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하면 일이 많다
대학생 때 엄마가 운영하던 뷔페식당에서 일을 돕고 있었다. 손님이 우르르 빠져나간 홀의 테이블을 닦는 중이었는데, 어르신 한 분이 다가오셨다.
“내가 보니 너 참 일을 잘하는구나, 테이블 닦는 모양새를 보니 넌 무슨 일을 해도 참 잘하겠어!”
라고 말씀하셨다. 깜짝 놀랐다. 처음엔 행주 들고 바삐 오가는 나를 관찰하고 계셨단 사실에 놀랐고 내가 그 단순한 노동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 머리를 굴리며 일하던 걸 그분이 알아차리셨단 사실에 놀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 말씀이 나를 무척 뿌듯하게 했고, 정말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말대로 참 잘하고 싶다는 작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는 인간이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과 영상을 공부한 내가 졸업 전 처음 면접을 본 곳은 애니메이션회사였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면접을 보러 갔고 대답만 조금 잘하면 합격이 어렵지 않은 곳이었는데 나는 면접을 망쳤다. 2004년인데 아직도 실내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초면에 반말을 하는 상사가 될지 모를 분도 싫었고, 당연하게 매일 밤을 새운다는 비효율의 현장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애니메이션을 포기했다.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은 영상을 제작하고 편집하는 회사였다. 주로 영화나 행사 DVD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DVD, 그 안의 타이틀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굵고 짧게 일하고 퇴사했다. 월요일에 출근하고 목요일에 퇴근하는 비효율의 극강, 저녁 먹으며 반주를 하고 밤새워서 편집하는 사수의 방식이 못마땅했다. 그러나 사수는 술을 마시지 않는 나를 더 못마땅해했다. 결국 면접관이었던 이사님의 배려로 술은 마시지 않아도 되었지만 회식자리의 문화도 분위기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 사장님의 친구인 다른 회사 사장님이 우리 회사 회식에 와서 감나라 배나라하며 어린 여직원과 부르스를 추고 싶어 하는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추행과 다르지 않은 만행들이 그땐 왜 그렇게 당연시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어렸고 고지식했고 그 와중에 당당했다.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이사님이 친구분 회사에 소개해주겠다고 했지만 그 역시 거절했다. 면접에서 처음 뵈었던 이사님께서 나를 이뻐하시니 직원들에게 낙하산이라는 오해를 받았던 것이 억울했던 나는 스스로 해보겠다고 했다. 감사함은 남기고 아쉬움은 접었다. 첫 직장에서 6개월을 못 넘겨 내가 나에게 실망하긴 했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나의 선택이었다.
얼마간 쉬다가 선택한 일은, 영상이 아니라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업무였다. 작은 여행사의 e-biz 업무를 담당하는 일이었는데 출퇴근 시간이 정확하다는 점에서 적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무척 매력적인 곳이었다. 여행상담을 하는 직원들과 분리된 내 공간이 있었고 당시 새롭게 오픈할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외부인력과 함께 협력해서 빠르게 홈페이지가 완성되었다. 그 후에는 새로운 여행상품을 빠르게 업데이트하고 프로모션 배너를 디자인했다. 여행사를 다니던 시절, 나는 제법 성실한 직원이었다. 내 일머리를 알아본 사장님의 눈에 들어 짧은 시간에 나의 역할은 확장되었다. 홈페이지 관련 외에 고객관리에 대한 업무가 추가되었다. 더 효율적인 관리에 대해 사장님은 나와 상의하길 원하셨고 새로운 고객관리시스템을 도입하고 메일링 업무도 하게 되었다. 온오프라인 마케팅을 다하려니 바빴다. 전단지를 디자인하고 인쇄해 인근에 배부하는 일도 전 직원이 함께 했다. 판촉물 디자인 등 사장님이 원했던 많은 일들이 내 손을 거쳐 실현되자 사장님은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다가 외부미팅에도 사장님과 동행하게 되었다. 그 당시 2호점을 준비하던 사장님은 내가 그곳을 맡아 주길 바라셨고 그래서 여행지 공부와 여행상담도 직접 해보기를 권하셨다. 인정받는 것은 희열이 있었지만 이미 맡은 일이 너무 많았고 업무가 과중해지는 건 어쩔 수 없이 힘에 부쳤다. 그 시절에도 나는 이미 워라밸을 중시했기에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면 나를 갈아 넣어야 하는 그 일을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사에 있었던 덕분에 나 홀로 유럽여행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 꽤 디테일한 업무인수인계 파일을 만들었다. 누가 들어와도 바로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 세세한 엑셀파일과 폴더맵map이었다. 그 당시에는 눈 감고도 폴더 안의 폴더 안의 폴더 안의 파일을 찾을 수 있었다. 2주간의 유럽배낭여행을 떠나기 전 사장님이 갑작스러운 제안을 하셨다. 아직 퇴사처리 전이니 여행 다녀와서 복귀를 하라고 하셨다. 여행경비는 모두 회사에서 부담하겠다고 하셨다. 감사한 말씀에도 나는 극구 사양하였다. 여행 내내 나는 정말 홀가분하고 행복했다. 여행사에서 일한 경험이 이렇게 또 귀할 줄이야!
2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한국에 왔을 때, 사장님은 다시 나를 부르셨다. 이번에는 직급을 팀장으로 하고 재택근무를 시켜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자연스러워졌으나 당시에는 특별한 상황 외에는 많지 않은 형태였기에 나로서는 거절하기 어려운 커다란 혜택임에 틀림이 없었다. 회사로 출근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정하고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인수인계는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이 형태로 오래 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를 붙잡기 위해 사장님이 둔 무리수였다. 오히려 출퇴근 없는 업무가 이어졌고 시도 때도 없이 사장님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6개월 정도 더 이어가다가 완전히 퇴사하게 되었다. 아쉬움이 컸던 사장님은 이후에도 몇 번 돌아오라며 안부연락을 주셨지만 나로서는 더 이상의 미련이 없었다. 감사하게도 어딜 가서 무슨 일을 해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장착하고 그 일은 마무리했다. 후에 다른 곳에서 일했고 이후에 결혼을 준비하며 퇴사하였다.
일을 잘하면 일이 끊이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그렇다. 손이 빠르면 일이 빨리 끝나는 게 아니라 일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을 대충 하는 건 아닐까? 사실은 다들 자신의 능력을 적당히 숨기고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결심할 때 남편에게 당부한 건 하나였다.
“나는 직장생활은 안 하고 싶어요. 결혼하면 살림 잘하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