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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Nov 29. 2019

프랑스발 모녀의, 소소한 일상

함께 BTS 춤 추는 엄마와 딸 


 프랑스 아이들은 수요일에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날 하루를 온전히 쉬면서 학원 개념의 활동을 보통 하나 정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마음껏 놀면서 보낸다. 
 아이들의 온전한 하루를 위하여 프랑스 엄마들은, 아무리 워킹맘이라도 수요일 하루는 대부분 일을 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먹고 학원에 데려다주고 함께 간식을 먹고 산책도 한다. 
  
 우리 아이의 수요일 아침은 언제나 학교 숙제로 시작한다. 숙제를 하고 있으면, 9시쯤 느즈막이 일어난 엄마가 생과일 쥬스 한잔과 따뜻한 두유에 씨리얼을 타서 아침을 챙겨준다. 조금 쉬다가 아이는, 엄마와 함께 한국어 일기 쓰기를 하고, 함께 한국어 책을 조금 읽는다
공부는 30분 정도면 끝난다. 더 붙잡고 있어봐야 서로 힘들다. 

 그 다음 아이는 다시 자유롭게 논다. 책도 읽고 플레이모빌이나 레고도 놀고. 그리고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엄마표 치즈범벅 샌드위치를 만든다. 가끔은 맛있는 스파게티를 해주거나 좋아하는 한국 식당에서 둘만의 외식을 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주문하는 수요일 점심메뉴는 자주 엄마표 샌드위치다.
 부드러운 이탈리아 바게트인 '비에누와즈 빵' 안에 마요네즈와 크림치즈를 고르게 바른 후, 루꼴라와 이탈리아햄 '목흐따델' 그리고 자주빛 무 '베트하브'를 썰어 넣고, 금방 후라이팬에 녹여내 뜨겁게 흘러내리는 '하클렛 치즈'를 넣으면 완성!  


아이가 만든 '맥도날드 세트'. 샌드위치 사진이 없는 관계로 대신 월요일에 먹은 '꼬랑내 치즈범벅 그라탕'


 밥을 먹고 아이의 현대무용 수업을 위해 길을 나선다. 수업이 끝나면 오후 3시. 그 때부터 자유!
아이는 그 시간 이후로는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친구를 집에 초대해서 놀거나, 친구 집에 놀러가거나,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 가거나. 집에 친구가 놀러왔을 땐 정성스런 엄마표 간식을 만들어 내놓는다. 쵸코렛 케잌, 당근케잌, 단호박케잌, 카라멜케잌, 또는 마들렌이나 수제쿠키. 그도 저도 다 귀찮을 땐 집앞에서 빵오 쇼콜라나 크로와상 또는 블루베리 머핀을 사다 놓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동안 저녁 준비를 한다. 점심에 빵을 먹었으면 저녁엔 언제나 밥을 지어 한식을 먹이려고 노력한다. 그렇기에 수요일은 가장 바쁜 날이다. 하지만 가장 즐거운 날이기도 하다. 아이만이 줄 수 있는 맑은 기운을 담뿍 받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축복된 날.

 아이에게 BTS를 소개해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한국어로 늘 엄마와 말하는 아이라도, 여전히 한글 읽기와 쓰기를 힘들어하는 아이가 BTS 노래를 따라부르며 가사를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존재만으로 '완벽한 사랑체'인 방탄소년단이니, 그 순수한 에너지와 접속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바람직하다. 그리고 우리는, BTS의 '작은 시' 뮤비를 틀어놓고 함께 춤 추는 것이 생활이기도 한, 누가 뭐래도 방탄사랑 모녀! 

 
이번주 수요일 아침, 주방 스피커를 통해 BTS 노래를 랜덤으로 틀어놓은 채 딸과 나는 오랜만에 방탄 노래를 크게 따라 불렀다. 숙제가 다 끝난 아이는 고무찰흙으로 '핫도그와 감자튀김 콜라'를 만들었고, 나는 그 앞 씽크대에 서서 음식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요리하는 일닭강정을 준비하고, 함께 낼 브로콜리와 당근을 썰고, 양배추를 다듬고. BTS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부르며 하는 요리는 더없이 즐거웠고 상쾌했다. 

침실 창 밖으로 보이는 숲. 곱게 물든 티욜 나무

 

 "너는 내 삶에 다시 뜬 햇빛, 어린 시절 내 꿈들의 재림, 모르겠어 이 감정이 뭔지, 혹시 여기도 꿈 속인 건지" "나도 나의 끝을 본 적 없지만, 그게 있다면 너지 않을까, 다정한 파도고 싶었지만, 니가 바다인 건 왜 몰랐을까"  "멈춰서도 괜찮아. 꿈이 없어도 괜찮아. 다 꾸는 꿈 따윈 없어도 돼. 너를 이루는 모든 언어는 이미 낙원에"  "서로가 본 서로의 빛,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린,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이토록 아름다운 노랫말을 말하는 아이들이라니. 분명 한국 역사, 아니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보물임이 틀림없다. 딸아, 어서 너는, 열심히 따라 읽고 따라 쓰기만 하면 돼! 


 무용 수업을 위해 버스를 타기 전, 따사롭게 쏟아지던 기분 좋은 햇살은 흥탄 소녀인 내게서 멜로디를 끌어낸다. "Listen my my baby 나는, 저 하늘을 높이 날고 있어. 그때 니가 내게 줬던 두 날개로. 이제 여긴 너무 높아, 난 네 눈에 널 맞추고 싶어. you makin' me a boy with love" 아이가 가세 했다. "Oh my my my, oh my my my, 네 전부를 함께하고 싶어. Oh my my my, oh my my my, 이제 조금은 나 알겠어" 


 버스가 왔다. 사람들이 가까이 오자 아이는 "쉿!" 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다시 눈치를 준다. "엄마, 이제 그만" "너 자꾸 그러면 엄마 여기서 춤도 춘다?" 아이는 엄마를 말릴 수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웃는다. 그리고 재빠르게 먼저 버스에 오르며 말한다.


"사람 살려~~~" 


그렇게 산뜻한 한 주가 또 지나고, 그새 주말이 다가왔다. 주말엔 아빠가 좀 놀아주겠지.




* BTS를 마음에 품게 된 필자의 글을 첨부합니다.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https://brunch.co.kr/@namoosanchek/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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