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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Nov 09. 2020

낯선 프랑스 글들을 쓰며,
매일 내가 한 것


 <프랑스는 낭만적이지 않다> 브런치북을 출판 프로젝트 마감일에 겨우 응모했다. 올초부터 써오던 '프랑스 낯설게 보기' 글들을 모아 만든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작년 초에 이미 목차를 다 뽑아두었던 것이다. 프랑스에 대한 무수한 의문들에 나름의 답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전에 먼저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야 했다. 가슴에 막혀있던 응어리를 토해낸 다음에야 펼쳐질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글들은 세상에 나오기 위해 긴긴 발효의 시간이 필요했다.  

 코로나가 터진 봄에는 코로나 글들을 쓰느라 글을 시작하지 못했다. 투고에 성공하지 못해 무기력한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나를 가로막아 선 것은 사람이었다. 내 프랑스 글들에 적대감을 보이며 악플을 달던 소수의 사람들과 나의 글이 증오라며 상처 받았다는 작가. 


 물론 그러한 각오 없이 글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처음 겪어보는 비난은 당황스러웠고 논리적인 반박에는 함께 논리적으로 응대해야 했다. 나는 본의 아니게 '전사'가 되어야 했다. 내 글을 방해하는 것들을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의도한 것은 치우져 있는 인식을 돌아보게 한 것이었음에도, 사람은 철저하게 자신들 관점에서 외부를 바라본다는 것을 말이다


 그분들의 완강한 거부감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달콤한 이야기들이 아닌 작정하고 반대의 글을 쓰고자 했다. 훌륭하다는 아름답다는 프랑스 글들은 이미 차고 넘치기에 나까지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다른 관점이 있음을 상기시켜주고자 했고, 나아가 우리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던 것을 거꾸로 바라봄으로써,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것은 점진적으로 오는 것이 아닌 반드시 '도약'을 통해 찾아온다. 기존의 인식 체계가 해체되는 '인식의 붕괴'를 거치지 않으면 탄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로 통합되어 있는 질서에 대한 균열은 불쾌하고 고통스럽다. 그분들을 이해하는 이유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나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마땅한 이유를, 내가 이 글들을 쓰는 이유를 매 순간 생각했다. 


 프랑스의 그림자를 들추는 것은 나에게도 아픈 작업이었다. 프랑스의 그림자는 곧 나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프랑스와 떨어질 수 없으며, 나의 아이는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가진 프랑스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내 아이의 고향이자 유년의 향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를 빽빽하게 올려놓은 이유다. 모든 자료들은 최소 서너 번씩 꼼꼼하게 읽어보았고 글을 쓴 후 다시 면밀하게 크로스 체크했다. 사실에 어긋나는 내용이 있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었다. 어떤 비난 앞에서도 평온이 깨어지지 않고 담담하게 쓸 것. 심장을 꺼내 두었다고 한 것은 이것이었다. 감정이 비워진 곳에 내 마음이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랑스 글들을 쓰며 매일 내가 한 것은, 내 마음을 먼저 살피는 것이었다.


"남의 죄를 들추고자 하는 사람은, 그 죄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어야 하며, 그때가 적절해야 하고, 법도를 어기지 않고 보탬이 되는 것이어야 하며, 거칠거나 험하지 않고 부드러워야 하며, 미움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추어야 한다"  법구경의 이 글귀를 매일 마음에 새기며 글을 썼다. 

 지난여름 브런치 작가 '코붱'님(@koboung)의 글 읽는 밤에 내 글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프랑스는 낭만적이지 않다'는 글이었다. 낭독을 하시기 전 꼼꼼하게 사전 인터뷰를 하셨고 이런 질문을 물어오셨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비난과 비판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글을 쓰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비난은 자기중심적인 오류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오만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나는 맞고 너는 틀려'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요. 하지만 비판은 자기 생각에 치우쳐 있지 않으면서 논제를 균형 있게 바라보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프랑스에 대해 그런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프랑스 역시 밝고 아름다운 면만 부각되어 온 자신에 대해, 분명히 어둡고 아름답지 못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프랑스를 균형 잡힌 마음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균형 잡힌 시각으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있다면 한 가지예요. 제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죠. 그것은 어떤 글을 쓰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의 상태로 글을 쓰느냐에 따라 글은 완전히 다른 빛깔을 띄게 되니까요. 제 마음 안에 프랑스를 향한 어떠한 사적인 감정도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 그런 상태로 글을 쓰기 위해 매번 노력합니다. 결국 마음을 닦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해요"

프랑스 글들을 통해 내가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대해 물어오셨을 때에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동안 프랑스에 대해 유럽에 대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을 거예요. 하지만 이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고, 그 이면에는 반드시 어두운 그림자가 있지요. 우리는 어쩌면 오래도록 '유럽 중심주의' 세계관 속을 살아오며 스스로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어왔는지도 모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가장 큰 폐해는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마음을 위축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프랑스가 가진 실체적 모습 앞에서 더 이상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프랑스와 유럽에 대한 환상이 걷어짐으로써 우리의 정신 또한 균형을 회복하고,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인식과 용기를 회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한없이 도발적인 글들이 선뜻 선택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첫마음을 놓지 않고 글로 짓고 세상에 내놓은 나 자신에게 나의 글은 그 자체로 이미 역할을 다하였다. 나와의 약속을 지킨 나에게.. 조용한 고마움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올해의 한 단락이 지나갔다. 남은 시간들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고요와 함께 하고 싶다.  

 



* 그림들 : René Magritte


코붱 작가님의 낭독으로 소개된 내글

코붱 작가님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코붱 작가님이 소개해주신 나의 원글  https://brunch.co.kr/@namoosanchek/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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