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 집,
그 집에 가보고 싶었다.
3년 전 겨울 혼자 한국에 갔을 때, 그동안 가보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던 곳들을 가보고 싶었다. 그곳은 어떤 멋진 여행지가 아니라, 어릴 적에 살았던 동네와 다녔던 학교 그리고 내가 살았던 집이었다.
그중에 제일 가보고 싶던 곳은 그 집이었다. 그 집, 나의 분열이 탄생한 곳.
유치원을 다니던 6살 때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집에 살았었다. 지방도시의 변두리, 논두렁과 야산이 있던 시골 같은 곳에 있던 작은 3층 연립주택 단지. 라동 102호.
가동, 나동, 다동, 라동. 우리 단지는 라동까지 있었다. 각 동마다 학교 친구들이 하나씩 살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의 이미지에 따라 각 동들의 느낌이 다르게 느껴졌었다. 나동은 시크한 분위기를 풍기던 현준이처럼 시크하게 느껴졌고, 다동은 친한 친구 지연이처럼 똑부러져 보였다. 가동 밑으로는 단지 내 슈퍼마켓이, 단지 입구 맞은편에는 작은 세탁소가 있었다.
주변에는 온통 논과 밭과 산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들은 나와 동생들의 놀이터였다.
우리는 단지 바로 옆에 넓게 펼쳐져있던 논두렁을 매일 뛰어다니며 놀았다. 올챙이를 잡고 소금쟁이도 잡고 그러다 거머리라도 다리에 붙으면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곤 했다. 그렇게 한참을 논두렁에서 놀다가 그 옆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 손과 발을 씻고 집으로 돌아갔다.
봄에는 뒷산의 복숭아 과수원을 헤집고 다니며 놀았다. 복숭아나무를 원숭이처럼 오르내리며 술래잡기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고, 그게 지겨워지면 바로 옆 산속으로 들어가 아카시아 숲 속을 뛰어다니며 수북이 쌓인 나뭇잎 속을 굴러다니며 놀았다. 어느 여름날은 아카시아꽃을 너무 많이 따온 나머지 엄마가 그것으로 술을 담그기까지 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버스가 다니는 곧게 난 큰길이 있었지만, 나와 동생들은 굳이 옆 산길로 돌아서 오는 것을 더 좋아했다. 작게 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우산풀을 꺾어 우산을 만들고 클로버 꽃을 따서 꽃팔찌를 만들고 풀피리를 불고 유채꽃밭을 지나며 유채꽃을 따 먹곤 하였다. 겨울이면 산 옆에 커다란 방죽에서 나무썰매를 타고 놀았고 방죽 위에 걸쳐져 있던 동그란 외나무다리를 누가 빨리 건너는지 시합을 하곤 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러한 자연 속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이었는지.
지나고서 알았다. 자연 속에서 뛰어놀았던 그 시간들이, 내 안 깊숙이 숨겨져 있던 나의 어둠을 밝혀주었던 빛이었다는 것을.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그 뒷산의 풍경과 논두렁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때의 순간들이 빛처럼 생생하게 기억나기에.
엄마와 둘이 점심을 먹고, 엄마가 뭐하고 싶냐 물었을 때 나는 '그 집'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같이 갈까 물었지만 나는 혼자 가보고 싶었다. 그때의 감정을 오롯이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화사한 햇살과 파란 하늘, 청량한 공기가 흐르는 따스한 오후.
여기저기 개발 되고 큰길들이 뻥뻥 뚫려 있었기에 논두렁은 아예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고 그 넓은 산도 깎여 나갔지만, 다행히 바로 뒤에 있던 산이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큰길에서 내려 뚜벅뚜벅 단지를 향해 걸어갔다. 어릴 적, 내가 매일 걸었던 그 골목길을. 가동, 나동이 보이고... 맨 마지막에 내가 살았던 라동이 보인다. 순간 멈칫하였다.
보통 집터를 말할 때 풍수의 조건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그 집을 30년 만에 다시 본 순간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히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화사한 봄날 같은 오후였건만, 내가 살던 라동만 뒤의 야산 때문에 시커멓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차갑게 그늘이 져있고 그곳만 어둠이 흐르고 있다. 그 밝은 대낮에.
흉당. 순간 머릿속에서 떠오른 느낌은 그것이었다. 저곳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곳이었구나. 내가 그런 '터'에서 살았었구나. 그 집을 다시 본 그때 느낌은 그것이었다.
라동 가까이에 다가섰다. 두 번째 입구. 계단 2개를 올라가면 오른쪽 집. 콩닥콩닥... 드디어 102호 앞에 섰다. 똑같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순간 나는 6살 때의 나로 돌아가 그 집 문 앞에 서 있었다. 현관문 모양과 색깔, 심지어 초인종까지 그대로였다.
녹이 슨 문을 대충 페이트로 덧입힌 자국. 그리고 8분 음표가 발랄하게 새겨져 있던 초인종. 누르면 '엘리제를 위하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던 그 초인종. 순간, 집 안에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 하마터면 초인종을 누를 뻔하였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라동'을 나와 뒷산으로 난 작은 길을 올랐다. 산 길은 오히려 사방이 훤히 뚫려 있었고 해가 비추고 있었다. 겨울 햇살을 받으며 나는 계속 올랐다. 한 30분쯤 올랐을까.
주변이 아카시아 나무들로 뺑 둘러싸여 있는 둥그스름한 작은 공터가 나왔다. 수북이 쌓여있던 낙엽을 딛고 공터 한가운데로 가 가만히 서있었다. 그리고 산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았다. 뜨겁게 올라오는 느낌... 그 순간 산이 나를 가만히 안아주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아카시아를 뜯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거기에 있었고, 산은 그때처럼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혼자 있던 그 날들도 너는 나를... 안아주고 있었구나'
어린 날들. 무언지도 모를 아픔 속에서 어리둥절하던 그때에도, 산은 늘 내 곁에 있었다는 그 마음이 스치자 마음속에 한없는 따뜻함이 차올랐다. 햇볕 아래.. 하얀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라동 102호와 화해를 하고 싶었던 나. 그 집에서의 시간들을 이제는 보내주고 싶었던 나. 그렇게 내 모든 분열을 끊어내고 싶었던 나. 그 날 오후 나는, 비로소 나의 그 시간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었다. 나의 작은 뒷동산에 올라. "잘 가렴. 그리고 이제는 돌아오지 마렴. 나는 이제 너를 저 동산에 묻었으니"
며칠 후, 내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분을 찾아가 그날 오후를 얘기해드렸다.
"산이 나를.... 안아줬어요"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나를 으스러지듯 꼭 안아주었다.
"이그. 잘했어 잘했어. 정말 잘했어..."
밖에는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 그림들 :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