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경이로움이 크게 다가오는 건 봄이 지닌 빛깔과 공기 때문일 것이다. 긴 어둠의 끝 순한 바람과 함께 솟아난 연둣빛. 겨울의 삭막함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어린 빛은 언제 보아도 설렌다. 칙칙하게 고여있던 시간도 딱딱하게 굳어있던 몸도 부드러운 기지개를 켜듯 생명의 기운은 대지를 감싸고 우리 몸에도 생명력이 깃든다. 그때 우리는 척박한 땅을 뚫고 나온 최초의 생명을 본다.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닌 초록의 잎들이 오는 시간. 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먹거리 '봄나물'을 먹는다.
어릴 때부터 나물류를 좋아했다. 엄마의 밥상에는 언제나 여러 종류의 김치와 함께 다양한 나물들이 올라왔었다. 시골에서 직접 밭을 일구시는 외할머니의 손맛은 우리집 밥상의 원조였다. 그렇기에 시금치나물은 너무 평범한 반찬이었고 더 시골스러운 반찬들에 나와 동생들은 열광했다. 나물 반찬만 있으면 우리는 고기가 없어도 밥을 두 그릇씩 비웠다. 새콤한 참나물, 쌉쏘름한 취나물, 상큼한 돌나물, 씹는 맛이 좋은 원추리, 고소한 고사리나물, 말린 호박나물, 새콤한 곰취 장아찌, 두릅 초무침, 들깨로 버무린 머웃대 나물...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건 할머니 밭에서 뚝뚝 끊어서 바로 고추장에 찍어 먹던 생마늘쫑이나 새콤달콤 부추무침이었다. 할머니가 쑥을 한 바구니 뜯어라도 온 날이면 해주시던 쑥된장무침, 쑥국, 쑥부침개, 외할머니 참깨로 직접 짠 참기름 듬뿍 묻힌 외할머니 쑥개떡은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그런 우리집 밥상이 나에게는 언제나 '최고의 밥상'이었다. 냉이, 달래, 봄동, 명이나물은 또 어떤가. 봄동 겉절이와 봄동전은 배추와는 또 다른 고소함이 있었고 냉이를 넣은 찌개는 왠지 더 힘이 불쑥불쑥 솟는 듯했다.
프랑스에 살면서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고생을 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슬펐던 건 내가 사랑하는 산나물들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람들은 '나물'이라는 개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산에서 나는 풀'을 채취해 먹는다는 식문화 자체를 매우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영양가면에서도 따라올 자가 없는 산나물들의 약효는 둘째치고 우선 내가 피부로 느끼는 프랑스의 채소 문화는 너무도 빈약하게만 느껴졌다. 프랑스 사람들이 '채소를 먹는다'라 함은 '샐러드를 먹는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이 나라의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음식 형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젊은층들을 겨냥한 모던 식당이나 채식 식당, 고급 식당이 아닌 이상 다양한 채소가 곁들여 나오는 식당 자체가 우선 드물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밥을 먹는다'라 함은 '고기를 먹는다'와 거의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고기, 고기, 고기, 어쩌다 생선, 그 옆에 튀긴 감자, 아니면 삶은 감자, 가끔 샐러드, 그리고 빵. 이것이 가장 흔한 '프랑스 기본 식단' 형태다. 가끔 스파게티 면이나 라비올리라는 삶은 면이 곁들여 나오지만 그것도 이탈리아 식문화 영향이지 프랑스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고기도 안 좋아하고, 스테이크는 더더욱 안 좋아하며, 밀가루 소화를 힘들어하는 내게는 그야말로 '먹잘 것이 없는 밥상'처럼만 느껴졌던 것이다.
내게는 한국쌀로 지은 찰진 밥과 다양한 채소반찬들 그리고 나물들이 있어야 그제야 '밥'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외할머니 촌입맛으로 자란 입맛 때문이다. 그런 '촌년'이 프랑스로 시집을 왔으니, 시댁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함께 프랑스 식당을 갈 때마다 나는 얼마나 난감하였었던지. 그것은 내가 매우 예민한 미각을 지닌 미식가라는 것도 한몫 거들었다. 근데 그 미식의 기준이 하필 '한국 토종 재료와 조리법'에 특화되어 있다는 엄청난 맹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이 아이러니함.
봄만 되면 한국의 봄나물들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한국 시금치만큼 연하지 않지만 아쉬운 대로 시금치를 사다 무쳐 먹고, 프렌치빈이라는 길쭉한 콩을 삶아 된장무침을 해 먹고, 작은 홍당무의 여린 열뭇잎을 삶아 무쳐먹는 정도가 내가 먹을 수 있는 나물의 거의 전부였던 이곳.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심봤다!"를 외치게 되었었으니, 바로 명이나물을 그것도 자연산 명이나물을 우리집 바로 뒤에서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사 온 지 두 해가 넘어가던 어느 봄, 뒷집의 빠스칼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갔을 때 나는 샐러드 안에 들어있던 '특별한 풀'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그 맛은 이미 내가 알던 것처럼 여겨졌고 심지어 입맛에 아주 딱 맞았다. 적당한 풍미의 마늘향과 씹었을 때 느껴지는 옹골찬 기운으로 그것이 예사로운 풀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빠스칼에게 바로 물었다.
"이 풀이름이 뭐야?" "아 그거? '곰의 마늘'이야" ".....뭐?? 곰의 마늘? 곰? 산에 사는 곰?"
그때만 해도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서 명이나물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이나물의 프랑스 이름을 들은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곰의 마늘'이라니. 한국인이라면 바로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단군 신화'이다. 산에 그 많은 동물들 중에 왜 하필 곰이며, 왜 하필 마늘이지? 아니, 프랑스 애들이 우리 단군 신화 얘기를 어떻게 알고 이렇게 이름을 지었지? 그래, 단군신화에 나오는 마늘은 우리가 평소에 알던 그 마늘이 아니라 이 산마늘이었을 거야! 그게 더 개연성이 있지! 산마늘은 야산 어디서나 흔하게 있는 야생초니까 곰이 접근하기에도 더 자연스럽잖아?
나는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왕성한 탐구력을 자극하기에 이처럼 좋은 소재도 없었다. 우선 명이나물의 정확한 이름은 '산마늘'이었다. 명이나물이라는 이름은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산마늘에 한하여 '생명을 이어준 나물'이라 해서 붙여진 특별한 이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로부터 '신선초'로 불렸던 명이나물의 효능은 엄청나다. 풍부한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은 물론 우유의 몇십 배에 달하는 칼슘을 함유하여 소화와 피로회복을 돕고 노화를 예방하며 몸의 저항력을 높여 구충과 해독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뛰어난 항염 효과로 상처를 쉽게 아물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여 신장과 비장을 보호하며 혈행 개선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여 항암효과에도 탁월하다 하니 실로 신선초라 불릴만하다.
산마늘의 종류는 자생지를 기준으로 3가지로 나뉘는데, 한국을 포함한 시베리아 지역, 유럽 지역, 아메리카 지역이었다. 잎 모양은 비슷하나 꽃 모양이 다르고 줄기 밑대의 형태가 조금 다르기에 학명이 다르다. 그러나 재밌는 건, 모든 곳에서 부르는 이름만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Wild garlic(야생 마늘)이라고도 부르지만 굳이 세계의 모든 곳에서는 Bear's garlic(곰의 마늘)이라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프랑스 이름도 L'ail des ours(곰의 마늘)이다.
유럽의 산마늘 자생지들을 찾아보았다. 그곳들은 모두 고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특히 알프스를 중심으로 신석기시대 유적지가 발굴된 독일과 스위스의 산간 지역, 옛 켈트인들의 거주지였던 프랑스 전역과 영국과 아일랜드 전역이 그에 해당되었다. 그래서 프랑스 야산에는 봄이면 잡초처럼 명이나물이 여기저기 있었던 거구나를 알 수 있었다. (실제로 그렇다) 그리고 나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유럽에서도 유명한 산마늘 자생지이자 집중 재배지역이 하나 있는데, 그곳은 알프스산이 위치한 스위스 북부의 한 작은 마을로 5천년 전의 신석기 시대 유적과 거주지가 발견된 곳이었다.
그 마을의 이름은 '단겐' (Thayngen), 그곳의 원주민은 시베리아에서 넘어온 동아시아 혈통과 유럽의 혼혈인 '사미족' (Saami)이었다! (참고자료: http://bitly.kr/VpHebf0bb, http://bitly.kr/GfTgpdWJi)
저 '단겐'이 '단군'으로 들리는 건 나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본글과 이어진 2편
https://brunch.co.kr/@namoosanchek/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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