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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May 25. 2019

혼자 걸어야 만나지는 것들

산책, 나를 비우고 나를 만나는 시간


혼자 걷는 것을 좋아했다. 여행도 혼자 가는 것이 좋았다. 그래야 자연과 오롯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무도 없는 자연 속을 혼자 걷는 것이다. 거기에는 무엇보다 나 자신을 오롯이 만날 수 있는 기쁨이 있기에.
 
아이를 낳고 기르며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체력은 바닥 나 있었다. 어디를 걸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던 몇 년 간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다시 혼자 산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되찾은 가장 큰 기쁨 중에 하나였다. 
 
당장 여행은 갈 수 없지만 걸을 수는 있었기에. 대자연 속에 있을 순 없지만 나무와 풀숲 사이를 걸을 수는 있었기에.
 
특히 청량한 공기가 아직 남아있는 이른 아침의 강가나 호숫가를 걷는 걸 좋아했다. 그 순간만큼은 내 모든 어제의 때가 벗겨지는 듯 헝클어져있던 머릿속이 정돈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자연은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조용히 나를 데려다주었다.
 
유난히 아침 산책을 좋아했던 건 그러한 이유들이었다.
 

나를 만나는 가장 은밀하고 소중한 시간


전적으로 나를 텅 비우고 있는 상태. '내가 벗어진 자리'에서 바라보는 자연은 그 자체로 더없이 아름다웠다. 자연의 순수한 생명력은 꺼져가는 내 생명력을 깨워주었다. 

내가 걸려있는 문제들은 '에고'라는 필터를 통하지 않은 채 내 앞에 나타나곤 하였다. 골몰하고 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이 저절로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래서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나는 더 아침 산책을 나가곤 했다. 걷다 보면
내 안에 쌓아둔 모든 '탁함들'이 스스로 비워지고 있음을 알았기에.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기에.
 
그렇게 내게 가장 큰 '낙'이었던 아침산책을 안 한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아차렸다. 겨울 동안 나는. 나를 떠나 있었으므로.
 
겨우내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 따라 몸이 많이 굳어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돌이 되겠다' 싶던 날 벽장 속에서 요가매트를 꺼냈다.
 
내일은 바람이 좀 잠잠했으면. 고요한 걸음이 또 나를 어떤 순간으로 데려다 줄지 문득 설레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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