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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Aug 02. 2019

소통을 상실한 댓가.
'마음'을 잃은 '우리'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12화 


 자부심.이라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던가.

 나름 언어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내가 처한 '말을 잃어버린 자'라는 생경한 고통은 조금씩 나 자신을 '외부'로부터 거두어들이게 했고 '내 안으로' 더 깊이 데리고 갔다. 그렇게 '바깥의 소란스러움'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나는 더욱 '고요한 내면'으로 침잠하였다.
 
 마침 가족도 친구도 말동무도 없는 채로 있던 나에게는 '말'이 아닌 것으로 소통하던 '아기'가 있었고, 아기와 눈으로 마음으로 충분히 소통하였던 나는, 점점 말이란 것이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일상을 함께한다는 건, 기본적인 소통능력이 전제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카톡도 없던 시절, 내 전화기가 유일하게 울리던 순간은 언제나 남편이었을 만큼 나는 남편이 아니라면 '말할 사람' 자체가 없던 날들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남편은 맘껏 떠들며 '미주알고주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내 모국어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학교에서 배운 영어' 만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 보였던 연애 시절,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우리라며 마음이 더 중요하다 여겼음은 철저한 '콩깍지'였을 뿐, 자잘한 모든 것까지 다 '생활 속에서' 소통해야 하는 결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를 낳았다. 
 
 가장 가까워야 할 사이, 남편과 나는 '언어적 소통의 문제'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영어로 소통하던 결혼 초부터 우리는 매우 빈번하게 다퉜는데, 그 다툼의 대부분은 '언어의 뉘앙스'를 '오해'하고 발생한 문제들이 많았다. 서로 다른 언어는 당연히 '사고의 구조와 방식'까지 다른 것임에, 하물며 둘 다 상대방의 모국어로 말하지 못하는 데다 영어가 능통한 것도 아니니 이것은 그야말로 답이 없었다.
  
 말이 빠른 남편은 '습관대로' 나에게도 늘 말이 빨리 나와버렸고, '휙휙 지나가는' 말 중에서 어느 단어 하나만 잘못 이해해도 '아'가 아닌 '어'가 되어버리는 일이 너무나 비일비재했다. 나는 '남편이 말한 대로' 또는 '남편과 상의한 대로' 했는데 남편은 뒤늦게 '그것이 아니었다'며 성을 내기도 하였다. 
   
 

 가장 속상한 것은, 나는 '농담'을 한 것뿐인데 남편은 '불쾌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나는 철저하게 '한국인의 정서'로 말을 건넨 것이었고, 남편 또한 철저하게 '프랑스인의 사고방식'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유머를 친 거였는데 상대방이 다짜고짜 화를 내는 상황. 
 남편이 한국인이었다면 '턱 하니' 알아들었을 내 말의 뉘앙스와 의도는, 그것을 알 길이 없는 외국인 남편에게 전혀 가 닿지도 않았을뿐더러 긁어 부스럼만 만드는 답답한 날들이 쌓여만 갔다. 
 
 나는 그저 할 말을 잃고 멍청하게 서서 '억울함'을 삭혀야 했지만, 그때마다 내 미련함을 탓해보았자 이미 늦었을 뿐 길들여진 내 '언어 습관' 또한 하루아침에 바뀌어지는 게 아니었다. 
 

뿌리 박지 못한 나무는 저 혼자 위태롭다 


 이 상황은 불어로 소통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더 빈번하게 맞닥뜨렸다. '남편과 여기말로 얘기를 해야 말이 는다'는 절박함으로 내가 먼저 요청하였지만, 답답한 나의 불어로 '일상'을 소통하려니 성격 급한 남편은 남편대로 속이 터져서, 그거 하나 못 맞춰주냐며 서러운 나는 나대로 화가 나서, 정작 필요한 대화는 하지 못한 채로 언성을 높이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시댁을 갈 때마다 내가 얼마나 불편한지, 시댁을 너무 자주 가고 오래 머무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에 대해 남편에게 자주 언급했던 것도 남편에게는 '본능적 거부감'을 일으켰기에 '소통'에 득이 될 건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 관계에 서툴고 둔한 사람인 걸 알고 있었으면서, 다른 문화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시댁 가족들이나 남편 앞에서는 조금 '덜 솔직했으면' 좋았으련만 미련하게도 또 그러지 못하였다. 
 가까운 사이와는 스스럼없이 말하는 나의 습관이, 상대에 대한 '애정 표현'으로서의 나의 솔직함이, 그들 관점에서는 '너무 솔직하여' 오히려 그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더구나 프랑스인들에게 '솔직함'이란 '무례함'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이렇듯, 모국어가 아닌 언어들로 의사를 전달해야 하고 전달받아야 하며 이해해야 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것은, 그것을 생활 속에서 늘 해야 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크나큰 피로감을 주었고 서로를 많이 지치게 하였다. 우리는 처음엔 격렬하게 다투었고, 점점 포기해갔으며, 종국엔 그런 상황들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섞지 않는' 사이가 되어갔다.

 그렇게 나는 함께 생활하는 남편과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별 말을 하지 않기에 이르렀다. 
 유창한 말로 내 생각을 다 전달할 수 없을 바에야, 납득이 되도록 다 이해시킬 수 없을 바에야, 또 오해를 일으켜 언쟁을 할 바에야, 그냥 전하지 않고 이해시키지 않는 것이 더 편하였기에. 
 

 그렇게 언젠가부터 우리에게서 '대화'가 사라졌고 아이만이 우리의 유일한 '대화의 끈'이 되었다.  
 그러나 홀로 뚝 떨어진 곳, 의지할 사람이라곤 남편밖에 없었던 나.

 '유일한 소통창구'인 남편과도 마음으로부터 단절돼버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맘껏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도, 찬 한잔 마실 사람도, 힘들다고 투정 부릴 사람도, 외롭다고 하소연할 사람도 없던 나의 현실. 남편과도 맘 편하게 속 터놓고 위로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던 건,
 '말을 잃어가는 나'를 그저 바라보는 것이었고, 말과 함께 '모든 색채를 잃어가는 나'를 지켜보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무채색이 되어버린 나'를, '처음부터 무슨 색이었는지도 모르겠는 나'를 그저 멍하니 보는 것이었다. 독박 육아에 지쳐있던 날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무력한 나의 존재를 응시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나는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외 다른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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