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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Aug 10. 2020

프랑스 서민들 식탁, 누가 여기 미식의 나라래?


 "언니는 좋겠다. 프랑스에 살아서. 여기 애들은 감자만 먹는다 맨날" 네덜란드에 사는 한국 친구가 내게 한 말이다. "난 잘 모르겠다. 여기도 그런 거 같은데?"
 
 그러면서 덧붙인다. 감자랑 돼지고기 말고 다른 거 먹을 거 많지 않냐고. 친구는 특히 신선한 해물이 먹고 싶다고 했다. 네덜란드에는 생선 가게가 없고 냉동 생선만 판다며. 코 앞이 바다인 나라가 참 의외였다. 사실 프랑스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다. 동네마다 정육점은 있지만 생선 가게는 없다. 신선한 해산물을 살 수 있는 곳은 가끔 열리는 시장이나, 대형마트의 생선코너, 시내의 고급 상설시장에 가야만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맘껏 사 먹지는 못한다. 고기에 비해서도 월등하게 비싸기 때문이다. 
 
 감자랑 돼지고기 많이 먹는 것도 비슷하다. 프랑스 음식 하면 보통 스테이크를 떠올리지만 여기도 소고기는 비싸다. 그렇기에 서민들은 잘게 다진 덩어리(Steak haché)로 된 저렴한 소고기를 슈퍼나 냉동 코너에서 사다 먹는다. 당연히 더 저렴한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자주 먹는다. 소고기 스테이크는 프랑스 서민들에게도 어쩌다 한 번씩 먹는 ‘특별식’이다. 가장 비싼 부위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가장 흔한 메뉴 아니냐고? 맞다. 문제는 프랑스 서민들은 정작 레스토랑에 잘 가지 않는다는 거다. 비용 때문이다.
 

 한 끼에 1만5천원에서 2만5천원인 밥을 서민들은 당연히 자주 먹을 수 없다. 식당에 가면 ‘밥만’ 먹는 게 아니라 식전 음식에 후식에 커피까지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걸 다 먹으려면 아무리 저렴한 식당에 가도 1인당 5만원 돈이다. 그렇기에 프랑스 서민에게 레스토랑은 ‘특별한 날’ 가는 곳이다. 물론 점심에는 저렴한 '런치 메뉴'가 있다. 그래도 그 돈이면 샌드위치를 서너 번 사 먹을 수 있다. 그러니 프랑스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식당이 아닌 근처 빵집으로 간다. 5유로면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를 사러 가는 것이다.
 

점심 특수를 위해 샌드위치를 쌓아놓은 빵집 풍경. 프랑스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햄치즈 샌드위치'
샌드위치 옆에 조각 피자나 채소 파이들도 낱개로 판매한다. 샐러드 박스와 작은빵으로 때우는 '흔한 점심'


 직장에서 식대처럼 지급되는 ‘레스토랑 티켓’이 있기는 하다. 티켓 한 장당 가격은 5유로에서 10유로 사이. 샌드위치와 커피 한잔이 나온다. 점심시간에 레스토랑에 가는 것은 그 티켓을 가져가 3-5장씩 내고 먹는 경우다. 그렇기에 매일 갈 수 없다. 이렇듯 딱딱하고 차가운 바게트 빵 안에 햄과 치즈가 성의 없이 구겨져 있는 것을 대충 욱여넣거나, 포장용 샐러드를 사다 먹거나, 파스타 박스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것. 프랑스 직장인들의 가장 흔한 점심 메뉴다. 그러니 젊은이들은 케밥과 햄버거를 먹는다. 같은 가격이면 웬만한 샌드위치보다 훨씬 맛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줄이 가장 긴 곳은 언제나 맥도날드다.

 
 점심은 그렇다 치고 집에 돌아온 저녁은 어떨까.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먹던 것처럼 이 사람들이 밥을 먹을까? 스테이크를 굽고 한쪽에 서너 가지 채소를 곁들여 예쁘게 플레이팅 해서? 그런 일은 없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이 보채고 자기들도 피곤하다. 우리가 먹을 거 없을 때 대충 밥과 김치를 먹듯, 이 사람들은 바게트를 뜯어먹으며 면을 삶고 대부분 그냥 맨 파스타에 치즈가루나 송송 뿌려 먹는다. 이들에게 ‘반찬 개념’은 없기에 주식인 빵과 파스타, 감자만 있으면 충분하며 나머지는 없어도 그만이다.
 
 어차피 식후에 치즈를 먹기에 특별히 고기가 필요하지도 않으며 다양한 채소 음식은 애초에 식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손님들을 집에 초대했을 때나 멋진 고기요리와 채소가 있지 평소에 굳이 챙겨 먹지도 않는다. 고기가 있다면 소금 후추 쓱쓱 뿌린 닭고기나 돼지고기 덩어리 몇 점이며, 채소가 있다면 송송 썰은 삶은 당근이나 샐러드다. 맛깔난 소스 같은 것은 없다. 그건 여기 서민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가장 흔한 플레이팅을 보면 알 수 있다. 스테이크와 튀긴 감자. 그것이 메인 형태이지 채소는 없다. 대충 얹은 샐러드가 가끔 함께 나오거나 운이 좋으면 토마토가 있을 뿐이다. 한쪽에 채소가 예쁘게 세팅된 음식은 고급 레스토랑의 폼이다.  


서민 식당에서 나오는 돼지고기 목살 스테이크와 냉동 튀김감자. 고급 레스토랑에나 가야 소고기와 채소가 곁들여져 나온다
프랑스 서민들의 '흔한 집밥' 마카로니 그라탕 그리고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프랑스 음식'


 프랑스인들에게 채소를 먹는 것이 ‘익숙한 식문화’가 아니라는 것은 모든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당장 집에서 서민들이 먹는 밥의 형태가 그렇고 서민들이 가는 식당들 음식이 그렇다. 프랑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날, 친구 부모님 댁에 식사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 친구 어머님은 내게 "여기는 채소 음식이 많이 없어서 힘들죠? 우리 집은 채소를 많이 먹는답니다"고 말해 나는 정말로 기대했었다. 시댁에서 몇 달을 지내며 채소 결핍증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식사 때 나온 ‘다양한 채소’라 함은 ‘다양한 샐러드’가 다였다. 프랑스 식당들에 가보라. 그들이 먹는 채소 요리는 죄다 '샐러드 한그릇'이다. 그만큼 프랑스인들에게 채소는 끼니마다 챙겨 먹어야 할 ‘당연한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
 
 가지 요리나 호박 요리, 토마토 요리나 시금치 요리, 대파 요리 등을 많이 먹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다. 물론 먹는다. 그러나 드물게 먹는다. 가지 요리는 지중해권 음식으로, 지중해를 끼고 있는 프랑스 동남부는 불과 몇백 년 전까지 이탈리아에 속해 있었다. 토마토 역시 감자, 호박, 고구마와 함께 15세기 이후 들어온 작물이다. 귀족들이 먹었다는 악티쇼와 브로콜리도 16세기에 전해졌다. 그전까지 프랑스 서민들은 몇 가지 되지도 않던 채소들을 커다란 솥에 섞어 잡탕 수프를 해 먹었다. 당연히 ‘제대로 된 요리’랄 것이 존재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 모든 채소들이 서민들 식탁에 정착하기까지는 그 후로도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그렇게 천년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프랑스 전통 음식’이라며, 귀족과 부르주아 기준의 요리와 식탁예절이 담긴 책들이 보급된들, 그것이 서민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까. 그나마 그 요리책들도 16세기 이후 생겨난 것들이며, 상류층들이 식민지에서 들여온 온갖 향신료와 신기한 작물을 즐기고 있는 동안에도 서민들 식탁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는 삶은 감자와 수프와 빵과 치즈 몇 덩이가 있었을 뿐이다. 이들이 채소를 먹는다라 함은 수프를 끓여 먹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모습이, 오늘날 프랑스 서민들의 가장 흔한 식탁 풍경이다. 그것이 오래도록 그들이 지녀온 ‘식문화’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서민들이 자주 먹는 집밥 '채소 수프' 그리고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프랑스 수프'
프랑스 서민들 식탁 단골손님 '삶은 감자' 그리고 프랑스 레스토랑의 '프랑스 채소 요리'


 프랑스 서민들 식탁이 여전히 단출하고 초라한 이유는 명확하다. 살아오면서 늘 집에서 그렇게 먹었고 대대로 모두가 다 그렇게 먹어왔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이 생선을 잘 안 먹는 이유는, 먹어 본 적이 별로 없고 익숙하지 않은 재료라서 그렇다. 다양한 채소 조리법을 갖고 있지 않은 이유도 같다. 엄마도 할머니도 채소와 생선으로 다양한 음식을 해준 적이 없어서다. 그러니 '어릴 때 먹던 대로' 지금도 먹는 것이다. 고기 역시 서민들이 지금처럼 양껏 먹을 수 있게 된지 채 200년도 되지 않았다. 식민지 약탈로 생겨난 부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의 고기 요리란 소금 후추 버터 얹어 '오븐땡'하면 먹을 수 있다. 거기에는 애초에 무슨 '조리법'이랄게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장 대중적인 음식인 파스타는 포크가 널리 보급된 19세기가 다 되어서야 먹게되었다. 17세기 말까지도 유럽 최고 상류 사회였던 베르사유궁 사람들마저 손으로 음식을 먹었으니 말이다.

 프랑스 서민들이 일상에서 즐겨 먹는 음식들은, 이탈리아 음식들이거나 다른 문화권 음식들인 경우가 많다. 온갖 종류의 파스타와 피자가 그렇고, 젊은이들이 즐겨 먹는 케밥은 터키 음식이며, 올리브와 가지가 들어간 음식이나 피타 샌드위치는 지중해권 음식이다. 쿠스쿠스처럼 곡물 알갱이와 채소를 섞어 먹는 음식들 역시 아랍권 음식이다. 레스토랑에서 흔하게 파는 메뉴인 햄버거도 수제라지만 그게 프랑스 음식은 아니다. 감자튀김도 마찬가지다. 결국 그것들을 다 빼면 ‘순수한 프랑스 음식’은, 수프와 빵 고깃덩어리와 치즈다.

 어떤가. 무엇이 ‘진짜 프랑스 식문화’인 거 같은가. ‘특제 소스로 구운 송아지 안심에 구운 당근과 아스파라거스’ ‘신선한 무화과를 곁들인 푸와그라’는 고급 레스토랑 메뉴일 뿐이지 프랑스 서민들이 일상에서 먹는 음식이 아니다. 그만큼 프랑스 레스토랑과 서민들 식탁 사이의 괴리는 크다. 이처럼
 
 우리에게 ‘알려진 프랑스 요리’와 실제 프랑스인들의 식탁은 많이 다르다.
우리는 프랑스의 ‘이미지’를 각인했을 뿐이지, 그것이 프랑스의 실체적 모습은 아니기에 그렇다.
 
 
  
 



귀족문화 프랑스의 '강박적 식문화'


 * 참고 자료 : < 미각의 역사 > 폴 프리드먼 http://bitly.kr/Glv4v2oTENV, <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 제임스 블로트 http://bitly.kr/N4NX3CPrPdS, 유럽인은 언제부터 고기를 배불리 먹게 되었나 http://bitly.kr/57J2jCcwSSS, 이탈리아 요리가 프랑스 요리에 미친 영향. 뉴욕타임즈 기사 http://bitly.kr/FnBTRhO1f5O, 중세 음식 위키백과 영문 http://bitly.kr/dv45pllh37v2, < 중세 시대 > Mikael Eskelner http://bitly.kr/zlp3NNTLtJu, < 중세 시대 음식 > Adamson, Melitta Weiss http://bitly.kr/00fZTYViJih, 중세 음식과 음료 영문 http://bitly.kr/QMN96C2mBis, 14세기 유럽 부엌 모습 http://bitly.kr/TrXLHj6lDK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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