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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Jan 24. 2020

프랑스에서 건네는
새해 편지

니꼴라가 보내준 새해 엽서 


 2020이란 숫자의 묵직함만큼, 올해는 설도 참 일찍 찾아오네요.
이 곳에 살면 설이니 추석이니 어떤 명절도 체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마음으로는 언제나 우리의 정신이 깃든 두 날의 의미를 새기며 명절 음식 하나라도 더 준비해서 보내려고 노력해왔던 거 같아요.

 설날에는 꼭 떡국을 끓여서 먹었고, 추석 때면 모둠전 등등을 해 먹으며 아이와 함께 보름달을 바라보며 꼭 소원을 빌었습니다. 아이의 소원은 아주 오랫동안 '멋진 남동생'이 생기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 꿈을 접은 거 같아요. 동화 속 나라에서 현실세계로 넘어왔다고나 할까요. 더 이상 산타를 믿지 않는 것처럼요.

 가끔은 친한 한국 친구네와 음식을 준비해서 나눠 먹기도 했는데, 올 해는 날도 춥고 다들 바빠 아무런 약속을 잡지 못했어요. 더구나 설날 당일은 남편도 아이도 각자 일이 있어 저 혼자 보내게 되었답니다. 오랜만에 차분히 앉아 글을 쓸까 해요. 그래도 설인지라 냉동실에서 귀한 음식을 꺼내 놓았습니다.
아이가 사랑하는 한국서 가져온 인절미와 내가 좋아하는 팥시루떡입니다. 일단 아쉬운 대로 내일은 떡으로 요기를 하며 설 분위기를 내보려 합니다.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도 하나쯤 뚝딱해서 먹고요.

 그럼에도 명절 음식이 아른거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손 맛이 좋은 엄마가 푸짐하게 차려 내놓으시던 각종 전과 나물들 찌개들. 한국에 있는 동생들은 늘 명절이면 부모님이 차려주신 상다리 휘어지는 밥상 사진을 늘 항공샷으로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려줍니다. 저를 위한 선물인 셈이죠. 그럼 나와 아이는 그 사진을 보며 울부짖은 채 서로를 바라봅니다. "왜 우리는 저기에 없는 거지!" 하면서요. 

 시누이 친구 중에 조각을 하는 '니꼴라'라는 친구가 있어요. 의사인 아내가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니꼴라는 조각가로서 예술작업을 하고 집과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갑니다. 나보다 열 살이 많은 친구인데 여전히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면서, 끊임없이 예술을 지으며 산다는 것 그렇게 

'나 자신이 되는 시간'을 계속 만나며 사는 사람은, 왜 소년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니꼴라는 매해 연말이면 늘 손수 그린 그림엽서를 친구들에게 보내줍니다. 아주 단순하지만 그의 소박함이 묻어나는 그림을 난 참 좋아하는데 올해는 더욱 특별한 '깜짝 선물'을 동봉하여 보내주었답니다. 그 선물 자랑도 할 겸, 멋진 니꼴라 그림을 소개하며 2020년 설 인사를 대신하려 해요.


2015년, 숲을 달리는 여우


2016년, 숲 속을 걷는 곰


2017년, 숲을 굽어보는 순록 


2018년, 숲길을 걷는 늑대

2019년, 숲속에 울부짖는 거위

2020년, 먹이를 내려보는 재규어


그리고.... 올해 니꼴라의 깜짝 선물! 


 지난 크리스마스 시누이 집에 니꼴라 가족이 왔던 날, 내가 준비한 한국식 양념돼지갈비를 숯불에 구워 다 함께 먹었답니다. '좋은 작은 요리' 그날 맛있게 아주 잘 먹었다는 말을 엽서에 또 적은 것이에요. '큰키스'는 프랑스인들만의 인사법인 '볼 뽀뽀' 중에서도 친한 사이에서만 쓰는 '큰 뽀뽀'라는 말을 구글번역으로 해놓으니 이렇게 된 것이고요. 글씨도 참 이쁘게 잘 씁니다.   
 
 곱게 쓰여있는 한국말을 보니 어찌나 울컥하던지요. 니꼴라를 처음 본 날, 시댁 가족들 사이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앉아있는 나에게 옆 공원에 감나무가 있다며 아주버니와 함께 장대로 감을 따주었던 그날의 니꼴라 모습을 기억해요. 그러고 보면 나름, 나를 위한 작은 요정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2020년 새해는 모두에게 요정들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메인사진 : 2020년 1월 1일 아침 샤모니에서 바라본,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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