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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May 12. 2019

유럽으로 도망친 나,
좌절은 필연이었음을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1화


 유럽에서 산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부럽네요"이다. '헬조선'을 탈출한 자이기에 부럽고 '살기 좋은 세상'에 살고 있기에 좋겠다며.
 
 늘 듣게 되는 저 말이 이제는 내게 '진부하게'까지 들린다면, 세상 혼자 편하게 사는 사람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내 속'도 모르면서, 여기 사는 사람들 속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뱉어내는 저 첫마디를 들을 때마다, 무어라도 얘기해주고 싶은 마음에 입을 열어보려다가도,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건지 또 잘 알기에 그저 별 말 못 하고 입을 닫게 되곤 했었다. 그리고 기억해본다. 나도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것을.
 
 그랬다, 내가 떠날 때만 해도 '헬조선'이란 말은 없었지만 나 역시 어렴풋이 그런 느낌으로 한국을 떠났었다. 그랬다, 지금의 고통을 잊게 해 줄 어딘가에서 '진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이 먼 곳까지 아무런 미련 없이 왔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너머 여유 가득해 보이는 '그들'의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갖고 싶었고, 넘치는 그것들로 나의 모든 결핍과 허약하기만 한 현실을 대체하고 싶었다. 그렇게 결혼의 결정과 함께 곧바로 직장을 퇴사하였고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드디어, 모두가 동경해 마지않는 '유럽 생활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되는 일도 없어 보이고 꼬이는 일 투성이이며 박복해 보이던 나는 언젠가부터, 친구들을 비롯한 한국에 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러운 시선을 받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멋진 유럽 남자'를 만나 '멋진 서유럽의 나라'로 시집을 갔기 때문이었고, 더구나 그 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부유하고 부강했으며 누구나 한 번쯤 밟아보기를 꿈꿔본 땅인 '선진대국'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내가 인생 반전을 이룩한 아이콘인 마냥, 모두는 소란스럽게도 나의 '한국생활 종결'을 축하해주었고, 장밋빛일 것만 같은 '유럽생활 시작'을 부러움으로 반겨주었었다. 

 그러나 그 인생의 반전에, 또 다른 좌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을 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가 상상하는 '낭만적인 유럽'은 내 삶에 실재하지 않았다.
 
 물론 이른바 '선진국'에는 우리가 현재 갖고 있지 못한 많은 훌륭한 것들이 있다. 풍요로운 물질과 좋은 먹거리 풍성한 문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제도들. 그곳에는 '칼퇴근'이 있고 '충분한 휴가'가 있으며 '입시 지옥'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자유'와 '평등' 사상이 생활 속에 뿌리내려져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기도 하다.
 
 또한 '선진적 가치와 제도'를 배우고 따르려는 것은 충분히 건강하고 진취적이다. 그렇기에 나를 향한 모든 축복이 내게도 한 때는 당연하게 여겨졌고, 부러움의 시선들 앞에 왠지 모르게 우쭐해지는 듯한 기분을 잠시나마 만끽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즐기기는 잠깐이었고, 모두가 부러워한 그것들이 오히려 나를 옥죄고 자유롭지 못한 느낌으로 불행감을 안겨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목표는 하나, 지옥 같은 현실로부터 멀리 떠나기


 내가 이곳의 삶을 선택했던 건 보통의 이민자들처럼, 공부를 하기 위함이었거나 선진 문물을 경험하고 싶었다거나,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싶었다거나 하는 건강하고 도전적인 의지로부터 온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순전히 '불행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이 곳을 선택하였었다.

 나의 경우는 엄연히 '외국생활을 선택' 했다기보다는 '외국으로의 탈출'에 더 가까웠다. 더 정확히는 '나를 옥죄는 모든 현실이 사라진 다른 세계' 내게는 그곳이면 되었다. 그때 마침 한 유럽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나는 기꺼이 그를 따라 터전을 옮기면 되었었다.
 
 이렇듯 나의 외국살이가 좌절감으로 점철된 데에는 크고 작은 여러 이유들이 있었지만, 바로 내가 이 곳을 선택하기로 한 그 마음의 출발에 가장 큰 단서가 있었다. 그러나 '도망친 자'는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자라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는, 떠나올 때는 상상할 수 없던 길고 혹독한 시간들을 통과해야만 했다. 
 
 외로움이라면 매우 친숙한 나에게조차, 가장 가까워야 할 남편과의 사이에서마저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은 절대로 녹록지 않았으며, 매번 새로운 좌절들 앞에 좌절하고 또 좌절하며 나의 불행감은 비대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온 존재가 무너지는듯한 고통들을 생생히 느껴야만 했다.
 
 다행히 그 고난의 시간들은 나를 관통한 후 많은 의미 있는 것들을 내 안에 남겨놓았다. 그것들은 너무나 심플하여서 허무함이 들 정도의 것들이었다.


 내가 이야기할 것은 이렇듯, 혈흔만 없지 '극한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기'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게 유럽 남자와 유럽에 살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경험들을, 내가 통과한 고통의 현장들과 작은 깨우침의 순간들을, 그것들이 내게 남겨준 것들을 이곳에 담아보려 한다.
 
 모두가 부러워해 마지않는 이 땅의 무엇이 그토록 한 존재를 극한의 좌절로 몰아붙였었는지에 대하여. 그것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다시 살렸는지에 대하여.
  
 나의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그것에 대한 고백이라고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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