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대화 후에 쓰다
하지만,
내가 좀 더 유연한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농담을 싫어하고 쓸데없는 소리(마음에 없는 소리)는 잘하지 않는 것이 다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고 딱딱한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얼마 전 밤마다 재워달라고 조르는 아들을 누워서 토닥이다가 문득 궁금한 마음이 들어 귀에 속삭이듯 물었다.
“00는 아빠를 엄청 좋아하잖아? 엄마가 이렇게 매일 재워주고 함께 놀아줘도 아빠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뭐야?”
아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아빠는 재밌거든요, 엄마는 장난을 싫어하잖아요, 농담도 안 하고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답이었다. 그냥… ‘엄마는 잔소리를 많이 하니까’ 정도의 대답을 예상했는데, ‘아빠는 재미있어서’ ‘아빠랑 장난치는 것이 좋아서’라고 아들은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생각해 본 적 없는 답변이었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나는 많은 것을 추구하며 살지만, 재미를 추구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재미’는 결여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놀아줄 때도 늘 교육적인지 아닌지 따졌고 바른 인성을 길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옳은지 생각하느라 순수한 즐거움과 재미를 놓치고 있었나 보다.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는지 묻지만 그 안에 그냥 재미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던 나다.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나는… 재미없는 엄마였구나!’ 반면에 남편은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으로 아들의 즐거움을, 재미를 채워주고 있었다. 나에게는 무척 새로운 발견이었다.
아이들에게 사고의 유연함을, 융통성을 키워주고 싶은데, 융통성이 도통 없는 내가, 질서와 규칙에 엄격한 내가 말로만 그것을 가르치기는 쉽지가 않다. 변화와 수용의 자세를 나부터 가져야 한다. 내가 믿는 가치가 전부가 아님을 기억해야겠다. 훌륭한 엄마, 아내가 되려고 애쓰기 전에 재미없는 엄마, 답답한 아내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