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비밀

내 안의 영혼과 나눈 이야기, 나의 '시'

by 숲속나무


이십 대의 한 복판, 여전히 먼지처럼 헤매고 있었을 때, 나는 내 안에서 올라오는 어떤 뜨거운 숨을 무작정 쓰기 시작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나와 우주만이 아는 '비밀 언어'였고 내 가장 깊은 곳의 핵심에 닿아있던 것이었다. 세상은 그것을 ''라고 불렀다.

당시 나는, 내 인생에서 최초로 '내가 진정한 인간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 분을 알게 되었었다. 언제나 책 속에서, 문장들 속에서만 만나온 그 느낌을 드디어 '살아있는 실체'와 나눈다는 설레임. 그것은 커다란 행운과도 같았다. 나는 살면서 '스승'이라는 것을 가져 본 적이 없었기에.
그분은 나의 시와 함께 바람처럼 날아왔고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분께 내 안에 간직하고 있던 생의 물음들을 물었고, 그분은 천진한 나의 물음들에 늘 마음을 다하여 답을 건네주곤 했었다.

어느 날 나는 내 인생 최고로 어두웠던 시를 하나 썼고, 그것을 그 분이 보았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너무 위험한 거 같다고. 밥을 사줄테니 한번 보자고. 내게는 큰 산 같은 분, 그분의 말이 기쁘고 감사했다. 밥을 먹고 우리는 바로 앞 호숫가에서 함께 달을 바라보았다. 어두워진 호수는 달빛을 받아 진푸른 빛으로 반짝였다. 많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우두커니 호수와 달을 보며 우리는 평범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때 고1 정도로 돼 보이는 앳된 커플이 교복을 입은 채 물가에서 데이트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말했다. "예쁠 때네요" 그분은 말했다.


"쟤들이 아무것도 모를 거 같죠? 다 알아요."

나는 스물다섯이었고, 그분은 지금의 내 나이였다. 그리고 저 말의 의미를, 그분의 나이가 된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분은 말하였었다. "소통하고 싶었다"고.

내가 등불을 켜면, 모두가 함께 등불을 켜주는 것


그래서 이렇게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그것은 나의 마음이었다. 나도 소통하고 싶었다. 세상과. 사람들과.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 방법을 몰랐었다. 그렇게 또 길을 떠났다. 더 멀리. 그 방법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세상에서 이름 붙여진 모든 성공을 이미 이루셨던 분. 시간이 흐른 언젠가 여쭤본 적이 있었다.

"세상에 나를 증명하고, 그것을 완수했을 때는, 어떤 느낌이에요?"

그분은 웃으며 말했다. "세상은 나에게 재미없는 질문을 해대지" 나도 같이 따라 웃었다. 한참 지나고서야 알았다. 나의 질문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그것은 '우문현답'이었다는 것을. 완수한다는 것은 없기에.

오래전 그때 끄적였던 '나의 시' 하나를 얼마 전 찾아내었다. < 삶의 비밀 > 그분께도 보여드린 적이 있었던. 옥탑방에 살던 평범한 소녀의 글을 알아봐 주셨던 분. 그분께 건네드리고 싶었던 말. 나의 시는 말했다.

"너는 또 먼 길을 돌아왔구나"



지금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을 나는,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데이트를 하던 아이들처럼. 그분의 말처럼. 우리의 '앎'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에.

다만 나는 다시. 모른 체하고 살고 싶었을 뿐.


노래의 끝에서. 자유가 되기를



< 삶의 비밀 >

아름다움이란
삶이 지닌
추락한 나침반 같은 암울함 속에서도
한줄기 빛이 함께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한 가지 빛깔만으로 빛날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은
무너진 어제를
부서진 오늘을 끌어안을 시간
고요한 걸음과 침묵의 언어가
필요한 시간
기다리는 시간

문 밖의 새소리에 깨어
때가 왔을 때.....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햇살에 취해있는
목장의 소처럼

어깨에 힘이 빠지며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네 삶 속에 고요하게 흐르는
아름다움의 강물에 대하여


비로소 당신은
말할 수 있다


삶의 비밀을


- 2000년 어느 봄날, 서울 하늘 아래에서


* 모든 그림 : Maxfield Parrish




큰 산과 같았던 그분과 나는 당시 가끔 이메일로 소통을 했었다. 나의 천진한 생의 물음들에, 늘 정성을 다해 답장을 주시던 그분에게선 '모두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그 분의 새 작품 소감을 글로 써서 보내드렸을 때 그 분은 말씀하셨다. '나의 글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나의 어떤 구체적인 상황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의 고통을 그분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오래전 한국에 갔던 저녁, 아이 때문에 헐레벌떡 일어나는 나를 말없이 안아주셨던 분. 오늘은 그분이 참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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