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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Dec 26. 2019

어머님이 말했다. "돈 안 주는데 왜 글을 쓰니?"

행복하니까 써요 어머니


 프랑스에서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시댁 가족들과 다 함께 모여 지내고 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그 많은 인원이 날이 추우니 별 일 없이 집에 다 같이 종일 붙어있다. 집이 넓긴 하지만, 세세한 표정과 동작들까지 다 보아야 하는 것 보여야 하는 것은 분명 신경 쓰이고 피곤한 일이다.

 물론, 가족들이 낮잠을 자거나 쇼핑을 할 때, 나는 나의 방에서 잠시나마 글도 쓰고 브런치에도 들어가지만, 그 긴긴 오후 시간을 혼자 방에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슬그머니 방에서 나와 함께 얼굴을 마주하며 앉아 있을 때면, '정적을 견디지 못하는' 어머님은 늘 먼저 이런저런 말을 건네신다.

"그래서, 요즘에 너는 블로그에 무슨 글을 쓰니?"


 얼마 전에,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을 시댁 가족들에게 알렸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지만, 시댁 가족들에게는 일부러 말을 했다.

 내가, '귀한 아들'이 힘들게 돈 벌 때 밥이나 축 내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그렇게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놀고 먹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고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현재를 '알렸다'. 나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플랫폼에서 글을 쓰고 있고, 나름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기다리고 있다고. 다시 오늘의 어머님 질문, 나는 살짝 한 박자 늦은 웃음으로 말했다. "여전히 BTS를 쓰고, 영화도 써요"


 정작 내가 사력을 다해 쓰고 완성했던, 프랑스에서의 지난 십 년의 세월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에 대한 글을 썼다는 말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꼭 말을 해야만 할 날이 오지 않는 바에야 굳이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님은 내게 '또' 그 말을 하셨다.


"독자수가 많으면 뭐하니. 돈을 안 준다며. 안타깝다. 돈을 안 주는데 거기에 글을 쓰는 이유가 뭐야?"


 옆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듣고 있었다. 남편이 옆에서 어머님을 거드는 한마디를 던진다.
내가 처음 남편에게 브런치를 설명하며 드디어 이제 글을 쓰게 되었다고, 기쁘다고 얘기했을 때 남편의 첫마디도 이와 같았다. "돈은 주는 거야?"

 한국에서 핫한지 뭔지는 모르겠고, 언제 너를 '발견해서' 너를 작가로 만들어주고 책을 만들어줄 것인지도 돈을 벌게 해 줄 것인지도 그저 까마득하니, 당장의 '가시적인 결과'를 볼 수 있는, 만져질 수 있는 물질적 성취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에게, 새삼스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내가 기쁜 것을 한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전에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미세하게나마 상처를 받았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타인의 시선과 기준'을 그때그때 흘려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머님의 질문에 대답을 드렸다.


"저는 글을 쓰는 게 그냥 좋아요. 그리고 제 글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저는 기뻐요."


 어머님의 물질적인 성정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남편은 그러한 어머님에게서 양육된 사람이다. 극단적인 합리와 이성의 방식으로 살아온 그들에게 '물질적 가치'란, 현실적 생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그들이 살아온 방식과 세월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문제' 이지 나의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경제적 독립을 하고있지 못하다 해서, 내가 살림을 하고 아이를 돌봐 온 정성과 시간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게 될 수 없듯이.  

 그렇기에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만, 그 가치에 동의하지 않고 개의치 않는다는 몸짓을 보낼 수 있다.


 다만, 이제는 그런 어머님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살 날이 얼마나 남으셨다고, 여전히 그것을 놓지 못하고 계신 그 모습 속에서 어머님이 평생 지니고 계셨던 불안과 상처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머님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머님 역시 그렇게 배웠고 자랐을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한 건, 나는 어머님의 기준을 주입할 수 있는 어린애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당신 생각일 뿐임'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나이가 한참 많은 시누이들과 가족들이 옆에서 모두 함구하고 있을 , 소리없는 동의를 하고 있을 때, 가장 어린 이방인 며느리인 내가 나서서 균열을 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말을 한다.


"어머님, 돈이  안되면 어때요. 그냥 좋으면 되죠. 그냥 행복하면 되죠.  그래요?"




* 모든 그림 : Vincent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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