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들떠 ‘프랑스 레스토랑’에 초대받은 동생은 음식이 나오자마자 당황한 눈치다. 곁들여진 채소 하나 없이, 보기에도 팍팍해 보이던 닭고기는 바싹 마른 상태로 나왔고 예상대로 맛이 없었다.
그곳은 파리에서 전통이 오래되었다는 꽤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 실내 장식은 기품이 넘쳤고 빈자리가 없이 들어찬 손님들 모습에선 그들만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이 내온 음식은 실망스러웠다. 동네 통닭집보다 못한 요리가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옆에 프랑스인들은 맛있다며 잘만 먹는다. "언니, 이제 프랑스 레스토랑 안 가도 돼" 동생이 말한다. 프랑스 남편 말만 믿고 온 나의 실수였다.
이런 일화를 프랑스에 놀러 온 지인들마다 매번 겪었다. 신혼여행을 왔던 친구 부부도 프랑스에서 먹은 음식들이 하나같이 맛이 없었다며 실망한 기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프랑스 여행을 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곳에 오면 ‘미식의 음식들’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먹잘 것 없는 음식들’이 접시에 내어진다는 것을. 다 먹고 나면 왠지 모를 허탈감과 함께 그 비싼 음식 값이 아까워진다는 것을 말이다.
한국인들이 고유 음식에 길들여져 적응을 못하는 거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주 간단하게 증명된다. 어학원에서 ‘프랑스 음식’에 대한 주제로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프랑스인 선생님은 분명 프랑스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전달하고 싶었겠지만 외국인 학생들은 생각이 달랐다. "프랑스 음식이 뭐가 맛있어. 여기 음식들은 그 어떤 소스도 없고 정말로 아무런 ‘맛’이 없어" 멕시코 친구가 말을 꺼내니 남아메리카, 스페인, 아시아 친구들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였다. 그리고 실제 이것은 ‘맛’ 자체의 문제라는 것을 살면서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다.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서민들이 먹는 음식과 타문화권 음식에 대한 만족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프랑스 서민들은 ‘미식 요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 파스타와 감자와 고기를 대충 먹으며, 이곳의 아시아 식당들 음식 수준은 전체적으로 ‘하향 평준화’ 되어 있다. 아시아 음식 이래 봐야 스시집 아니면 중국 음식과 동남아 음식이 섞인 정체모를 뷔페식당인데, 프랑스 스시집들은 거의 중국인들이 운영하며 그들은 전문 요리사들이 아니다. 아시안 뷔페식당의 튀김 음식들과 재료들 역시 중국 슈퍼 냉동고에서 나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음식 퀄리티가 좋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라면 감히 개업할 엄두도 낼 수 없는 수준의 음식들이 아시아 레스토랑이라고 영업을 하지만 웬걸, 다 장사가 잘된다. 제대로 된 아시아 음식을 못 먹어봐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는 것을 다음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바로 프랑스인들에게 한국 음식을 해주었을 때의 반응이다. 이 사람들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할 때마다 매번 놀라움을 넘어 경의를 표하는 수준의 환대를 받았었다. 처음 프랑스 친구들을 초대하여 한국 음식을 해주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양념 돼지갈비와 부추무침, 해물파전과 시금치나물, 김치, 된장국이 다였음에도, 한국 음식을 처음 구경해보는 프랑스 친구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정도가 아니라 쇼크를 받은 듯 느껴졌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가 이렇게 먹니?" "이건 진짜 간단한 건데. 한국 사람들은 매끼를 더 다양한 반찬들을 놓고 먹어" 프랑스 친구들 파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언제나 내가 준비해 간 한국 음식이었고, 어느새 나는 그들 사이에서 ‘최고의 요리사’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근데 중요한 건, 내 음식은 ‘한국 주부의 일반적인 손맛’ 그 이상이 아니라는 거다.
실제로 몇몇 프랑스 친구들은 중요한 홈파티에 내게 한국 음식을 부탁하여 파티상을 준비해준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프랑스인들 반응은 같다. ‘한국 음식은 어쩌면 이렇게 예쁘고 건강하며 맛있냐’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온갖 채소들이 다양하게 들어가기에 일단 건강한 식단이라는 인상을 주며 형형색색 채소들은 보기에도 예쁘다. 그리고 소스의 깊은 맛이 우러나기에 풍부한 맛이 배어있다. 더구나 일상에서 사 먹는 아시아 음식들과 선명히 비교가 된다. 그것들이 맛에 있어 워낙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프랑스인들은 그것들도 맛있다고 잘 먹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한 가지다.
그만큼 이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풍요롭고 다채로운 한국 음식은,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들에게 그 자체로 ‘문화적 충격’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이의 입맛으로 증명된다. 여기서 자랐어도 한국 음식을 선호하는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매번 급식을 잘 안 먹고 온다. 맛이 없다는 이유다. 프랑스 아이들 단골 메뉴인 다진 소고기 스테이크는 아예 안 먹는다. 온갖 재료로 재운 엄마표 수제 떡갈비에 길들여진 아이에게 소금만 뿌려 구운 다진 생고기가 맛있을 리 없다. 고기 맛 빼곤 정말 아무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급식 안 남기고 잘 먹는 친구들을 보면 하나같이 그 집 밥이 맛이 없는 경우다. 그걸 아이도 안다. "릴리는 급식 맛있다는데?" "릴리는 집에서 맨날 샐러드랑 빵만 먹잖아"
프랑스인들은 아이들에게 아예 채소를 주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친구들 집에 초대되어 가도 아이들이 대접받는 메뉴는 ‘공장표 후랑크 소시지’와 ‘아무런 소스도 없는 삶은 면’이다. 진짜 음식은 어른들이 먹고 아이들은 대충 아무거나 준다. 그것은 아이들 소풍 도시락에도 그대로 담겨있다.
아이들은 거의 같은 형태의 도시락을 싸오는데 ‘마트표 식빵에 치즈 한 장과 얇은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가 전부다. 우리 아이만 다양한 채소가 곁들여진 풍성한 샌드위치와 토마토와 과일을 싸갈 뿐이다. 아이들에게 스파게티를 해줄 때에도 그 어떤 채소도 없이 면에 다진 고기에 토마토소스가 전부다. 내가 며칠 집을 비우기라도 하면 프랑스 남편은 아이에게 채소 하나 없는 밥을 매번 준다. 나는 그게 참 싫다.
프랑스인들도 채소가 곁들여진 식단을 ‘건강 식단’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채소를 먹지 않았던 지난날의 자신들 식단과 크게 바뀌지 않은 현재의 식단이 ‘건강하지 못한 식단’ 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프랑스인들이 일상에서 먹는 음식들은 영양상으로도 균형 잡힌 식단이 아니며 ‘미식’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프랑스인들이 점심 때마다 그 딱딱하고 차가운 샌드위치를 꾸준히 먹을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미각이 둔하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리 맛없는 아시아 식당이라도 장사가 되는 이유처럼 말이다. 이것이 ‘미식의 나라’ 실사판이다.
파리에만 150개가 넘는 한국식당이 있으며 그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한국 음식은 건강하고 맛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국 식당이 오죽 잘 되면 중국 사람들이 한식당을 열기도 한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미슐랭 가이드’의 평가가 중요한 걸까.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준 걸까. 오히려 내가 보기에 진짜 미슐랭 레스토랑은, 한국의 이름 없는 백반집들이며 한국의 가정식 집밥이다. ‘진짜 미식’은 자본이 뒤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 주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일반 서민들 손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굳이 미식을 따지자면 그것이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누가 진짜 미식가이고 진짜 미식의 나라인가.
프랑스는 미식의 나라. 이것은 ‘백인은 우월하고 다른 인종은 열등하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에 있다. '프랑스 음식은 우월하고 다른 음식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문명, 식민지는 야만’이라는 프레임을 위해 자신을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포장할 필요가 있었던 프랑스. '고급스런 프랑스'를 위해 음식을 미화하여 내세움은 다른 무엇보다 효과적인 ‘선전 전략’이었을 것이다.
‘우월한 프랑스 제국’을 위해 탄생한 프로파간다. ‘미식의 나라’가 그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의 보편적 현실은 이 타이틀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김밥 사진: 방배동 서호김밥 *가정식백반 사진: 전주 기린로백반 * 학교급식 사진: 익산고등학교 급식 * 프랑스 고등학교 급식 사진 출처: http://bitly.kr/w5ZwhXYOS8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