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먹은 나이, 내세울 감이 되나
나이는
한국 사회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좋은 현상은 아니다
관계의 실마리를 고작 나이에서 찾아서야 되겠는가.
상대방이 손윗사람뻘이면
말과 행동을 삼가고 존대한다.
손아래뻘이면 업신여기거나 소홀이 대한다.
민주화한 나라에 사는 사람의 마음 자세는 아니다.
진직 대통령 한 분은 기자 회견장에서
대변인에게 반말을 했다.
부하 직원이고 본인보다 나이가 어려서
그랬으리라 짐작한다.
나이가 적다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에게
말을 놓아도 될까? 연배가 낮다고
자기 동생이나 조카는 아니다.
사회에서 맺은 관계는 대부분 계약 관계다.
동동한 관계라는 의미다.
나이와 서열을 엄격히 따지는 집안과 다르다.
집안에서 나이와 항렬을,
학교에서는 학년과 학번을,
군대에서는 계급을 따진다.
그런 문화에 익숙한 곳이 대한민국이다.
이 모든 관계에서 서열이 위인 사람은
아래인 사람을 하대해도 되는 풍토였다.
그 전직 대통령도 이러한 문화 배경 탓에
대변인에게 말을 놓았겠다.
대변인은 국민 대신에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직급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존대해야 마땅하다.
성숙한 어른이고 독립된 개인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아무리 대통령이고 연배가 높으며,
설령 개인적 친분이 있다고 해도
공식 자리에서 반말을 쓰는 건 품격 없는 행동이다.
이 나라는 근대화와 함께 군대화의 길을 걸었다.
조직의 상명하복 문화에 순응하여 처신을 잘하면
사회생활 능숙자 반열에 올랐다.
너나들이와 호형호제는 업무의 효율성과
조직의 단합을 위해 필요하다 여겼다.
서열 문화의 부조리 따위는 눈감았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 개인의 고유성과 존엄성은
억압되어도 참고 넘어갔다는 말이다.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미화하면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존중하고 공경하는 문화는
우리의 미풍양속일까? 생각해 볼 문제다.
나도 좋고 상대방도 좋아야 좋은 것이다.
상대방만 좋고 나는 좋지 않다면 좋은 게 아니다.
억압이나 지배, 부정의일 가능성이 크다.
아래서에서 위로만 작동하는 규범은
예절이나 예의가 아니다.
위에서 아래로도 가동되어야 참된 예절이고 예의다.
우리는 피땀 흘려 나이를 먹지 않았다.
저절로 먹었을 따름이다.
나이 한 살 더 먹기 위해서
혹독한 훈련을 거친 사람은 없다.
시험을 보고 통과한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 흔한 해열제 한 알 못 먹었어도 고열로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우리다.
의학의 발전과 영양, 위생의 개선 같은
사회적 환경이 뒷받침되어서
나이는 감사하게 그냥 '먹어진' 것이다.
내가 절실하게 애써서 얻은 훈장이나 성취는 아니다.
어디 가서 나이로 허세 부릴 까닭은 없다.
고작 나이로 우월감을 맛보려는 짓은 치졸하다.
이 땅은 민주체제보다
왕조체제의 역사가 훨씬 길다.
팔십 년도 안 되는 민주제보다 수천 년 군주제의
뿌리가 더 깊다.
이런 연유로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나이로 위와 아래를 먼저 가리려 한다.
상대방을 나이 상관없이 존재 그대로
공대하는 유전자는 아직 우리에게 부족한 듯싶다.
대한민국은 정치에서 민주화를 달성했다.
반면 개인과 일상은 아직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다.
교수와 학생의 말투가 다르다.
선배와 후배의 말투에도 차이가 난다.
아이와 어른도 대화할 때 같은 말투를 쓰지 않는다.
민주 사회라면 서로 같은 말투를 써야 될 성하다.
'느슨하게 완화한 존댓말'이었으면 좋겠다.
꿈같은 소리다. 하루아침에 될 리가 없다.
대한민국에 상명하복의 기관과 조직이 제법 많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희로애락의 감정은
남녀노소 똑같다.
서로 존댓말로 응대해야 응당하다.
다 같이 노력해서 '개인의 민주화'와 '말의 민주화'를
이룩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지금 당신은 민주화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