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민주화가 되었습니까 2
아홉 살 때,
우리 동네에 한 아이가 이사를 왔다.
키와 몸집이 나와 비슷한 친구였다.
그 아이와 어쩌다가 시비가 붙었다.
그이는 내가 저보다 어린 줄 알고 의기양양했다.
실랑이 끝에 서로 나이를 밝히는 지경까지 갔다.
그 친구는 나보다 두 살이 적었다.
키와 덩치 때문에 나를 본래 나이로 어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30대에는 나를 20대로 착각했고,
40대에는 30대로 오인하기도 했다.
게다가 얼굴이 세월을 우려내지 못하는 바람에
나는 이래저래 어린 사람 취급을 받았다.
동생과 외출하면 나를 동생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글머리를 길게 늘어놓았다.
나이대접 받지 못했다는 넋두리는 아니다.
나이를 잣대로 가늠하고 대우하려는
사람들의 비열함에 몸서리친 경험 때문이다.
어려 보인다고 업신여기는
'어른 사람'들을 적잖이 겪었다.
예의상 그 사람에게 존대는 했지만
속으로 어른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내 나이만큼 그 사람 나이에서 빼버렸다.
그 사람 인격도 그만큼 깎아내렸다.
나이는 자기 노력으로 이룬 성취가 아니다.
나이가 많다고 성숙한 지혜로 영글지는 않더라.
어리지만 책임감 있고 성숙한 사람도 많았다.
나는 집성촌에서 자랐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일가친척이었다.
촌수와 항렬대로 처신해야 했다.
인습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내키지는 않았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정치 사회 교육을 받았다.
그 사이 나라는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었다.
서열과 위계 문화는
집안의 관습으로 남았어야 하지만
민주화한 사회에서도 이어졌다.
군대 생활을 경험한 사람이 많은 한국 사회는
서열 문화를 당연시하는 듯하다.
군 복무를 마치면
민주 시민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군대에서 배운 문화를 사회에 또 이식한다.
지금 한국은 정치 제도만 민주주의지
사회와 일상은 민주주의와 멀다.
수천 년 왕조체제의 유습이 이 땅에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미국 민주주의를 본받았다.
미국에는 왕이 없었다.
노예제도로 신분의 차이는 있었지만
나이에 따른 서열 문화는 없었다.
민주주의를 이식받은 토양이 미국과 달랐다.
어떤 사람이 1945년에 태어났다고 치자.
그 사람이 1945년에 꼭 태어나려고
애면글면하지는 않았다.
태어나 보니 1945년이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그 해에 태어났을 뿐이다.
그런 처지에 1946년생보다 나이가 많다고
우쭐거려서야 되겠는가.
우연히 이 세상에 먼저 나왔을 뿐이다.
자기 위신 세우려고 나이를 들먹일 당위는 없다.
나이는 가만히 있어도 먹는다.
많든 적든 간에
상대방 나이도 존중하고 대접해야 한다.
밖에서 만나는 아이에게 함부로 말을 놓지 말자.
존댓말을 써보자.
인격체로서 한 아이의 자존감이 올라간다.
어른에게만 자존감이 있는 건 아니다.
어른이 예우받기를 원하는 만큼
아이도 존중받기를 바랄 것이다.
아이는 나 다음에 이 땅을 지킬 미래다.
그 미래, 내가 높여 준다면 훗날
더더욱 융성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