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김에 동네 센터에서 사진을 배우기로 하고 사진반에 등록했다. 어느 날, 사진반 수업에서 신초를 찍고 그 신초를 보며 20대를 회상하라,는 숙제가 있었다. 신초가 뭔지도 모르는 나는 사전을 찾아보고 국립국어원에 전화로 상담도 해봤다. 그제야 알게 된 신초를 찾아서 산책길을 나섰지만 신초를 발견하기도 신초를 찍기도 쉽지 않았다. 어렵게 신초를 찍고 사진과 함께 제출해야 할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대를 회상하라... 회상이란 한번 경험한 일을 다시 재생하는 것이다. 다시 재생하다가 보면 그 당시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법인가 보다. 젊어서 반짝이던 머릿결이 어느새 푸석해진 탓일까. 메마른 나뭇가지에 눈길이 모아져 세줄의 글을 썼다.
20대의 나는 자라고 싶은 방향을 향해 뻗어나가느라 분주했다.
나를 위해 태양이 빛을 전하고 줄기가 물을 실어 나르고 바람이 멀리서 찾아왔었다는 것을 모른 채.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버석하게 메마른 나무줄기의 모습,
신초에 물을 전하느라 목마른 것도 잊었던 걸까.
숙제를 제출하고 난 뒤부터였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때부터 산책을 할 때마다 내 눈에는 신초가 들어왔다. 아니 이렇게 신초가 많았어? 갑자기 가는 곳마다 신초가 눈에 들어왔다. 신초는 예전에도 거기, 그 자리에 머물고 있었을 텐데 신초가 내게 의미 있어지자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친근하게 드러냈다.
내가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신초가 그것에 관심을 모으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물에 대한 관심은 어둑한 무대 위 조명이었다. 관심이 없을 때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텅 비었던 무대 위가 관심이라는 조명을 켜자 하나 둘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보다'라는 행위는 사실 '보이다'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카메라 덕분에 지금까지 보이는 것만 보던 피동적 '보이다' 행위를 능동적으로 보는 '보다' 행위로 전환하게 되었다.
소파에 앉아서 내 마음속 걱정, 두려움, 후회 등만을 뒤적이던 내가 비로소 세상 밖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조리개를 조절하고 셔터속도를 바꿔본다. 렌즈 안에 담은 피사체에 따라 내 마음에도 계절이, 시간이, 빛이, 바람이 담겼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나서면서 나는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