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을 낯설게 본다는 것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단절한 것이 여러 개 있다. 여섯 살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다니던 교회를 스스로 그만두었고, 텔레비전과 라디오 그리고 신문을 끊었다.
우리 생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세상의 소란들을 굳이 알고 싶지 않았고, 의미 없는 수다들로 내 시간을 채우고 싶지 않았다. 매일매일 정치면을 정독하고 정치이슈에 열을 올리는 어른들을 보면서, 저들이 정치에 가지고 있는 관심과 열정의 반만이라도 자신과 가족들을 돌아본다면 훨씬 더 행복할텐데 라고 생각했다.
막상 자기 자신과 가족들에게는 무관심하거나 잘 알지 못하면서, 외부의 세상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감정을 이입하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그런 세상이 매우 부자연스럽고 어리석어 보였다.
그렇듯 나에게 외부 소식을 전하는 현대적 창구인 그것들은, 우리들을 우리의 본성과 생명력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무언가였고, 우리를 자신과 만날 수 없도록 의식을 교란시키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다.
그것들은 내 눈엔, 우리 생활에서 반드시 경계해야 할 '불온한 것들'이었다.
교회를 그만두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가던 성실한 어린 신자였고, 매일 저녁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와 가족과 친구들과 세계 평화를 위해 진심을 다해 기도하던 아이였다. 마음이 힘든 날은 더욱 온 마음으로 나를 굽어살펴주시는 아버지를 찾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하늘에 계시다는 신에게 강한 의문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어떤 인식'이 나에게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원하는 계율은 즉각적인 거부감이 들만큼 강압적이고 그 내용들은 세세하게 부당하다고 느껴진다는 분별의 탄생. 더구나 자기만이 진리라는 엄포는 자기중심적인 오만한 고집을 보는 듯했고, 무엇보다 그 계율을 지키지 않을 시 우리는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라는 부분이었다. 그것은 극단적으로 공포를 조장하는 지점이었는데 비겁한 협박처럼 느껴져 동의할 수 없었다.
그처럼, 협박과 공포감으로 지배하려는 '신' 따위는 내게 필요 없었다.
나의 거부감을 높이는 데는 주변의 독실한 신자들도 큰 역할을 했다. 나를 다시 아버지 품으로 데려가려던 그들의 노력이 번번이 실패했던 이유는, 그들은 마치 아버지라 불리는 자의 강력한 주문에 집어삼켜진 영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고 그들의 맹목성은 무언가에 쫒기는 강박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은 모두 선하고 성실한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서 멀어진 나를 다시 아버지 곁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그들의 집념은 모든 면에서 자연스럽지 않았기에 거부감만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그게 목사님이든 교수님이든 내게는 측은하게 느껴졌으며 그들을 매우 작게 느껴지게 했다. 신에게 삶을 건 사람들의 모습이 저것일 뿐이라면 차라리 나는 그런 신을 섬기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설사 신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교회라는 성전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적어도 내가 교회보다는 큰 존재구나, 어쩌면 신 또한 내가 알던 절대 법칙이 될 수 없구나, 라는 막연한 결론을 안고 나는 조용히 교회를 끊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그때부터, 삶의 본질을 볼 수 없게 하는 세상의 모든 소음들과 멀어지고자 한 무의식적 의지가 작동되었던 듯하다. 그렇게 나는 불편한 느낌을 주던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의식적으로 삶에서 제거해 나갔다. 그것에는 온갖 잡지와 책들과 쓸데없는 관계와 수다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순수하지 못한 생각이나 의도, 마음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내 안의 순수한 의식이 교란됨을 느끼거나 커다란 피로감을 느꼈는데, 그것들을 단절함으로써만 나는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연히 모두와 함께 있어도 혼자라 느꼈고, 외로움은 내게 아주 익숙하고 친숙한 정서가 되었다.
학교 공부가 들어올 리 없었다. 교실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는 고문이었고, 입시에 맞춰진 생활패턴은 감수성이 예민한 나의 몸과 마음을 병든 상태로 몰아갔다. 친구들과 떠들고 있는 순간에도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던 어느 저녁이었다. 어두운 정적을 뚫고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수군거리는 소리와 울음소리들이 차례로 들려왔다. 같은 건물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던 한 고3 언니가 우리 교실 바로 위층에서 투신을 한 것이었다. 즉사하였다고 들었다.
그 순간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사건이 있은 후 학교 측은 사건을 쉬쉬하기 바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든 게 정상적으로 흘러가기를 바랐다.
그것은 세상의 잡음이나 신의 의미와는 또 다른 생의 인식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모습과 가치는 우리가 배운 것처럼 올바른 것도 지켜져야 하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생명 존중과도 상관이 없는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인식이었다.
나는 알아차렸다. 생에서 진짜 가치로운 것들은 세상이 가르쳐주지 않으며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것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열일곱, 그렇게 나의 내면으로의 하강이 시작되었다. 낯설게 보기가 시작된 것이다.
* 사진들 : 사랑하는 아일랜드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