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 사는 뽀글머리 내 친구, 1편
프랑스에 오고서 좋았던 건 중 하나는, 모든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결혼을 하기 한 참 전부터 나는, 세상 언저리에서 거의 사라진 거나 다름없던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던 인간관계들이 알아서 그 연을 다했었지만, 그럼에도 여기저기 걸쳐있는 관계들을 무 자르듯 싹둑 자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관계들로부터 '단절된 세상'에 오고 나니, 모든 거추장스러웠던 관계들에 심플하게 굿바이를 날려도 그 누구도 내게 뭐라 할 수 없다는 것이 참 맘에 들었다.
나는 그저, 함께하던 세계를 홀연히 빠져나간 사람, 그렇기에 이대로 사라져도 그만인 사람이었을 뿐, 그 어떤 마음의 짐 없이 그것들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로움을 누리면 되었었다.
그렇게 모두와 떨어져 있다 보니, 그렇게 나를 보기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지금껏 살아온 모든 생의 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당연히 그 안에는 나를 스쳐간 모든 관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순간들로 돌아가 하나씩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때의 느낌들을 되새기고, 그 사람들을 다시 느껴보고. 그러자 너무도 선명하게, 어떤 사람이 진짜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아닌지가 저절로 드러났다.
아무리 오래전 인연이고 연락이 끊겨 있었다 해도, 떠오르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불과 얼마 전까지 연락이 닿았고 연을 맺어 왔음에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이 나뉘는 지점은 아주 명확했다. 나에게 보내준 그 마음이 순수했는지 아닌지.
나는, 무슨무슨 단체에 속하거나 친목모임의 일원이 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상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패거리 짖는 것은 원래부터 맞지 않았다. 효용성을 담보하는 관계들을 살뜰히 챙기며 인간관계를 '널어놓고 사는 사람들'의 극진한 사회성도 내게는 관심 밖이었다. 나는, 잘 보이고 싶은 사람도, 잘 보일 이유도, 잘 보일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불필요한 관계들에 내 시간과 정성을 쏟는 짓은 그만 둔지 오래였다. 그저 삶에서, 위로가 되는 친구 몇 명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속 얘기할 수 있는 친구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그 친구들 몇몇만을 남겨놓은 채 프랑스로 왔다.
새로운 땅. 아무도 없는 땅. 남편 하나 보고 온 땅. 정말로 내게는 남편과 아이 말고는 없었다.
맺어지는 인간관계라고는 시댁 가족들, 남편 회사 동료들, 남편 친구들, 그렇게 한동안 내 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람들이나 내 전화기가 울리는 순간, 우리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과 식사 초대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남편을 통해 만난 관계들이었다. 그랬기에 아무리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어도, 내게 살갑게 대해도, 내 마음에서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그들에게도 나는 '친구의 아내'일 뿐 엄밀히 '내 친구'는 아니었기에. 그들이 내게도 '진짜 친구'가 될 수 없던 이유는 뻔하였다.
그들과의 관계의 출발이, 마음과 마음 간의 '직접 접속'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나와는 결도 다르고 성향도 많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간혹 말이 통하고 마음이 열리는 친구들이 있기도 했지만, 그런 친구를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더구나 한국 사람이라고 정 주었다가 뒤통수 맞는 일은, 나뿐만이 아닌 교민이라면 한번쯤 겪는 거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일부러 한국 사람을 찾아 만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의 선택으로 인한 외로움이야 어쩔 수 없다 하여도
늘 그리운 것은 '친구'였다. 진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나도 '진짜 내 친구'와 도란도란 가을밤을 세울 수 있었을 텐데. 바보 같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수제비처럼 퍼져서 같이 뒹굴었을 텐데. 그렇게 길을 걷다가 떡볶이랑 순대를 사 먹었을 텐데. 함께 겨울 바다로 여행을 갔을 텐데. 울적한 날이면 함께 걸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 있는 친구는 이제 내 곁에 없다는, 그 마음이 늘 이곳에 뚝 떨어져 있는 나를 더 쓸쓸하게 했었다.
처음으로 남편을 통하지 않은 관계들을 만나게 된 건, 아이가 크고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동네 이웃이기도 한 아이 학교 친구들의 엄마 아빠가 그들이었다.
아이는 초원의 집처럼 매우 작은 학교에 다녔었기에 일단 학교가 가족적인 분위기였고, 운 좋게도 편한 마음으로 서로 차 마시고 얘기할 수 있는 엄마들을 사귀고 친구가 되었다.
프랑스 엄마들에게도 나는 '동양에서 온' 이국의 존재였기에 언제나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오는 그들에게서 나는 실로 오랜만에 '친구'와 소통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집에 식사 초대를 하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피크닉도 다니고, 함께 자전거도 타고... 하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늘 '진짜 친구'에 대한 커다란 갈증이 있었다.
한국에 두고 온 내 친구들처럼, 내 안의 농밀한 감성을 함께 나누고 공감해줄 수 있는 친구가. 같이 유치하게 떠들며 깔깔깔 웃을 수 있는 친구가. 그렇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한 친구가. 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냥 좋은 친구가.
그러던 어느 날, 내게 한 소년이 나타났다. 자연 속에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소년이.
나보다 여덟 살이 많았지만 여전히 스무 살의 얼굴을 하고 있던 소년이. 숲에서 장작을 패고 요리를 하고 시를 읊는 소년이. 누구보다 명석하지만 누구보다 순수한 소년이. 누구보다 호탕하게 웃는 태양 같은 소년이. 내가 너무나 좋아하게 된 소년이.
그 소년의 이름은 빠스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