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비에 기대어 사는 사람
남편이 자꾸만 좋냐고 묻는다.
돈 쓴 보람이 있어야 하니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침대는 나만 좋자고 산 게 아닌데도 남편은 날 위해 돈을 쓴 기분인가 보다. 우리 부부의 ‘소비’에 있어서 ‘선택’은 늘 내 몫이다. 선택의 기회는 감사하지만 늘 선택엔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고 믿는 나는 주어진 그 선택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의 배려로 나는 늘 달갑지 않은 선택의 기회를 누려야 한다. 빨리 해치우고 싶은 일종의 미션 같다. 외벌이 중인 남편은 늘 경제적인 부담을 안고 살아가고 남편의 벌이로 살림하고 육아하는 나도 경제적 부담감을 느낀다. 검소하게 살아가는 편이라고 자부하지만,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늘 빠듯하게 돌아가는 가정경제에 미안하고 불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나에겐 쇼핑이 재미나 즐거움이 아니다. 도리어 스트레스상황인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침대를 보러 가자고 보채는 남편이 달갑잖았다. 하지만 결국 침대를 보러 갔고 새 침대가 안방에 놓인 지금, 나는 남편에게 무척 고마워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삐딱한 마음이 든다.
남편은 내가 사주는 것이 아니면 직접 런닝셔츠 한 장도 사 입지 않는 사람이다. 귀찮아서도 그렇고, 인터넷쇼핑을 좋아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주말부부로 지내는 4년 동안도 내가 숙소로 물을 주문해주고 있다. 남편은 소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주부들은) 매일 소비를 한다. 아이들 간식, 먹거리장보기, 생활용품, 학원비 등. 머리 하러 미용실에 가거나 네일아트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매일 무언가에 돈을 쓴다. 오롯이 나를 위해서는 이렇게 앉아 글을 쓰거나 글씨를 쓸 때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사는 것인데도, 나는 남편에게 ‘소비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 때론 눈치가 보이고 부담스럽다.
나는 육아에 전념하고 싶었고 직장생활은 싫었다. 그래서 돈을 벌러 나가는 대신 덜 쓰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어릴 때부터 용돈 주면 아껴 쓰고 내 것은 잘 지키고 검소하다고 칭찬받던 나인데도, 살다 보니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맞벌이를 원하는 남편에게 미안한 만큼 나는 점점 초라한 모습이 되었다. 그래도 출근하는 남편에게는 늘 좋은 신발, 좋은 옷을 입히고 싶다. 나한테 쓰는 돈은 안 써도 그만인 것들이 대부분이라 나한테 쓰는 돈이 가장 아깝다. 하지만 남편은 또 그런 내 모습은 싫었던 것 같다. 자꾸 뭘 더 사라고 하고 뭘 더 하라고 한다. 어쩌다 내가 뭔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라고 말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무심하고 짧은 답변이 나는 오히려 거절로 느껴지곤 한다. 어차피 그는 내가 당장에 사지 않을 걸 아는 것만 같다. 실제로 내가 잘 따져보고 고민하고 미루는 사이, 가끔 온라인 장바구니에 넣은 물품이 품절되기도 한다. 그럴 땐 차라리 다행이다 싶고, 어차피 없어도 될 물건이었다고 미련을 버린다. 또 어떤 경우에는 한참을 고민하고 가격비교 끝에 구매를 하는데, 막상 사고 보면 이렇게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거나 나 자신을 위한 소비에는 점점 인색해지고, 아이들 가르치고 먹이는 일에는 아낄 틈이 없다. 그런데도 요즘은 부쩍 먹거리 가격이 올라 아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며 미안함을 느낀다. 맞벌이를 하면 이런 것쯤은 가볍게 담을 수 있을지도…
어느 날 남편이 허리벨트를 사야겠다고 했다. 나더러 사달라는 의미다. 그런데 왠지 하던 대로 하기가 싫었다. 소비의 주체가 나라고 생각하는 남편이 얄미워, “당신이 쓸 거니 직접 사보세요.” 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남편, 결국 며칠 뒤에 나는 링크 두 개를 카톡으로 보내고 직접 고르게 했다. 근데 그 마저도 남편의 답은,
“당신 취향대로”
‘아니 이 양반아, 대체 왜 당신 허리벨트를 내 취향대로 고르라는 거야!’
역시 쇼핑도 해본 사람이 잘하고, 선택도, 소비도 많이 해봐야 느는 건가 보다. 내가 보니, 남편은 소비를 안 하는 게 아니고 못하는 거다.
나의 소비에 기대어 살아가는 남편님께, 앞으로도 나는 계속 잘 쓰며 살겠습니다. 이제 눈치 좀 덜 보고 써야겠어요. 당신이 가끔 ‘우리, 이번 달 마이너스야’라고 말하는 건, 그냥 팩트를 설명하는 거고 나를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고 굳게 믿어보겠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