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산책 Jun 26. 2020

산책



오랜만에 강가를 걷는다.
언제봐도 좋은 녹빛 강물. 새들의 지저귐
어느새 봄이 지나고 여름의 문턱.
말없이 일렁이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차분해지는 마음.
 
강이 굽이치는 곳을 돌아설 때였다.
진한 물냄새가 올라온다. 내가 좋아하는 냄새.
내게 고향 같은 이 냄새.
갑자기 눈물이 난다.
물냄새는 언제나 
내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기에 그렇다.
 
물냄새와 같은 자리. 그곳이
내가 돌아갈 곳이라는 것을 안다.
거기가 내 집이라는 것을.
 
그리고 알고 있다.
내게 주어진 고유한 상자에 대하여.
그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우주의 의지라는 것을.
 
나의 상자를 자각하고 받아들인 나는
고요 속에 있다. 태풍의 눈 속이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외롭고 매순간 고독하다.
삶 속의 나는, 모든 것들이 간섭하는 세상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상자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나만의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고요 속에서 잉태된 나의 글이
현실에서 보여지는 내 모습과 같을 수 없음은
나의 몸은 
내 영혼을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얀 눈밭에서, 나는 발자국이 없지만
회색빛 액자 안에서 나는 질척거리고 넘어진다.
인위적인 미소와 만들어진 목소리들은 나를
언제고 어리둥절하게 한다.
눈치 있게 행동하지 않는 나는 여전히
억압을 받아들이라는 현대사회에 적합하지 않다.
나는 빠르고 싶지 않고, 휘둘리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나를 
속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브런치 작가 pugo님 사진


나는 아이처럼 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다이다.
나 자신을 속이며 어른인 체하는 것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아닐 뿐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그것은 환영받지 못한다.
그들에게도 나는 이질적인 성분이다.
나는 느리고, 다르게 바라보고
가슴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틀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는 오늘도

아이의 말이 너무 예뻐 깔깔깔 웃다가

갈 곳 없는 생명들 앞에 조용히 눈물 흘리는

그저 아이처럼 울고 웃는다.
그러나 머물지 않는다.

삿된 마음들에 눈 감지 않는다.

아파하는 마음들에 손 내민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본다.


남들과 같을 필요는 없다.

남들처럼 빨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만의 속도로 걸으면 그만이다.

모두에게 웃어 줄 필요는 없다.

언제나 웃고 있을 필요도 없다.

단 한 사람, 나를 향해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어도

나는 나를 이해하기에 괜찮다.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를 사랑하기에 괜찮다.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도

나는 나 자체로 소중하기에 괜찮다.


나의 행복은

품어주는 사람 속에 있지 않고

내가 품는 마음속에 있다.


내가 세상을 품고 있기에

나는 오늘 행복하다.



다시 물냄새가 올라온다.

폐부를 활짝 열어 냄새를 마신다.

마음이 머물다 갈 곳을 새긴다.

바람이 되어 흐른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강물 

아름다운 물빛이 반짝인다.


 




Velvet Underground,  < Pale Blue Eyes >


"만약 이 세상을 내가 보는 것처럼
 순수하고 낯설게 만들 수 있다면"

"삶을 완전히 뛰어넘어요.
 그리고 삶을 컵에 가득 채워넣어요"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이
 당신에겐 위로 올라가는 것이예요"
 


- 노래 가사 中



매거진의 이전글 연금술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