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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Aug 14. 2020

인디밴드에 빠진 스물셋,
내 노래 들어보실래요?

산책이네 음악 살롱

 

 프랑스에 오기 전, 나의 한 세계가 완전히 궤멸되었을 때, 나의 마음도 세상에서 완전히 이탈하였었다.

 진공의 시간들. 10년이 넘도록 나는 그 좋아하는 노래도 영화도 듣지 않고 보지 않고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노래를 듣는다. 특히 옛날 노래들을 찾아서 듣는다. 이십 대를 웃고 울렸던 노래들. 어린 연애의 기억들. 선명하게 살아 숨 쉬는 날들. 아름답다고 느낀다. 내가 그때를. 숨결 하나까지 다 기억하고 있음은. 선율 하나로 그날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은. 한때는 몽땅 폐기하고 싶었던 그때로 시간여행을 간다.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던 나는, 사실 꽤 엉뚱하며 재밌는 사람이라는 것을, 뼛속까지 반항아라는 것을 스무살이 넘어 처음으로 알았다. 기성세대와 기존의 사회 시스템 같은 모든 낡은 것에 강한 거부감이 있었기에, 당연히 그들이 이끄는 체계에 순응해 살고 싶지 않았다. 그때 강렬하게 마음을 흔든 것이 있었으니 바로 '록음악'이었다. 강렬한 사운드과 허무한 읊조림, 자유분방함은 내 안의 불에 공명하는 전기충격과도 같았다.

 처음 듣고 단번에 반해버린 그 노래, 
Rage Against the Machine의 < Killing in the name >은 그들을 똑같이 카피하는 라이브 공연장을 수도 없이 다녔을 만큼 정신 못 차리고 들었었다. Radiohead의 끝없는 우울은 그저 내 맘을 그대로 말해주는 듯해 사랑할 수밖에 없었고, Cranberries의 몽환적 사운드는 꿈결 같은 선율 그 자체였다. 영국의 경쾌한 모던락 밴드들과 퇴폐미를 두루 갖춘 밴드들까지 장르를 넘나들던 록 사랑은 실제 음악을 하는 친구들에게 나를 데려갔다. 인터넷 록음악 카페에서 만난 인연들. 실제 인디 밴드 활동을 하던 친구들이 있던 카페에서 거의 매일 밤마다 나눈 '카페 단체 채팅'의 마력.  

 특유의 천진함과 솔직한 허당끼로 친화력을 발휘한 나는 그들과 금세 가까워졌고 그들은 나를 궁금해했다. 홍대 클럽에서 카페 회원들 공연이 있던 날의 첫 회동. 직장인 밴드를 하던 산발 머리의 카페지기와 산뜻한 엘리트 느낌의 매끈한 기타리스트 부운영자. 그의 아름다운 여친이자 그날 공연을 한 밴드의 보컬. 그녀의 몸짓. 이 가슴 뛰는 인간들과 그 음악이 몹시도 궁금했던, 인디밴드만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첫날이었다.  

 그날로 인디밴드들은 줄곧 내 플레이리스트 첫 주자들이 되었다. 그들이야말로 아프고 쓸쓸한 내 청춘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주는 나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수많은 나를 만난 듯 가슴이 뛰었다. 루시드폴 전신인 미선이, 코코어, 델리스파이스, 3호선 버터플라이, 재주소년, 언니네 이발관, 카마, 에브리 싱글데이, 허클베리핀, 원더버드, 불독맨션, 롤러코스터, 줄리아 하트, 오 브라더스, 황신혜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크라잉넛... 가장 사랑했던 건 이상은의 초기 앨범들과 루시드폴이었다. 그들의 감성과 흥과 끼는 내 안의 흥과 끼를 끄집어냈다. 노래를 듣는 것만큼이나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던 나였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1박으로 여행을 갔던 날이었다. 그 자리에는 사석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름 난 예술인들 몇이 함께 했다. 그 중에는 최근 새 작품을 발표한 유명인 H도 있었다. 우리가 맥주를 마시며 왁자지껄 할동안 내내 수줍게 미소만 짓고 있던 H. 우리는 살짝 취기가 돈 채 게임을 했고 노래하기가 걸려있던 그 게임에서 내가 딱 걸렸다. '아니 지금, 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해야 한다고?' 순간 앞이 캄캄했지만 열화와 같은 환호성에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이럴 땐 취기를 빌어 그냥 미친 척하는 거지' 

 나는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왜 하필 그 노래가 떠올랐는지 이유는 없다. 단지 약간의 긴장감과 오랜만의 짜릿함이 교차하며 뭔가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이 놈의 전철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만지는 손길이 있어. 어떤 놈인지 오늘은 못 참아 고개를 돌려보니 쪼끄만 놈이네. 한 열네 살 중1쯤 되었을까 꼬마애라니 웃음도 안나... 예쁘게 생긴 참외 하나 보았지. 괜찮단다 이거 받으렴" 당시 한창 듣고 있던, 한 인디밴드 컴필레이션 앨범 속 <노람 참외>라는 노래였다.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모두는 박장대소를 했다. 힘을 받은 나는 다리까지 한껏 치켜올리며 더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대성공이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을까. 다음날 그 자리에 있었던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H와 집이 같은 방향이라 태워다 줬는데 내 얘기를 물었다고. 딱 한마디 했단다. "뭐 하는 사람이에요?" 
다분히 여러 방향으로 해석할 있는 질문이었다. 뭐 아무렴 어떠랴. 강한 인상을 남겼으니 된 걸로. 


 며칠 전 문득 이 노래를 부르던 그 순간이 생각났다. 다시 들어보고 싶어 찾아보니 다행히 있다. 연일 들려오는 침울한 소식과 무더위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이왕 추억을 빌어온 김에,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노래들로 안부를 전한다. 세상의 모든 곳에 계시는, 나의 소중하고 감사한 독자님들께.



달달한 '산책이네 음악 살롱' 들어갑니다. 아래 노래들 중, 제일 좋은 노래를 댓글로 말해주세요!  



이상은 < 뉴욕에서 >

지금 거긴 아침이겠지
잠들어가는 나를 잊은 채

그런 날 위해 생각해줄 수 있니
'어디서든지 행복해'라고
그런 나에게 말해 줄 수 있겠지
'좋은 친구야 내가 있잖아'라고



재주소년 < 언덕 >

바람이 차갑게 불던 오후

난 그 언덕에 올라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를

혼자 바라보았네



3호선 버터플라이 < 스물아홉, 문득 >

온 만큼을 더 가면

음- 난 거의 예순 살

음- 하지만 난 좋아

알 것 같아

난 말해주고 싶어, 나에게

그 동안 너 수고했다고



코코어 < 슬픈 노래 >

슬픈 노래는 나를 웃기게 하네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간지럽혀

웃긴 농담은 나를 슬프게 하네
농담 속 주인공이 나이기 때문에

어디에 있을까 나의 노래는 

어디에 있을까 나의 마음은



미선이 < 시간 >

눈물이 흐르는 소리 얇게 퍼져만 가네 

얼굴을 파묻은 채로 흘러가는 내 사랑 

두려운 그대 앞에도 아직 남아 있지만 

자꾸만 굳어져 가는 내 기억의 표정



그 밤 내가 부른 노래 < 노란 참외 >

괜찮단다 그럴 수 있단다 이거 받으렴

다신 그러지 말고 집에 가서 혼자 해

괜찮단다 그럴 수 있단다 어서 받으렴

다신 귀찮게 말고 이거 받고 혼자 해



* 메인 그림 : 미선이 1집 앨범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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