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소년, 산책
서울에 살던 시절
내가 살던 성북동에는 작은 오솔길 따라
조용한 산책로가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산을 오르면
소나무들과 넓다란 바위가 나오는데
그 바위에 앉아 바라보는
서울의 풍경을 좋아했다.
그 시절 그 바위는 내게
넓은 바닷가 푸른 언덕과 같았기에.
영화를 안 보고 산 지도
노래를 안 듣고 산 지도 오래되었다.
그렇게 내가 아는 노래들은 오래전
이십 대에 들었던 노래들이 거의 전부였다.
옛날 노래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인디밴드 노래를 듣곤 했다.
아무도 루시드폴을 모를 때
미선이 때부터 좋아했던 루시드폴
맑은 기타 소리.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
그리고 나의 이십 대 마지막 밴드 재주소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순수함
그중에서도 가장 무심한 노래
아무런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노래
그래서 편안하고 그래서 좋은 노래
오늘은 그 노래를 들어본다.
모든 것을 벗어버린 가벼운 자의 마음
산책하는 마음 같은 그 노래를
꼭 높이 솟은 저 산꼭대기에
올라야 하는 건 아니에요.
작은 언덕이지만
그곳에 올라 숨을 고르는 것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차오르게 할 겁니다.
오늘 나만의 언덕에 올라
한 걸음 쉬어갈 수 있기를.
재주소년, < 언덕 >
바람이 차갑게 불던 오후
난 그 언덕에 올라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를
혼자 바라보았네
그 위를 내달리던 아이들
모두 어디 갔는지
두 어깨 활짝 펴고 달리던
난 그 언덕에 올라
움츠린 내 뒷모습 너머로
수평선은 하늘과 닿았네
가리워진 시간 사이로
모두가 변했네
바람이 차갑게 불던 오후
난 그 언덕에 올라
두 어깨 활짝 펴고 달리던
난 그 언덕에 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