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했지만 심상치가 않다. 유럽 전체의 증가세가 전혀 잡히지 않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봉쇄령이 내려지기 전인 3월 중순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퍼져 있어서이지 않을까 한다. 그때까지 프랑스는 물론 유럽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저 지나갈 감기 같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유럽인들의 안일함과 시민들의 비협조적인 태도, 무엇보다 3월 중순까지 밀집된 공원과 시장 카페 등지에 있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는 점. 바이러스는 훨씬 빠르고 치밀했다.
엊그제 프랑스가 코로나 감염 현황을 감추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프랑스 내에서 제기되었다. 현재 통계로 잡히는 '검사 대상' 자체가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선별적인 사람들 일부만의 결과이기에 한정적이고 '사망자 수' 역시 병원에서의 사망만 집계 되고 집이나 요양원 등에서 사망한 사람들이 통계에서 누락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사: https://tuney.kr/B6w4at) 그 말은 숨어있는 확진자가 무수히 많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프랑스 정부는 아래의 말을 반복하고 있다.
"마스크는 필요 없습니다" 프랑스 방송에서는 연일 이 말을 계속 송출한다. 그러면서 일반인들에게 마스크를 일선의 필요한 의료진들에게 나누어줄 것을 말한다. 모순적인 말을 하고 있다. 그 말은 '마스크는 방역에 꼭 필요하지만 수량이 충분치 않으니 일반인들까지 쓸 마스크는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동금지령이 내려진 첫날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에 갔었을 때 그 북적대던 마트 안에 아무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었고 하물며 계산대 직원들도 마스크를 안 쓰고 있던 상태였다. 그때가 3월 17일. 오죽하면 "장을 보러 가는 것이 투표하러 가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기사까지 나왔었을까.(기사: https://tuney.kr/ASQrsD) 그렇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닐까? 일부 사람들이 쓰기 시작했을 뿐이다. 확실히 노년층들은 부쩍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노마스크'로 거리를 다니고 장을 본다. 여전히 마스크를 '필수 방역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첫날 그 난리통을 겪은 후 큰 마트를 일부러 가지 않고 작은 가게들에서 간간히 생필품과 먹을거리를 산다. 그러다 어제 아이가 학교에서 내주는 '홈스쿨링 과제'를 하는데 볼펜이 떨어졌다 하여 어쩔 수 없이 큰 마트를 다시 가게 되었다. 이틀 전부터 외출이 1시간 이내로 바뀐 새로운 이동증명서에 '출발 시간과 날짜'를 기재하고 '장보기'에 체크를 한 다음 사인을 해서 가방에 넣고. 오래전 한국에서 사 왔던 아이 면마스크를 옷장 구석에서 찾아내 쓰고서.
며칠 만에 마트에 질서가 생겼다. 마트 안엔 소수의 인원만 줄을 서서 차례로 들어갈 수 있었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느 정도 지켜진 채로 장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화장지도 몇 개 남은 게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계란과 소금이 없었다. 그리고 계산대 직원 두 명이 아직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계란과 소금을 사기 위해 동네 다른 유기농 마트에 들렀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손소독제를 봤다. 그 어디에서도 손소독제가 비치된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반가웠다. 유기농 마트에 오는 고객층이 아무래도 조금 다른만큼, 마트 안에서만 직접 만든 면마스크를 쓰고 온 사람들을 세 명이나 봤다. 다행히 계란과 소금도 살 수 있었다. 정부는 현재의 외출금지령을 4월 말까지 연장할 것을 논의한다고 한다. 예상했던 것이다. 여름까지만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집콕만 하기에는 아쉬울 만큼 매일같이 날이 좋다. 그러니 사람들이 멀리 집 밖으로 나가 조깅을 하고 강가를 거닐었던 것이다. 화요일엔 집 앞 강가에 경찰 두 명이 나와 단속을 했다. 조깅을 하던 사람들을 모두 잡아 세워 이동증명서를 확인하고 거주지를 묻고 집이 멀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되돌아 가도록 조치했다. 그것으로도 안 되겠는지 정부는 아예 모든 공원과 강변 산책로를 폐쇄하였다. 이틀 전부터 집 앞 강가로 내려가는 모든 입구는 바리케이드로 다 막아놓았다. 참 삭막한 풍경이다.
이 와중에 반가운 깜짝 선물을 받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국 친구로부터 직접 만든 면마스크를 선물 받은 것이다. 무려 남편 것 내 것 아이 것을 손수 필터까지 끼울 수 있게 정성스레 만들어 주었다. 더구나 무척 예쁘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식당들이고 피자집이고 죄다 문을 닫았으니 영락없는 '집밥'의 연속인 나날들. 이왕 집에서 셋이 24시간 붙어 있는 거 먹는 거라도 잘 먹자는 생각이다.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잡채를 양껏 해서 3일을 내리 먹었고, 봄인 만큼 견과류 듬뿍 뿌린 상큼한 샐러드도 자주 해 먹는다. 며칠 전에는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 며칠을 든든히 먹었고, 김밥을 말아먹었고, 생김치와 무생채도 담아 계란밥과 종종 라면에도 곁들여 먹고 있다.
당연히 떡볶이, 사과파이, 붕어빵 같은 간식거리는 더 자주 식탁에 오르고, 오늘은 오랜만에 하클렛 치즈를 녹여 넣은 샌드위치를 먹었다. 영양 있는 음식 위주로 먹어야 하겠지만 아무렴 어떠랴. 푸짐하고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이 시국 집콕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잘 먹고 잘 자는 것일 터이니.
쓰다 보니 그새 저녁 먹을 시간이다. 오늘 저녁은 간단하게 야채전에 김, 김치, 고추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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