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그리다

마흔다섯에 나를 만나러 간다

by namoomo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열다섯의 나와 스물다섯의 나,

서른다섯의 나와 마흔다섯의 나,

어딘가 많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여전한 것 같기도 하고.


거울을 바라보면 변화가 몸서리치게 느껴지다가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또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 익숙하고도 편안한, 그러다가 지겹기까지 한 그대로의 나다.


내가 기억하는 나, 나였으면 했던 나, 혹은 나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 조차도 그리운 마음. (이런 종류의 그리움 아니?) 나였지만 이제 더 이상 내가 아닌 내가 가장 그립곤 하다.


그럼에도 다행히, 다 사라진 것은 아닌 채로 깊숙이 자리한 어떤 것들.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나와 숨겨둔 나.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어리고 젊은 나, 하지만 알고 있다. 변한 건 분명하지만 또 역시, 내 안에 무시 못할 크기로 존재하고 있음을. 깊이깊이 내려앉아있다가 휘저어주면 올라오는 치기 어린 감정들조차 어디 가버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대로 여전히 나임을. 나의 한 조각으로 기억으로 숨 쉬고 있어서 지금의 내가 이런 모습, 이런 모양, 이런 나이게 한다는 것을. 내가 어딘가 많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여전할 수 있는 이유이다.


나는 자칭, 타칭 이상주의자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이런 내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에서 출발한 이상주의라면. 그럴싸한 나와 그럴싸해 보이는 나 사이의 갭(gap)이 생각보다도 큰 까닭. 내가 이상의 나를 과대평가한 것인지 현실의 나를 과소평가한 것인지 아니면 그 모든 내가 그저 나인지도 모르겠다. 좀처럼 나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으니 무엇을 할까 해볼까 하다가 멈칫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사춘기의 자아 그대로 아직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여전히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들 사이에서 좀처럼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추는, 부지런하지만 역시 미치지는 못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면서,

나를 나로 살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애를 쓰지 않으면 쉽게 가려지고 숨어버리고 결국 잊히고. 그러다 영영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고군분투한 나- 그렇게 간직해 온 나- 나는 나를 잃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그래서 나는, 비로소 나로 기억되고 싶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정말 그대로다.” “넌, 여전하구나.” 하고 말해줄 사람. 휘저어서 내 안의 나를 끄집어낼 수 있게 닫힌 나를 열어줄, 감춰진 나를 찾아줄, 그래서 기어이 끌어올려 진짜 나를 보여줄, 그리고 그 모든 나를 인정해 줄 사람. (하지만 일단 나부터 나를)





엄마로만 살다가 다시 나를 만나러 가는 중입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데 내가 정체되어 있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엄마라는 정체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엄마로만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살핌의 역할을 넘어 삶의 멘토이자 모델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살던 대로 사는 것이 편하고,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은 순조롭지만 의지를 가지고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자니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나아갈 방향을 직접 정하고 날마다 수정해가고 있습니다. 노를 저어가듯 물길을 거슬러 나를 만나러 갑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중이듯, 나도 여전히 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자라는 중이고, 그 모든 과정을 응원할 거예요. 나를 찾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고 내가 되어 가는 것이 가장 큰 숙제임을 마흔 중반이 되니 조금 알 것 같아요. 어차피 숙제는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라 대신해 줄 수가 없으니 아이들에게는 그 모든 ‘나’를 인정해 주는 그 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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