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어로서 존댓말과 반말

어느 쪽이 좋아요?

by 나무지

한국어 말투에는 반말과 존댓말이 있다.

존댓말이 일상어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존댓말은 거북하고 어색하다.


서로 존댓말을 하면 서먹서먹하긴 하다.

친밀감이 들지 않는다.

존댓말이 예를 차려서 하는 말이라서 그렇다.


반말을 터면 친하고 편한 사이가 된 듯하다.

격의 없이 지내는 느낌도 든다.

한국인이 태어나서 처음 들은 말은

존댓말이 아니라 반말이다.


"맘마 먹자", "쉬 했구나", "뜨거워, 안돼"

이 같은 말을 들으며 자란다.

반말이 편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어느 시기에 존댓말을 배운다.

존댓말은 태생적으로 터득한 말이 아니고

의도적으로 쓰는 말이다.

삼가고 조심해야 되는 말일 수밖에 없다.



반말로 대화하는 교수와 학생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반말을 주고받는 교수가 있다.

경희대학교 교수 김진해가 그 주인공이다.

김 교수는 반말로 강의하고 학생들은 반말로 질문한다.


서로를 부를 때 이름만 부른다.

'진해야'가 아니라 '진해'로.

김 교수가 강의 시간에 쓰는 반말을

'예의 있는 반말', 즉 평어라고 한다.

평어는 '이름 호칭+반말'이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반말 수업 후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높아졌다.

서로 동등하다는 생각에 교수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고 비판적인 질문도 한다"


학생들은 새로운 언어체계를 익혀야 했으리라.

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다.

김 교수 강의가 아닌 다른 강의에서는

다시 존댓말 체제로 돌아가야 하니까

학생들이 혼란스러웠을 법하다.


김진해 교수보다 평어를 먼저 쓴 집단이 있다.

'디학'이라는 디자인 대안 학교다.

수직적 관계의 경직성보다

수평적 관계의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학교의 공기와 평어가 맞닿았을 듯싶다.


평어는 민음사 문학 2팀에서도 사용했다.

새로운 언어체계를 만들어

실험하고 적용해 가는 시도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평어의 빛과 그림자


평어는 이런 점이 좋다.

일단 짧다. 경제적이다.

말의 타격감이 존댓말보다 크다.

존대를 위해 상호관계를 확인하는

정신적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존대하느라 들어가는 허례의식이 줄어든다.


하지만 반말은 서로 싸울 때도 쓴다.

간단한 접촉 사고로 운전자끼리 시비가 붙는다.

처음엔 존댓말로 하다가 감정이 격해지면

결국 반말로 치닫는다.


반말은 전쟁(싸움)터의 언어이기도 하다.

경제성 면에서 반말은 존댓말보다 우위다.

인간 존중 면에서 반말은 일상어가 되기엔

마침맞지가 많다.


평어를 쓴다고 수평적 관계일까?

상호 존댓말을 써도 관계는 동등하다.

'이름 호칭+반말'인 평어는

영어를 따라한 듯한 인상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

일상어로 쓰는 말을 반말로 인식한 측면이 있다.

그들의 일상어를 존댓말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영어에는 존댓말고 반말의 개념이 없다.

미국은 대통령과 이아가 똑같은 말투를 쓴다.

우리말 "당신이 좋아요", "네가 좋아"를

영어로는 "I like you"라는 한 가지 말투로 하면 된다.


어른과 아이의 대화가 나오는 미국 소설이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다.

이 책을 펼치면 노인 산티아고와 소년 마놀린이

나누는 대화가 나온다.


겸양의 표현이 있긴 하지만

두 사람은 줄곧 같은 말투로 대화를 이어간다.

우리말로 옮긴 <<노인과 바다>>에서는

노인은 반말을 하고 소년은 존댓말을 한다.


예의 없는 존댓말 ㅡ 상호 존대


평어가 예의 있는 반말이라면

느슨한 존댓말을 '예의 없는 존댓말'이라고

칭하고 싶다.


대덕대학교 교수 김미경은 '상호존대'라고 부른다.

상호 존대란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해라' 대신에 '해요'를 사용해서

아랫사람을 높여주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하십시오' 대신에 '해요'를 써서

존대 수준을 한 급 낮추어

서로의 높이를 비슷하게 맞추는 어법을 말한다.


상호 존대에서는 윗사람에게

'께서'와 '-시-'를 쓰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렇다.

- 선생님께서 오십니다. --> 선생님이 옵니다.

- 다 하셨습니까? --> 다 했어요?

- 그분이 주셨어요 --> 그 사림이 줬어요.


말이 좋아 상호 존대지

윗사람에게는 거북하게 들릴지 모를 노릇이다.

그래서 '예의 없는 존댓말'이라고 했다.


상호 존대는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

한국인의 의식 구조상 금방 실현되기는 어렵다.

조금씩 언중들이 변화시키는 길밖에 없다.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은 동갑인데

서로 존댓말을 한다.

애초에 반말을 할 시점을 놓쳤다고 털어놓았다.

존댓말을 쓰는 둘은 아주 친하다,

막역해 보인다. 농담도 한다.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신뢰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존경과 신뢰로 맺어온 두 사람의 관계는

단단하게 유지되리라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일상어 또는 평등어가

반말이 아닌 존댓말이기를 바란다.


김미경 교수는

<<영어학자의 눈에 비친 두 얼굴의 한국어 존대법>>에서 이렇게 당부한다.


"우리가 과거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려면

어른들도 윗사람도 변해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이 위와 아래를 구분하고

그 높이에 따라 존대와 하대가 이루어지는

동방예의지국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윗사람 존대 문화'가 '상호 존중 문화'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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