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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Apr 30. 2021

안소니에게 보내는, 캔디의 마지막 말

아홉살 소녀의 첫사랑


볕이 좋았던 오후, 여느 때처럼 버스에 올라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찰랑이는 강물처럼...
내 눈 앞에 나타난 안소니.
  
 중학생 정도로 보이던 단발머리 아이. 그 아이는 말 그대로 캔디에 나오는 그 안소니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자연스러운 금발머리, 푸르고 깊은 눈, 반듯한 이목구비, 안소니는 터키블루 색깔의 배낭을 무릎에 놓은 채 창 밖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15살쯤 돼 보였을까. 하지만 그 아이의 눈빛은 분명, 철없는 개구쟁이기 보다는, 저 멀리 바다를 불러오는 듯 깊은 허공을 닮아 있었다. 그랬기에 그 순간 내가 안소니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 눈빛을 본 순간, 아주 오래전 내게도 있었던 나의 안소니가 떠올랐다.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나의 세상에 나타났던 그 아이가. 나는 아홉 살이던 해 전학을 왔고, 그 아이는 나의 짝꿍이었다.
딱 봐도 귀공자 같은 얼굴에 아름다운 연갈색머리를 하고 있던 아이. 무엇보다 그 아이 눈빛은 저 깊은 바다처럼 촉촉하고 깊었다. 나는 보자마자 '나의 안소니'라고 생각하였다.

 
 겨울이면 크림색 스웨터를 입어 하얀 얼굴에서 더 빛이 났던 나의 안소니. 교실에서 늘 안소니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었지만, 한 가지 싫은 시간이 있었다. 점심시간이었다.
고급 도시락 통을 열면 케첩이 예쁘게 얹어져 있던 돈가스나 줄줄이 햄이 나오던 안소니 앞에서 나는, 후줄근한 양은 도시락통 안에 든 검은콩 조림과 김치를 꺼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도시락 메뉴는 거의 매일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어쩌다 계란 후라이를 엄마가 밥 위에 넓게 펴서 얹어주면 그나마 덜 창피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눈치챈 안소니는 늘 먼저 말했다. "내 거 같이 먹자" "응... 고마워"   


슬프고 여린 소년과의. 어린 날

  

 우리는 나란히 학급 반장과 부반장이 되었다. 그리고 가을 운동회 때 단체무용으로 꼭두각시를 했을 때도 안소니와 나는 짝꿍이었다. 연습을 할 때마다, 안소니 얼굴을 바라본 채로 연지 곤지를 찍으며 나는 마냥 행복했었다. 안소니는 나를 하교 후 집에 자주 초대하였다. 우리는 안소니 방에서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술래잡기를 하였고 함께 거실에 앉아 만화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안소니의 바이올린 선생님이 오시면 안소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방에서 혼자 말없이 들었다.
 
 안소니 엄마는 나를 예뻐하셨다. 갈 때마다 맛있는 간식들과 따뜻한 미소로 대해주셨다. 그래서인지 안소니가 나를 데려오는 것이 더 당당하게 느껴졌다. 부자집 아줌마가 나를 존중해준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안소니가 우리 집에 와보고 싶다고 했다. 볼 것도 없는 우리 집에 안소니를 초대하는 것이 머뭇거려졌지만 용기를 내어 안소니를 하교 후 집으로 데리고 왔다. 볼 것이라곤 한쪽 방에 있던 검은색 피아노. 우리는 나란히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안소니는 내 입술에 짧은 입맞춤을 하였다. 생애 첫 입맞춤. 
 
 그렇게 안소니는 내게, 언제나 친절할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까칠하고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단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었다. 늘 교실도 멀리 있었다. 안소니는 어느 날부터 하얀 얼굴에 구김살 없이 명랑한 부잣집 여자 아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 애는 유명 브랜드 아파트 48평에 사는 아이였고, 어쩌다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돼버린 아이였다. 그리고 안소니는 내 앞에서 그 애에게, 화이트 데이날 사탕을 주었다.  
 
 졸업을 며칠 남겨놓지 않은 어느 날, 언제나처럼 하교 후 그 친구 집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안소니에게 친구 집으로 전화가 왔다. 친구는 얼굴이 발그레해져 전화를 받았다. 근데 갑자기 화난 표정으로 내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너 바꿔달래. 목소리 이쁜 애 바꾸랜다" 


나에게 '옴므파탈'을 알려준, 못된 너


 나는 고개를 돌린 채 수화기를 들었다. 안소니가 말했다. "이따가 너네 집 앞으로 갈 테니까 거기서 보자" 집 앞에서 안소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어. 이거 주려고" 그는 퉁명스런 얼굴로 작은 선물을 내밀었다. 그리고 졸업식날, 안소니는 다시 내 앞에서, 그 하얀 얼굴 친구와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잊혀진 이름이었다. 그런데 수능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고3 어느 날 우리는 우연히 다시 만났다. '아이러브 스쿨' 동창회에서였다. 느지막이 나타난 그 애와 우리는 함께 소주칵테일을 마셨고 노래방에 갔다. 다음날 안소니는 내게 따로 연락을 했다. 안소니는 말했다. 자기는 배우가 될 거고, 서울의 모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할 거라고. 그리고 말했다.
 
 "사실, 내가 좋아한 사람은 너였어"
 
 그는 나를 대학 가서 정식으로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배우에겐 꿈의 학교인 그곳에 진학하였고 나는 대입에 실패했다. 나는 종적을 감추었다. 안소니는 우리집에 연신 전화를 하며 나를 찾았다. 그리고 7년 후 우리는 우연히 또 서울에서 재회를 했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안소니는 화려한 배우 친구들과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주인공을 맡은 연극에 나를 초대했다. 꽃다발을 주러 오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예술 좀 한다는' 부르주아 공주님들 같았다. 얼마 전 흥행몰이를 한 영화의 주연 여배우도 있었다. 나는 멀리서 얼굴만 보고 나왔다. 그리고 어느 날, 안소니가 문득 나의 옥탑방에 와보고 싶다고 했다. 배우 친구를 한 명 데려왔고, 우리는 별이 보이던 여름밤,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옥상 파라솔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안소니는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며 말했다.  


너의 슬픈 눈빛을. 이젠 보내주기를


 "좋다... 너무 좋다.... 이렇게 작은 방인데... 별이 있고.. 정말 좋다..."

 며칠  안소니는 뜬금없이 내게 울면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내게 청혼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고,  아이는 그저 힘든 것을 내게 기대고 싶어한다는  알았다. 까칠한 나의 안소니는 사실 여리고 약한 소년이었던 것이다.  아이가 가여웠다. 나는  친구를 달랬고  후로 연락하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안소니가  영화에 작은 조연으로 출연한 것을 보았다.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내가 아홉   보았던  고운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끝도 없는 열등감과 뿌리 깊은 분노 일그러진 야망만이 이글대던 눈빛. 마음이 아팠다.
 
 결국,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서, 너는 거기에 있구나.
 
 "이제 그만.... 너를 놓아줘" 
 
 버스 창가에 앉아있던 금발머리 안소니를 보며, 나의 안소니에게 해주고 싶던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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