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산책 Jan 22. 2021

내 마음에 남은 시간.
'깻잎 머리' 친구들

나의 중학 시절, 그 친구들


 유년시절의 어떤 감정, 나를 지배하던 쓸쓸한 감정으로 내성적이던 어린 시절을 지나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를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고 살아보니 생활에서 많은 것들이 무척 불편하다는 인식이었다. 나는 그것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그러한 내 마음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어제까지의 내 모습을 그와 반대로 '변신' 시키는 것.
 
그렇게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어두운 그림자'를 치우고 그 앞에 '밝은 페르소나'를 놓았다. 

사실 이미 내 안에 가지고 있었던 모습. 그것을 나는 꺼내었고, 세상에 비치는 내 모습을 그것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그러기에 새로운 터전 새로운 관계라는 새 출발은 나에게 매우 큰 설렘을 안겨 주었다. 
 
 나는 소극적인 아이에서 적극적인 아이로 돌변했으며, 친구들과 재잘재잘 떠드는 수다쟁이가 되었으며, 모범생의 틀을 벗어나는 무수한 '도발'들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수업시간에 짝꿍과 선생님 몰래 도시락 훔쳐먹기. 복도를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그러다 벌 받기. 학교 앞 오락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들과 보글보글 하기. 친구들 따라 롤러장 다니며 런던 나잇 선율 속에 몸을 맡기기. 소위 '노는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우정을 나누기.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친구들 앞에서 내가, 그 말이 없던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으로 '변신'했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친구들에게 무슨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건, 친구들이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자주 나를 둘러싸고 모여 앉아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던 그 모습이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언제나 학교의 반항아들 '깻잎 머리' 붙이고 다니던 친구들이었다. 
 
 앞머리를 스프레이로 한껏 올리고 다니던 지숙이, 그 무리에서 대장 노릇을 하던 호탕한 경미,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던 또 다른 몇몇의 친구들. 지숙이와 경미는 늘 당시에 유행하던 검은색 '소방차 바지'에 어깨에 징이 박힌 재킷들을 입었고 유행하는 최신 춤 동작들을 우리에게 능숙하게 보여주곤 하였다. 
 
그 친구들은 딱 봐도 튀었고 반항했고 낙인찍혔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그 친구들은 나를 좋아했다. 


우리 예뻤던 날들. Maurice Denis, <July>


 다른 친구들에게 버럭하다가도 나에게만은 환하게 웃어주었던 친구들. 나는 당시 자주 쓸데없이 전교 1등을 하던 아이였음에도, 나와 1,2등을 다투던 엄친딸이나 세상 제일 똑똑해 보이던 전교 회장 같은 친구들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 아이들하고보다 지숙이와 경미와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물론 나에게는 다른 친한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는 매번 그 친구들의 순수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나도 그 친구들이 좋았다. 
 

 그 친구들이 학생부라는 비인권적인 장치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당시 막 부임했던 도덕 선생님이 학생부장을, 그와 비슷한 또래의 다른 선생님들이 학생부에 배정되었고, 그들은 '학교 기강 확립'이라는 명목 하에 정작 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던 나의 친구들을 하교 후 빈 교실에서 돌아가며 폭력으로 제압하곤 했었다는 것을.


 어느 날 우연히 그 앞을 지나다 그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지숙이와 경미가 엉덩이를 깐 채로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도덕 선생님은 손에 대걸레를 든 채로 서 있었다. 친구들의 엉덩이는 온통 시커멓게 멍이 들어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선생님은 재빨리 교실 문을 닫았다. 

마음이 좋지 않았던 나는 교문 앞에서 친구들을 기다렸고, 잠시 후 지숙이와 경미는 쓰러질 듯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 나오다 나를 보며 다시 생긋 웃었다. 지숙이가 말했다. "나는 너를 보면 기분이 좋아. 잘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밝게 웃고 있는 지숙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몇 달이 지난 후였다. 연락을 하고 지낸 사이도 아니었던 지숙이에게 어느 날 집으로 전화가 왔다. 밤이 늦은 시간이었다. "왠 일이야 이 시간에? 반갑다. 잘 지내?" 나의 인사에 지숙이는 힘 없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응, 그냥 니 생각나서 전화했어.. 보고 싶어서... 잘 지내라" 그것이 지숙이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그리고 며칠 후 지숙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멍했다. 사실 내가 많은 마음을 따로 챙겨 준 적도 없었던 친구들. 그저 함께 놀고 이야기하는 게 다였던 친구들. 내게는 '똑같은 친구들'이었던 친구들. 하지만 그 친구들에게는 나의 그 마음이, 그저 차별 없이 바라봐주었던 마음이, 스스럼없이 어울려주었던 마음이, 매우 소중한 것이었구나 싶으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훨훨 날아가 그날처럼. Felix Vallotton, <Balloon>


 그러한 친구들은 보통 가정에서 여러 종류의 심각한 학대로 고통받고 자라는 친구들이다. 그렇기에 늘 모두에게 어둡고 날이 서있다. 그래서 세상은 그들을 피한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나에게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상 다 살아버린 노인 같은 눈빛을 하고 있던 지숙이의 그 작은 눈.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미소. 늘 버럭 했지만 누구보다 정이 가득 담겨있던 경미의 서글서글한 눈. 그 호탕한 웃음소리. 그 아이들의 바보 같은 농담들까지 다... 내게는 반짝이는 순간으로 간직되어 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실은 가장 생각나고 보고 싶은 친구들은 그 친구들이다

경미는 어디서 누구의 엄마로 살고 있을까. 엄마가 되긴 했을까. 먼저 간 지숙이가 보고 싶을까. 지숙이는 잘 있을까. 
어디서든 누구 와든. 그 친구들이 이제는 더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은 다시 그때로 돌아가 그 친구들 앞에서 또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다. 


곱게 눈이 내린 겨울 이야기도. 저 언덕 너머 들려오는 노래 이야기도. 

내가 품게 된 꿈 이야기도... 






필자의 다른 고향 이야기


* 메인 그림 : Paul Ranson, <Digitales>



작가의 이전글 나의 작은, 뒷동산에 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