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뜨끈 치즈 녹여 먹는 재미
바야흐로, 탕, 찌개, 전골의 계절이 왔다. 호호 손 시린 겨울, 길고 긴 겨울을 든든하게 나려면, 한국인들은 수시로 뜨끈한 국물을 먹어주어야 한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뚝배기를 그대로 밥상으로 가져와 먹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그걸 입천장 데어가며 이마에 땀 송골송골 맺혀가며 먹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그 맛있는 소리 후루룩후루룩. 생각만으로도 침이 넘어간다.
겨울은 이렇듯 나에게, '미각으로서의 결핍'을 깊이 건네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더구나 시골 할머니 촌입맛을 가졌으니 몸살끼라도 있는 날에는 그저, 보글보글 찌개와 칼칼한 탕, 푸짐한 미나리와 쑥갓이 얹어져 있는 전골이 눈에 어른 거리는 것이다. 그러나!
된장찌개 김치찌개는 해 먹을 수 있어도, 갈비탕 곰탕은 해 먹을 수 있어도, 정작 먹고 싶은 추어탕, 복매운탕, 매생이굴국밥, 콩나물국밥 등은 그저 꿈속 나라의 이야기일 뿐. 아예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괴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먹을 수 있는 겨울진미를 찾는 지혜를 발휘해야만 한다.
바로 뜨겁게 녹여 먹는 치즈치즈치즈!
프랑스는 겨울에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먹는 특별한 치즈 음식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는데, 하나는 잘 알려져 있는 '퐁듀'이고 두 번째는 '딱띠플랫' 마지막으로 오늘 소개할 '하클렛'이다.
퐁듀(Fondu)는 불어로 '녹은' 이란 말로, 말 그대로 '치즈를 녹여 먹는 음식'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신촌에 꽤 알려진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일찍이 퐁듀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두번째로 딱띠플랫(Tartiflette)은, 감자로 만든 일종의 그라탕인데 위에 호블로숑(Roblochon)이라는, 치즈 중에서도 강한 향과 맛을 가진 특별한 치즈가 올려진 채로 오븐에서 구워내는 음식이다. 주로 산간지역에서 많이 먹는다.
그리고 하클렛(Raclette)은, 덩어리로 된 하클렛이란 치즈를 먹기 좋게 썰어 1인용 용기에 넣어 구워낸다음, 삶은 감자 위에 부어서 먹는 음식이다. 다양한 햄이나 소시지를 함께 곁들여 먹는다.
세 가지 겨울별미를 모두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얼마 전 차례로 하나씩을 해 먹었는데, 엊그제 먹은 것이 하클렛이었다. 제대로 갖춰진 차림이었다기보다 그냥 소박하게 먹었지만 독자님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몇 장 찍어보았다.
우리 집 기계는 아래처럼, 동그랗지 않고 좀 시크하게 길쭉한 네모 모양이다. 삶은 감자를 그릴 위에 올려 놓으면, 감자가 식지 않고 따뜻함을 유지한다. 하클렛 치즈는 3종류를 준비했다. 보통맛, 훈제맛, Tomme이라는 치즈, 그리고 샤큐트리(Charcuterie)라 불리는 햄과 소시지, 삶은 브로콜리, 베타하브라는 자줏빛 조리된 무, 그리고 호두와 화이트 와인.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조금씩 접시에 담은 후, 치즈 한 조각을 자신의 1인용 팬에 얹고 왼쪽처럼 그릴 아래 올려놓으면, 잠시 후 치즈가 보글보글 끓는다. 그때 잽싸게 감자 위에 치즈를 잘 펴주면 완성! 치즈가 금방 식기 때문에 따뜻할 때 바로바로 먹는 것이 포인트다. 그렇게 먹다 보면 먹어도 먹어도 자꾸자꾸 들어가서, 포만감이 극에 달할 때까지 먹는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 우리 딸이 좋아하는 '엄마표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치즈가 바로 이 하클렛 치즈다. 뜨끈하게 흘러내리는 적당한 치즈의 풍미, 안 맛있을 수가 없다.
저 햄들 중 오른쪽 위가 아이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목흐따델(Mortadella)이라는 이탈리아 햄, 왼쪽은 프로방스 허브가 들어간 햄(프랑스 햄은 저렇듯 고기를 통째로 가공한다), 밑에 붉은빛은 쇼리조(Chorizo)라는 매운맛이 가미된 스페인 쏘시지, 한국인 입맛에 최적화되어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햄이다.
프랑스인들은 추워지면 하클렛을 자주 해 먹기 때문에, 겨울에 마트나 슈퍼마켓에 가면 아예 하클렛 치즈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그만큼 '따끈하게 녹여먹는 치즈'는 프랑스인들에겐 겨울철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든든한 음식인 것이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이 음식을 좋아할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 발효음식문화의 최강자 아니던가. 한국인들이 치즈를 좋아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냉장고에 하클렛 치즈 몇 조각이 남아 있다. 토요일 시댁에 가면서 먹을 샌드위치는 그걸로 낙점. 5시간을 넘게 차로 가야 하는 긴 여행길에, 그 아이가 한 조각 빛이 되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프랑스에 오시는 작가님이 계시거든 주저 없이 말씀해주시기를 바란다. 먹고 싶다고!
나는 언제든, 이 맛난 치즈 음식을 대접해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