람 맞으며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외롭고 서늘하다.

스산한 기분도 준다.

같은 음악인데 청소년 시절과 다른 맛이 난다.

내 삶도 신산고초를 겪었기 때문일까.


그리움,

웬지 모를 외로움과 쓸쓸함이 뒤섞여 있다.

윤슬의 넘실거림처럼 내 가슴도 너울거린다.

눈물이 고이기도 하고 묘한 쾌감도 스쳐 간다.


이 세상 떠나는 날,

이 곡을 듣는다면 눈물이 날까.

아니면 이 곡 도입부가 끝나고 이어지는

경쾌한 가락처럼 하늘로 가는 길이 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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