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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Sep 18. 2019

이성과 논리의 나라에
'직관'의 자리는 없다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 합리와 논리의 나라 1편 


 우리는 현재 '서구의 정신'이 주류로 견고하게 자리매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성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생각, 논리적인 인과와 근거가 제시되어야 하는 명제. 그렇기에 언제나 '객관적'이라 이름 붙여진 사실들과 '증명된'거라 밝혀진 논제들은 때론 '전문가'라는 권위에 의해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의 모든 생활, 모든 삶 속에서.
 
 하지만 실제로 삶의 많은 순간들은 '사고의 기능'과는 무관하게 '감정의 상태'로써 느낌의 형태로써 우리를 두드리며, 때론 중요한 가치 판단에 있어 우리는 '생각의 범위'를 벗어난 다른 감각에 의존하여 선택을 할 때가 많다.
 그 말은, 언제나 '사고의 영역'만이 우리의 삶을 규정지을 수 없으며, 우리의 삶은 그 이외의 다른 영역 '보이지 않고 증명할 수 없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다른 영역에 의해 '함께'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된다.
다른 말로 그것은, 우리는 합리적일 수도 논리적일 수도 없는 '다른 부분'을 삶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국이나 동양의 사상과 정신은 예로부터 그것들을 말하여왔고 연구해왔고 학문으로 체계를 잡아놓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것이 통하지 않는 땅이 있다. 바로 이 곳 프랑스. 이성과 논리의 나라.
 
 
 나는 원래가 '논리'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가장 못하고 싫어하는 과목도 늘 수학이었으며 고등학생 때는 공포증까지 있었을 만큼 수학을 '고문'으로 여겼었다. '왜 꼭 이렇게 딱 떨어지는 증명을 해야만 하는거지? 참 쓸데없다' 수학이 내게 주는 느낌은 항상 이것이었다. 당연히 '토론'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내게 그것들은 그저 '피곤한 말장난'처럼만 느껴졌기에. 
 
 나는 주로 언제나 '직관'을 사용하였다. 둔한 머리를 굴리는 것보다 나의 느낌이 더 자주 '옳은 판단'을 건네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도, 친구를 사귈 때에도,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에도 '나의 감'이 시키는 대로 하면 그나마 후회할 일이 덜 생겼었다. 
 
 그렇게 나는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이기보다는 '가슴으로 생각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 방식이 사회 속에서 지지받을 순 없었지만 적어도 나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기에. 한국인의 정서는 이미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하지만 철옹성 같은 이성과 논리의 땅에서 나는, '객관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나의 방식이나 철학'으로 오해를 받아야 했고 때론 '커다란 벽' 앞에 서있는 막막함을 견뎌야 했다.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영역에 근거한 판단이나 선택'은 '용인될 수 없는 미성숙함'과 같은 개념이었기
 

"이것은 바람이에요"  "그것은 공기가 아니므로 바람이 될 수 없소"


 프랑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답답함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부분은 꼭 '이성과 직관이 충돌'하는 지점이었다. 한국 사람인 우리는 '직관의 관점'에서 말하고 프랑스 사람인 그들은 '이성의 관점'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특히 '교육을 잘 받은 프랑스 사람들' 일수록 더더욱 그 벽에 부딪히게 된다. 
 

 남편과 나는 모든 것이 달랐지만 특히 이 부분에서 끊임없이 부딪혔다. 더구나 나는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자연에 가깝게 살기'가 삶의 주요 가치로 자리 잡게 되면서 더더욱 모든 면에서 '사회적 함의들이나 당연한 방식'을 이탈하여 살고자 하였고, 남편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으로는 나의 주류에서 비껴나있는 사고방식을 이해하기도 용인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아이가 2살 때부터는 해열제는 물론이고 그 어떤 양약도 먹이지 않았다. 아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열을 내고 땀을 빼서 열을 내리게 했고 죽염이나 도라지청 배즙을 먹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남편에게서 "애한테 해열제 안 먹이고 뭐하냐"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해열제는 본질적으로 몸에 좋은 성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성적인 남편'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한국은 좋아하지만, 한약으로 병을 치료하고 침을 맞아 혈을 뚫는다는 개념 같은 것들을 '아예 믿지 않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철저하게 불신하는 완벽하게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아니, 이것은 프랑스 사람들 대부분의 특징이기도 하다. 일례로, 마사지 같은 것은 '그냥 몸의 근육을 만져주기에 좋은' 것일 뿐 그것이 우리 몸속의 경혈들과 연결되어 '막힌 기운을 뚫어준다'는 개념 같은 것을 여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가 없는, 이성적이지 않은 세계는 알지도 못할뿐더러 믿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소통에서만 이것이 황망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을 주장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 안에는 한 가지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했다. 어떠한 사실을 말할 때 그것은 '합리성'에 기반한 것이어야 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그것은 '논리성'을 토대로 하는 것이어야 하며, 어떤 주장을 내세울 때 그것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증명된 '근거'가 필요한 것이 그것이었다. 예를 들어, 
 
"난 그게 싫어" 그러면 '왜 싫은지? 싫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이유까지 설명해주어야 하는 것
 
 
하지만 난 자주 이유가 없었다. 그냥 싫었다. 굳이 이유라면 '느낌이 좋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나는 그냥 싫었고 그냥 좋았다. 물론 '나쁜 기운이 느껴져서' 싫거나 '좋은 에너지가 느껴져서' 좋았지만, 그것들은 논리적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에 더더욱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근거를 댈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프랑스인들은 '이유와 근거 없이' 말하는 나의 화법에 적잖이 당황하거나  때론 내가 그들의 '매끄러운 논쟁의 흐름'을 어이없이 깨버리는 상황에 직면하고는 했다. 무엇보다 늘 '설명해주어야 하고' '이유를 말해주어야 하는' 화법은 내게 너무 피로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논리적으로 무장된 그들' 앞에서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나의 방식은 때론 힘없이 주저 앉아야 했고 자주 쓸쓸하게 돌아서야만 했다.   

 
이렇듯 합리와 논리의 에서 '직관'이란,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한 '무가치하고 의미 없는 무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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