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8화
기본적으로 말이 많아지는 상황도, 이런저런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오래도록, 웬만하면 상대나 상황에 맞추며 살아왔다.
허나 그런 나에게도 '까탈스럽게' 지켜줘야 하는 것이 몇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 '제 때 밥을 먹어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내 스텝이 헝클어지기 때문에.
오죽하면 내가 뚜렷한 이유 없이 짜증을 부리곤 할 때 남편이 늘 먼저 묻는 말이 "밥 안 먹었어?" 이기도 하다. 나의 이런 증상을 남편은 '유아적 습성의 황당한 잔재' 쯤으로 여기는 듯하고 본인은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라 우기고 싶은 적도 있었으나, 실은 '오감이 예민한' 촉수를 가진 나의 예민한 기질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맛없는 음식으로 나의 한 끼를 망치는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제 때 밥이 안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물론 글을 쓰는 행위와 같은 몰입의 상태 '나의 의지'로 인함은 늘 예외이다)
그러나, 프랑스에 살게 되면서 이런 나의 개인적 특성 내지는 기준 또는 권리는 철저하게 박탈당하였었다. 프랑스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과는 거리가 먼 '지난한 과정들과 인내심'을 요하였기에.
프랑스인들의 식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보통 '품격 있는 와인병과 반짝이는 와인잔, 예술작품처럼 장식된 음식 그리고 우아한 불어가 떠다니는 대화와 경쾌한 웃음들'일 것이다. 촛대와 꽃병이 놓인 식탁 위로 흐르는 풍경을 보며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즐기며 식사하는 모습이 마냥 부러워 보인 적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 '우아함' 뒤에 어떤 불편이 깃들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모두는 로망을 말하기 바쁠 뿐 '실상'은 잘 말하여지지 않으므로. 그도 그럴 것이 '생활 속 우아함'이란 절대적으로 '다른 불편함들에 기반한다'는 것을 아는 건 그 안으로 들어가 본 사람이 아니면 알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 생활 10년, 나는 지금도 프랑스 시댁에서 밥을 먹는 것도, 프랑스 친구들 집에 식사 초대를 받는 것도, 프랑스 식당에 가는 것도 그리 반갑지 않다. 사람이 싫은 것이 아니다.
프랑스인들과 프랑스식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은, 나의 기본 권리인 '제 때 먹을 권리'가 어처구니없는 이유들로 좌절됨을 의미하기 때문이고, 번번이 겪게 되는 그 욕구불만들은 짜증을 넘어 무력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나는 그저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이방인 일뿐.
프랑스인들이라고 다 그렇진 않지만 내가 겪은 경험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프랑스인들에게 식사를 함께함은, 식욕이라는 기본 욕구를 해소하는 '소박한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그들에게 식사를 함께한다는 것은 '풍족함을 최대한 여유롭고 넉넉하게 나누는 행위'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 풍족함이 언제나 늘 '과하다'는데 불편함의 원인이 있었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누군가를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한다는 건 특별한 예우를 의미하기에 식사시간을 최대한 길게 갖춤으로써 '당신과 함께한 시간이 충분히 즐겁습니다'라는 것을 표현하는 관례가 있다.
프랑스인들이 저녁을 먹는 시간은 저녁 8시다. 일단 너무 늦다. 특히 저녁 초대 자리는 언제나 더 '느긋하게' 시작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미 배가 한참 고픈 상태로 나타나지만 '밥이 아닌 것들'로 1시간을 때우며 식사는 시작된다.
저녁을 먹자고 모이면, 샴페인이나 탄산음료 과일주스 등을 짭짤한 핑거푸드들과 함께 먹으며 1시간여를 얘기하고, 9시 정도가 되면 그제야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 전식 본식을 먹는데 또 1시간 길면 2시간, 식사가 끝나면 온갖 치즈와 후식으로 역시 1시간여를 먹으며 '쉼 없이 말하는' 사람들. 그렇게
점심에 식사 초대를 받기라도 하면 12시에 시작된 식사는 때론 저녁 5시나 6시가 되어서야 끝나는 일도 비일비재 했고, 저녁 식사 초대를 받으면 8시에 시작된 자리는 밤 12시나 1시가 되어서야 끝나곤 했다.
처음에는 '나만 피곤한가?'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도 벌건 눈을 한 채로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그러나 다들 '참고' 있었다. 참으며 애써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에게 '교양인의 예의와 자세'를 지킴은 몸이 힘든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밥 한 끼 먹기 위한 '투철한 인내심'은 레스토랑에서 빛을 발한다. 프랑스 레스토랑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주문을 받으러 오기 전까지는 주문을 할 수조차 없고, 오지 않는 웨이터를 부르는 것도 미덕은 아니며, 아이 음식을 일찍 달라고 말하는 것도 삼가는 게 좋다. 그저 주구장창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인내만이' 필요하다. 바쁜 웨이터를 부르는 것은 교양 있는 시민의 '덕목을 벗어난 행동'이기에.
레스토랑 예약은 언제나 12시가 아닌 12반이 정석이다 보니 1시에 겨우 '전식'이 나온다. 아이가 본식만 주문했다면 아이는 어른들이 전식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밥을 먹을 수가 있다. 그러나 전식이 끝난다고 잽싸게 본식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전식 접시를 치운 후 본식이 나오기까지 50분까지 기다려본 적도 있다. 그러나 누구도 웨이터를 불러 '아이가 배고프니 신경 써달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배고파하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급해지는 건 언제나 '프랑스인이 아닌 나일뿐'.
이미 욕구불만이 폭발하고 화를 삭이고도 남는 그 긴긴 시간 동안이 더 괴로운 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심지어 그 대화에 끼어들려는 가상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말 많은 걸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이 모든 절차가 너무나 '피로한 일'이 돼버린다. 그렇게 밥 한 끼 먹으러 갔다가 '녹초가 돼서' 돌아오는 것이다.
여전히 프랑스인들과 식탁에 앉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언제나 같다.
배를 채우는 것. 그저 '소박한 한 상'이면 충분한 것을. 이렇게 복잡하고 힘들게 먹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미식의 나라, 불편한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