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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Aug 19. 2020

프랑스식 정원과 건축물이 보여주는, 프랑스의 '틀'


"남편의 그 ‘틀’이 정말 싫어. 나는 형체가 없는 그릇인데, 자꾸 이 사람은 나를 자기의 ‘네모난 틀’ 안에 집어넣으려고 해"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애 둘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한국 친구가 내게 한 말이다. 우리는 그 밤 프랑스인들의 ‘틀’에 대해 열띤 공감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프랑스 말로 ‘꺄드흐’(cadre)라 불리는 그 ‘틀’을 프랑스인들이 얼마나 좋아하며, 결국 스스로 거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하여, 나아가 상대에게 그 틀을 강요하는 것에 관한 대화였다. 프랑스인과 사는 한국 친구들과 이 얘기만 나오면 모두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예외를 본 적이 없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는 한국 분께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작은 한국 음식점 하면 잘할텐데 왜 안 해요. 프랑스 남편이 반대하죠? 얘네들 겁쟁이라 프랑스 남편 말 들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틀’을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잖아요 이 사람들. 그냥 밀어붙여야 해요"
 
 보통 프랑스인들 하면 ‘자유로운 사고’를 할 거라 생각한다. ‘프랑스는 자유의 나라’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 오래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틀’에 집착하며 보수적인지를,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말이다. 그 ‘견고한 울타리’가 있기에 사회는 안정적이다. 모두가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누구도 울타리를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랑스인들은 처음부터 울타리를 네모 반듯하게 잘 정리해 놓는다. 구획 지어 놓고 분별한다. 그리고 안심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 있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틀’을 벗어나는 순간 거부감을 느낀다. 불안해한다. 틀 밖의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안전한 길을 가려하지 모험을 하려 하지 않는다. 틀 밖은 ‘알 수 없는 세상’이기에 위험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굳이 위험한 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편안하게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익숙하지 않은 것, 새로운 것들은 경계의 대상이 된다.


베르사유 증축에 매년 2만5천명에서 3만6천명의 인부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햇빛에 반짝이는 황금빛 벽과 정원(좌) 파리 중심에 우뚝 서있는 루브르 궁의 압도적인 위용(우)
극도로 폐쇄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는 베르사유 궁전 형태(좌) 완벽한 요새처럼 완전히 닫힌 구조인 앵발리드 건물(우)
튈르리 정원 안에 직사각형으로 늘어서 있는 가로수들(좌) 팔레로얄 정원 안에 직사각형으로 늘어서 있는 가로수들(우)


 그것은 프랑스의 건축물들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고전 양식을 가져와 고풍스럽지만 하나같이 네모 반듯하고 각이 진 건물들이 주를 이룬다. 권력을 강조하는 건물일수록 폐쇄적인 ‘ㅁ’자 형으로 지어졌으며 ‘ㄷ’자 형태로 본채를 감싸고 있다. 그것은 현재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인 루브르 박물관이나 베르사유 궁전, 앵발리드, 엘리제궁, 팔레 로얄 등에 그대로 담겨 있다. 보기에 웅장하여 멋져 보이지만, 딱 떨어지는 사각 형태와 명확한 선은 어딘지 딱딱하고 차가운 귀족의 인상을 풍긴다. 상대를 압도하려는 듯한 기운. 위압적인 ‘벽’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 그 건축물들에서 ‘통제’와 ‘권위’ 그리고 ‘단절’이 떠오르는 이유다. 
 
 그에 대한 단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지금의 프랑스를 있게 한 건축물들이 대부분 ‘같은 생각’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들이기 때문이다. 베르사유 궁은 루이 13세 별장이었으나 루이 14세가 증축하여 현재의 궁을 완성한 곳이다. 앵발리드 역시 루이 14세 때 건축된 것으로, 그는 ‘태양왕’이라 불렸을 만큼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이라 믿었던 사람이다. 엘리제궁은 뒤를 이은 루이 15세에 지어졌으며, 팔레 로얄은 루이 13세 때 왕에게 기증된 곳이다. 루브르는 12세기 후반 원래 요새로 지어졌으나, 루이 14세가 베르사유궁으로 이전하기까지 궁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모두 절대 권력의 계보가 이어졌던 ‘부르봉 왕가’ 때 만들어졌거나 그 왕들과 연관이 있는 건물들이다. 
 
 집중된 권력의 특징인 ‘지배’가 통제와 권위를 만나 표현된 또 다른 결과물이 있다. 바로 절대 왕정 당시 만들어진 ‘프랑스식 정원’이다. 17세기 이탈리아 정원 양식을 계승한 프랑스 정원은, 권력의 크기만큼 규모와 표현에 차별을 두며 자연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르네상스 인본주의는, 인간의 정신이 자연보다 우위라는 생각을 갖게 했으며 ‘자연마저 지배 대상으로’ 바라보게 한 것이다. 실제 프랑스식 정원은 대칭과 패턴이라는 규칙성이 있고 명확한 구분선이 있으며 ‘격식 정원(formal garden)’이라고 불렸다. 이러한 ‘극단적 인위성’ 때문에 프랑스 사회주의 선구가 생시몽은 ‘자연에 대한 폭거’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chateau de villandry 정원(좌) Manoir d'Eyrignac 정원(우)
château de versailles, 베르사유 궁전 정원(우)과 안쪽의 정원수들 모습(좌)
Chenoncheau 정원(좌)과 château de Breteuil 정원(우)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곳에서 만나는 나무들은 저마다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정렬되어 있고 모두 사각 형태로 깎여져 있다. 파리의 주요 공원들인 튈르리나 팔레 로얄, 뤽상부르, 샹젤리제 가로수들 모양이 그러하며, 파리를 걷다 보면 자주 목격하는 나무들이 그러하다. 그것들은 인공적으로 깎아낸 ‘사각형 나무’이기에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으며 나무의 높이로 인해 오히려 ‘위압감’을 건네준다. 그 옆의 건축물들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둘 모두 같은 이유로 탄생한 것이기에 그렇다. 지배하는 프랑스. 우위에 있는 프랑스. 통제하는 권력.
 
 
정원수를 그처럼 인위적인 형태로 다듬는 것은 상류층 집 담벼락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집 경계선에 있는 정원수들이 마치 ‘거대한 벽’처럼 네모 반듯하게 손질된 채로 빽빽이 늘어서서 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나무들은 마음껏 자라고 싶어도 자랄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때마다 정원사들이 와서 요란한 전기톱을 휘두르며 가차 없이 잘라내기 때문이다. 오로지 ‘선’ 하나를 맞추기 위해서 말이다. 철저하게 자연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이고, 완벽한 자연 역행이다
 
 그러나 처음 그러한 장면을 목격할 때는, 고급스러운 집과 정원의 위용에 ‘멋지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파리의 주요 공원들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튈르리 공원의 산책로를 처음 걸을 때, 뤽상브르 공원의 산책로를 걸을 때 역시 우리는 그런 생각을 먼저 한다. ‘나무들이 자연스럽지 않다. 무언가 불편하다’는 감정이 함께 느껴지는 것은 한참 후에나 알아챈다. 그것이 그 나무들과 그 건물들이 만들어진 목적이기 때문이다. 압도당하는 것. 강하고 우월한 프랑스를 각인하는 것. 파리의 모든 곳을 스쳐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된 ‘그 프랑스’ 말이다.


1세기에 걸쳐 증축된 베르사유 궁전 입구. 스케일과 화려함으로 방문객들을 압도하는 이곳의 주인은 말했다. '짐은 곧 국가다'
'모든 길은 로마로'와 같이 되고 싶었던 프랑스의 자기중심적 세계관이 반영된 개선문. '모든 길은 파리로'

 

 자연을 통제와 지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데, 하물며 사람을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들은 ‘절대 권력자들’이었고 프랑스 외부에서조차 엄청난 식민지를 개척하고 일구었던 이들이었다. 밖으로는 ‘팽창 전략’을 안으로는 ‘안정과 질서’라는 당근으로 국민들을 이끌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권위’이고 그 유지를 위해 강력한 통제와 지배는 필수다. 그들이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이라 여겼던 것처럼, 그들과 함께 프랑스는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귀하며 저마다가 우주의 중심이거늘, 오직 ‘나만이 중심이고 나만이 귀하다’고 여기는 마음. 그 견고한 자기중심성그 인식이 창조한 ‘틀’에서 생겨난 것이 프랑스의 ‘인위성’은 아닐까. 무엇이든 재단하고 나누고 우위에 서야 마음이 편안한 사람들이어서가 아닐까. ‘이성과 합리와 논리’라는 차가운 권위도 실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 아닐까.
 
 프랑스인들이 갇혀 있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가 만든 그 ‘틀’이 아닐까. 틀 밖에 있는 이방인의 시선이다.  
 






세계의 중심이 되고자 했던 프랑스


* 참고 자료 : 제국주의 건축 양식을 말한 < 서양 건축사 > 임석재  http://bitly.kr/R653Yfwlwg0, 프랑스식 정원 영문 위키백과 http://bitly.kr/33UbFGiGliIS, 프랑스 사회주의자 Saint-Simon의 '프랑스식 정원' 비판한 프랑스 책 http://bitly.kr/BDzwVkkKsDH, 볼테르와 생시몽의 '프랑스식 정원' 비판 내용 담긴 프랑스 기사 http://bitly.kr/5hfQLmWmv53나폴레옹 1세의 파리에 대한 집착 그들을 만나러 간다 파리 마리나 볼만멘델스존 http://bitly.kr/hzPdUWI9DK5H권위주의 제국이었던 '프랑스 제2제정' 위키백과 http://bitly.kr/nf2dIgcqyl17, 나무위키 http://bitly.kr/GT1IGEDq6R6q, 프랑스 제2제정 황제 '나폴레옹 3세' 위키백과 http://bitly.kr/BaHKc2KvCeZ, 나무위키 http://bitly.kr/K25Al7WJxml2, 프랑스 정원 사진출처 http://bitly.kr/Lv5Ce6ayGoAnhttp://bitly.kr/mq6XRFWjW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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