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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Jul 21. 2019

'문맹'이 되어버린 나.
'벙어리'로 살기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11화


 말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으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다. 
 
 함께 사유의 결과를 나누는 것. 해맑은 농담으로 함께 아이처럼 큰소리로 웃는 것. 함께 가벼운 말장난을 하는 것. 진솔한 눈빛들 안에서 나는 적극적으로 나를 열었고 때론 천진한 헛소리로 모두를 무장해제시키며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은 언제나 내게 '공유와 소통'의 농밀한 즐거움을 주었고 '외부와 나'를 연결하는 창이 되어주었으며 그 안에서 나는 내가 가진 인간적인 면모를 충분히 발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어를 잃어버린 곳'에서의 삶은 나에게서 그 모든 즐거움을 단번에 앗아갔고 종국엔 내게서, 나를 외부와 연결하는 기능을 상실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언어라는 '소통의 도구'를 잃어버림으로써 '나의 목소리'를 잃어가는 고통을 얻었다. 
  
 그것은 처음엔 나를 질식하게 했고 나를 부정하게 했으며 점점 '나 자신이 분해되는' 고통으로, 어느 순간 '나 자신이 사라지는' 고통으로 이어졌다. 
 
 그랬다. 눈을 마주하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이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무턱대고 어울리는 것을 썩 즐겨하지는 않지만 어떤 자리든 그게 누구든 할 말은 할 수 있었고 즐거움도 줄 수 있었으며 낯선 사람들과도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는 나였다.
 
 하지만 '낯선 언어'가 삶인 곳에서 나는 '낯선 내 모습'에 당황해야 했고 그 모습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런 나의 상황에 적응해야만 했다. 그들 안에서 내가 입을 뗄 때마다 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빈약하고 어눌한 단어들과 짧은 문장들 영글지 못한 발음들이었기에.

 한국말이라면 어떤 표현도 자신 있고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면 그 누구와도 우아하게 대화할 수 있는 내가, 여기서는 그저 영락없는 '말더듬이'일뿐인 현실. 
 

언어를 잃어버림으로 나를 잃어버린 자


 이 땅의 사람들에겐 내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건 말건, 한 때 '시'를 썼건 말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여기에서 나는 그저 그들과 동등한 대화를 할 수 없는 그냥 '어버버 어버버'하는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의 틀' 안에서의 나는 그저 '한없이 작고 무력한 그 무엇'일뿐이었다. 

 그리고 그 '덜 떨어진 나'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였다.
 

 그러자 점점 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하였다. 나름 한국에서는 '아는 척'하며 누구를 만나든 어떤 '높으신 분들'과도 기죽지 않고 대화하던 나. 한국말이라는 도구만 있으면 되었던 그 시간들 속 그 모든 당당하고 자신감있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그저 이 곳에는 기본적인 소통마저 힘에 겨운 '바보 같은 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기에. 그렇게 '언어'라는 도구를 잃은 인간은 이토록 단번에 무력해질 수 있었다.  
 
 나도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며 '지적인 교류'를 충분히 반가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도리가 없는 현실. 그 누구와도 어떤 지적인 교류는커녕 '지적인 대화'도 나눌 수 없는 현실은, 나름 스스로를 괜찮은 지성인이라 여기며 살던 '나를 바라보던 나의 인식'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나는 정체성의 딜레마에 봉착하였다.
 
 무엇이 '나'인가? 그 우아하고 지적인 나가 나인가? 이 바보 같고 덜 떨어진 나가 나인가? 
 
 그것은 지금껏 내가 '안다'고 여겼던 모든 인식에 대한 일격. '인식의 전복'을 의미하였다.
 

 그렇게 인식의 혼란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수록 나는 극심한 '분열 상태'로 치닫기 시작했다. 
긴긴 식사 시간 동안 모든 것을 알아들으려는 노력이나 소통하려는 몸짓은 '그들만의 리그' 앞에 점점 더 부질없게 느껴졌고, 매 순간을 한껏 긴장한 채로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피로한 것을 넘어 나를 지치게 했기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지 않고' 있게 되었다.
 

내가 분해되고 사라지는 고통 위에서 


 바로 코 앞에서 무슨 말을 하든 큰 소리로 웃든 어떤 심각한 얘기를 하든 나는 '듣는 척만 할 뿐' 나의 모든 감각은 닫혀있는 채로 그들의 어떤 것도 '내 안에 들여놓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대답하기'가 그것이었다. 
 
 "죄송한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다시 한번 설명해줄 수 있어요?" 도 한 두 번이지. 그것을 매 순간 그들의 '즐겁고 우아한 대화'를 끊으면서까지 물어볼 수도 없었기에. 사실 매번 그래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그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도 피곤한 일이었고 급기야 나에게는 '귀찮을 지경'이었기에.
  
 그렇게 누군가가 내게 지금 말하고 있는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이 되면 대충 얼버무리며 맞장구치거나 '알아들은 양' 대충 넘어가기를 한 번 두 번 세 번... 어느 순간 나는 그것이 내게 '훨씬 편하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 방식에 나를 맞추어갔다. 
그러고 나면 적어도 수백 마디의 말을 '오로지 나의 이해를 위해' 불필요하게 다시 하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그들의 대화를 알아듣고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하는 것보다 중요했던 건 '나의 휴식'이었으므로.
 
 눈은 마주치고 있지만 나는 듣고 있지 않았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기에 그냥 내가 편한 대로 있으면 되었다. 그 순간에 내가 주로 한 것은 '멍 때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를 긴장하게 하고 피로하게 하는 순간들로부터 나를 '분리'하기. 그들의 순간과 '단절'하기. 
 
이 땅에서 '문맹'이 되어버린 나는 그렇게 '자발적인 벙어리'가 되어갔다. 나를 지키기 위하여.
 
그 안에서 나는 '내가 분해되는' 고통을 멈출 수 있었고 '내가 사라지는' 위태로움을 끊어낼 수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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