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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May 11. 2020

브런치 1년,
무지개가 뜬 시간들


 생일을 제대로 챙겨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 딱 한번 엄마가 생일상을 거하게 차려주고 친구들을 초대한 날이 있었다. 그 후로 생일이라고 남들처럼 시끌벅적한 주인공이 되어 선물 꾸러미를 받아 본 적도 거하게 축하를 받아 본 적도 없다. 몇 번 안되던 연애 사건들에 생일이 걸려 본 적도 없었고 친구들과 생일 챙겨주는 것을 해본 적도 없었다. 필요한 것을 요구하거나 원하는 것을 말하거나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생일도 똑같이 지나가곤 했다. 

 스무 살이 넘어서부터 생일은 주로 혼자 보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우울했기 때문이다. 가끔 혼자 극장에서 슬픈 영화를 보며 울거나 주로 여기저기를 정처 없이 싸돌아 다녔다. 청승맞게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날은, 누구보다 내가 가장 기뻐하고 축복해주어야 하는 날이라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내 생일상을 내 손으로 차려 친구들을 초대했다. 마흔 살 생일날이었다. 잡채, 돼지갈비, 김밥, 부침개, 김치, 된장국 등으로 한식 뷔페를 준비한 나는 많은 프랑스 친구들을 초대해 대접하였다. 

 음악 하는 친구는 아코디언을 가져와 밤새 연주를 해주었고 나는 세련된 모던 한복을 꺼내 입고 밤늦도록 친구들과 춤을 추었다. 술을 안 마시지만 그날은 와인도 조금 마셨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역시나 소란스러운 것은 나와 맞지 않았다. '파티'는 한 번으로 족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술도 술자리도 파티도 재미없던 나는 그저, 쑥차나 허브차를 앞에 두고 밤새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할머니처럼.


아이가 어릴 때 함께 놀던, 너무 예쁜 숲 속 달팽이. 바닷가를 걷다 발견한 예쁜 들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여전히 내 친구들은 내 생일을 모른다. 나도 친구들의 생일을 모른다. 가까운 한국의 친구들일수록 그렇다. 마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지 생일까지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기에 서로가 무심해서다. 그렇게 무심할 수 있는 친구이기에 나와 친구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해서다. 억지로 흥을 돋우고 행복을 꾸미는 것은 자연스럽지도 진짜로 즐겁지도 않기 때문이다. 


 시댁과 가장 크게 이질감을 느꼈던 것도 이 부분이었다. 어머님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화려한 파티'를 열곤 했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은 가족 모두가 어김없이 산더미 같은 선물을 받아 안고 행복해했다. 나에게는 매우 이질적인 장면들이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했다. 넘치는 풍요를 넘치게 누리는 것.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시간. 그것이 당연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한 사람. 그것이 익숙한 이방인 며느리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시댁 가족들에게도 말이다. 그러나 삶은 뜻대로 이루져 있지 않다.


 여전히 생일을 잘 안 챙긴다. 선물을 주고받고 챙김을 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무심해서다. 그것이 서운하거나 아쉽지도 않다. 내가 태어난 의미는 타인이 부여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귀하기에 스스로 그 귀함과 감사함을 알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것이 생겼다. 세상에서 가장 촉촉하고 맛있는 생크림 케잌을 먹는 것이다. 생크림빵을 좋아했음에도 생일날 케잌을 먹어 본 기억 자체가 거의 없다. 슬픈 건 프랑스에는 한국처럼 맛있는 생크림빵도 생크림 케잌도 없다는 것이다.


달팽이를 너무 좋아했던 아이는 자주 숲 속에서 찾아오는 달팽이들과 놀았다. 나의 1년은 저 예쁜 달팽이였다.


 엊그제 내가 좋아하는 @강신옥 작가님께서 브런치 첫돌이라고 가족들이 케잌을 사 준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올리셨다. 글 속에서 작가님 가족들이 얼마나 작가님을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어 덩달아 행복해졌다. 그리고 불현듯 생크림 케잌이 먹고 싶어진 것이다. 갸또 퐁당 쇼콜라, 크럼블 푸리후즈, 빠리 브레스트, 딱뜨 미히티흐... 는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는 이 촌스런 입맛은 말이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생크림 케잌을 통째로 사다 놓고 숟가락으로 퍼먹을 예정이다. 뒤늦게 오늘을 기념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1년 전 오늘, 브런치에 첫 글을 썼었다. 그렇게 오늘은 또 다른 생일을 맞았다. 아무리 무심한 나이지만 이 첫 생일은 내가 먼저 축하해주고 싶었다. 무지개가 뜬 시간들. 지난 1년 나를 찾아온 시간들이었다.


 무지개 따라 숲속 달팽이처럼 나를 찾아온 많은 독자분들과 작가님들이 계신다. 언젠가 그분들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생크림 케잌을 앞에 놓고, 밤새도록 쑥차와 허브차를 마시고 싶다. 

 도란도란 하얀 밤을 지새는 건 덤이다.





* 메인그림: 식물세밀화를 그리는 시누이 그림


내 브런치 첫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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