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코로나 사태 처음부터 필자가 얘기한 문제의 핵심은, 프랑스인들의 '노마스크'였다. 마스크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아예 처음부터 마스크를 구입조차 할 수 없도록 막았고, 현재는 일선의 의료진들조차 마스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직면해있다. 정부는 연일 "마스크는 필요 없습니다"를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었지만, 며칠 만에 그것이 올바른 방향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시인한 꼴이 되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프랑스도 유럽도 저마다 '살기 위해 마스크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제조업에 근간하지 않는 산업구조가 커다란 이유였겠지만 '마스크 대란'은 처음부터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미쉘린 회사를 비롯한 몇몇 회사에서 뒤늦게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지만 인구가 많은 프랑스의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처럼 마스크 부족으로 인한 의사들의 불만과 정부에 대한 비난이 폭발하자 부랴부랴 마크롱 대통령은 31일 마스크 공장을 방문하여 '마스크 완전 독립'을 이루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그러나 그 시기가 '연말까지'다. (프랑스 마스크 대란: https://tuney.kr/BdiTiz)
현재 프랑스의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당연히 불안한 시민들이 하나둘 '스스로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시중 마스크는 구입이 불가능하니 면마스크를 쓰고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부쩍 보인다. 그마저도 없는 사람들은 스카프로 입을 가리거나 기내용 안대를 입에 쓰고 있는 할머니도 보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젊은 엄마들이나 젊은 사람들이고 여전히 마스크 없이 거리를 걷고 장을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한국의 모든 곳에 비치되어 있는 손세정제 역시 프랑스 공공장소에서는 구경하기 힘들다.
마스크가 중요한 방역품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투명한 플라스틱 안면 가리개를 만들고 판매하는 곳들이 생겨났다. 나의 한 프랑스 친구도 이걸 아마존에서 구입했다. 많이 불편해 보이긴 하나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나은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인들과 유럽인들이 '고집을 포기하고'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였다.
일상이 그대로 유지되면서도 방역에 성공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 '모두가 마스크를 생활화'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크게 다가왔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마스크 무용론'을 이제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와 체코는 이미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였고 독일도 현재 논의 중이라고 한다. 즉, '마스크는 필요 없다'는 문구는 처음부터 마스크 공급이 부족할 것이 불러 올 혼란, 폭동과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뒤늦게 마스크 쓰는 유럽: https://tuney.kr/BcwyX2)
프랑스 방역의 허점은 마스크뿐이 아니다. 증상이 의심되어도 심한 호흡곤란 같은 게 아니면 아예 검사 자체를 받을 수 없다. 즉 무증상 감염자들로 인한 확산이 여전히 뚫려있다는 말이다. "길거리 소독은 불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길거리는커녕 공공장소에 대한 소독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아이들 홈스쿨링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각 가정별로 부모 역량에 따라 학습 도달 정도가 많이 차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함께 지내면서 가정폭력도 급증한다고 한다. '집에 머물러 주세요' 캠페인은 이제 아이들이 아예 마스크를 쓴 채로 나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당신을 위해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함께 힘을 모으는 사람들과 시민단체들이 여러 움직임으로 다양한 할 일을 하고 있다. 많은 회사들이 자사의 물건 대신 마스크나 손세정제 인공호흡기를 생산하고 있으며, 함께 면마스크를 만들거나 고립된 독거노인들에게 식사 준비를 해주는 등의 봉사가 여기저기서 행해지고 있다.
독일 권위지인 슈피겔은 "한국으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는 유럽의 오만이 코로나19에 치명적"이라고 꼬집었다. (기사: https://tuney.kr/Bcv2Fe) 어디 독일뿐이었으랴. 유럽이든 미국이든 그렇기에 처음부터 손 놓고 강 건너 불 보듯 했던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이참에 그 실체 없는 바람인 '유럽의 오만'이 한 풀 꺾이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봄이 왔다. 찬란하게 따사로운 봄볕이 무심하게도 온 땅을 비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은 연한 잎 뒤로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 나풀거린다. 얼마 전이 생일이었다. 그런 것을 잘 챙기지 않는 무심한 나에게도 꽃향기가 진동하는 예쁜 꽃 한 다발은 마음 안에 봄바람을 불어넣기에 충분하였다. 뒷집의 빠스칼과 엘크가 생일을 잊지 않고 연락을 해왔다. 선물을 집 앞에 놓고 갈 테니 아이를 시켜서 찾아가라고.
하얀 종이에 쌓인 정원에서 갖 딴 너무 아름다운 꽃들. 예쁜 작은 종이 안에 돌돌 말아 건네준 정원에서 뜯은 야생 명이나물 한 줌. 빠스칼 어머님이 직접 손뜨개로 만드신 작은 복주머니. 그 안에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작은 빨간 거북도 들어있었다. 간단한 편지도 잊지 않았다. 말끔하게 꾸며진 화려한 꽃다발보다 방금 언덕에서 꺾은 듯한 야생화 느낌의 꽃들을 좋아했다. 이웃집 천사 친구들의 선물은 완벽한 나의 취향이었다. 특히 연한 복숭아빛이 도는 모과꽃이 너무 예뻐 한참을 바라보았다.
프랑스인 남편이 오늘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마트에 다녀왔다. 친구가 손수 만들어준 마스크가 있는데도 왜 안 쓰고 나갔냐는 나의 핀잔에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냥 습관적으로 쓰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한 거 다 알거든!) 마스크 만들어준 친구의 프랑스 남편도 똑같다고 한다. 아내가 만들어줘도 안 쓰단다. 프랑스 사람들이 이렇다. 좌우지간 남편은 내일부터 꼭 마스크를 착용하고 마트에 가기로 했다. 잔소리를 해야 한다.
며칠 전 한국에서 연락을 받았다. 부모님께서 내 거랑 아이거 8장씩 마스크를 보내셨다고 한다. 친구도 면마스크를 보냈다고 연락이 왔다. 이 봄, 한국에서 건너 올 택배를 기다리는 설렘만으로도 충분히 따사롭다.
* 사진과 기사참고: francebleu.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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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프랑스 낯설게 보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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