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 합리와 논리의 나라 2편
학교 담임 선생님 문제로 아이 학교를 바꾸냐 마냐 했을 때였다. 솔직한 모습은 주로 엄마한테만 보여주던 아이는, 자신이 선생님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를 아빠에게는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었다. 그랬기에 그것을 늘 '대신 전하는 나'에게 남편은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네가 예민해서 그렇다'와 같은 말들로 답답하게 하다가 결국엔 진짜 속 얘기를 했다.
"나는 당신의 판단도, 오락가락하는 아이의 판단도 못 믿겠으나, 혹시 심리학자가 말한다면 생각해볼 수 있다" '심리학자의 진단서가 있다면 문제가 선명해지지만' 이 말은 조언을 구했던 프랑스 엄마들에게도 들었었다. '내가 주장하는 사유'는 학교를 바꿀만한 '합당한 사유'가 되기엔 애매하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었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남편의 생각을 바꿀 수 없음을 알고 절망하던 찰나, 순간 나는 무언가를 깨친 기분이었다.
합리와 논리와 이성을 신봉하는 이 사람들에게는 전문가라는 '증명된 권위'가 필요하구나. 그것이 프랑스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거구나.
아이를 돕기 위해 나는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그 '권위'를 가져와야 했다.
마침 아는 프랑스 친구 중에 심리학자가 있었고 그 친구에게 '좋은 아동 심리학자'를 소개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상담 날짜는 최대한 빨리. 친구는 아동심리로 평판이 좋은 분의 개인 번호를 직접 건네주며 3일 안에 예약을 할 수 있게 말해두었다고 했다. 너무 고마웠다. 예약제인 프랑스 병원은 일주일을 기다리는 건 기본이고 유명한 심리학자 같은 경우 몇 달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나, 아이가 함께하는 첫 상담 날이 다가왔다.
심리학자는 능숙하게 아이에게 유도신문을 꺼내어 아이 스스로 직면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했고, 곧바로 남편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님, 학교를 바꾸는 게 아이를 위해 좋습니다. 그 선생님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 이와 똑같은 사례로 중간에 학교를 바꾼 아이들을 저는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남편은 다음날 혼자 바로 교장을 찾아가 학교를 바꾸겠다고 말하고 서류까지 다 끝내고 돌아왔다. 그렇게 치열한 얼마간의 전쟁을 치르고서야 우리 아이는 겨우 학교를 바꿀 수 있었다. 처음엔 '신중함'을 앞세워 나와 아이를 힘들게 한 남편을 원망했었다. 하지만 점점 커다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 전쟁은 얼핏 남편과의 전쟁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가 전쟁을 치른 실체'는 남편 자체가 아니라 남편의 그러한 생각, 굳어져버린 어떤 견고한 생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이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남편이 독단적인 사람이어서도 아니었고, 남편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는 더더욱 아니었으며, 어쩌면 '너무 잘 교육받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남편 개인만의 어떤 문제가 아닌, 이 사회 개인들이 가진 어떤 '집단적 결벽증'에서 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싸웠던 상대는 남편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그러한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도록 학습시킨 이 사회의 어떤 교육, '직관을 수용하지 못하고 이성만을 종용하고 쫒게 만든' 어떤 철학에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평소 남편의 '사고의 기준점'이 남편 자신에게 있지 않고,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어떤 생각'에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남편은 신중하고 또 신중한 책임감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들의 '이성주의'의 근간이 되는 학문이 바로 '데카르트'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합리주의 철학'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상 자체가 '감각에 의해 얻어진 사실들'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이러한 철학적 배경을 알고 나니 그들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되었다.
철저하게 '합리주의 사고'를 교육받은 프랑스인들에게, '직관적 사고를 통한 판단'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성주의자들이 생각하듯 직관적 사고는 '무책임하게 감정에 휩쓸린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성이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을 감정으로서 느낌으로서 포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사고 안에서 '다른 여지도 있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 단적인 예가 또 있다. 아이의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상담을 가기 전에 실은 편지를 보냈었다. 그동안 아이가 어떠한 스트레스 상태를 보여왔는지, 왜 우리가 학교를 바꾸려 하는지, 사실에 근거하여 허심탄회하게 정성을 다하여 썼다. 그렇게 상담을 신청한 것에 대한 선생님의 이해를 돕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프랑스인들의 반응은 '발작'에 가까울 만큼 부정적이었다.
내가 선생님에게 편지를 쓴 것은, 아무리 사실을 얘기했다 하여도 '너무 직접적인 내용이기에' 프랑스인들에게는 '충격'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편지 보내는 것에 대해 남편과 상의하지 않았었기에 우선 남편에게 크게 한소리를 들었다. '프랑스식이 아닌 방법'으로 내가 '일을 망쳤다'는 요지였다. 몇몇 프랑스 친구들에게 물었을 때에도 '프랑스인들은 직접적인 표현을 꺼려하기 때문에' 선생님에게는 나의 편지가 '폭탄'처럼 다가왔을 거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상담하러 간 날 선생님이 내 편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폭력적이었어요"
자신의 부당한 행동을 반성하기보다, 그것을 지적한 나의 입에 화살을 돌리던 그들의 '지성'
그렇게 프랑스인들에게 '진실을 말함'이란 언제든 '폭력적인 것'으로 둔갑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 기준에, '지성인의 룰'을 지키지 않은 '미성숙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행동은 '옳지 않았다'는 것을. 논리를 앞세운 당신들의 해법은 '틀렸다'는 것을. 나의 '직관'이 맞았다는 것을.
* 문제의 선생님 때문에 학교를 바꾼 사례가 우리 아이 말고도 그전에 이미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같은 반 친구들 중에도 같은 이유로 힘들어하는 아이가 실제로 몇 명 더 있었으며, 심지어 한 아이는 그 선생님과 지낸 1년 내내 스트레스로 매일 아침 '구토를 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모두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결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그로써 나는 '나의 판단이 옳았음'에 대해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