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예술센터에서는 12시에 세계음악과 함께 분수쇼가 펼쳐진다. 분수의 물줄기를 사진으로 담으려고 시간에 맞춰 갔다. 분수쇼 앞에서 렌즈 안에 분수의 모양을 선명하게 담으려고 한참 시도하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분수 쇼의 분수 모양은 음악에 따라 다른 형태로 바뀌고 있었다. 그냥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분수가 아니라 때로는 생동감 있게 때로는 흐느적거리며 다양한 모양으로 음악에 따라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내가 공들며 보는 만큼 분수의 모습이 더 잘 드러났다. 공부만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행위도 열심히 하면 좀 더 잘 볼 수 있었다. 사진을 찍게 되면서 얻은 수확이다. 평소에 스쳐 지나가며 보던 익숙한 모습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수십 년 만나온 지인의 낯선 매력을 대면하는 것처럼 설레기도 하고 벅차오르기도 한다.
가장 인상 깊은 분수쇼는 사랑을 주제로 하는 음악이 흐를 때 물줄기가 양쪽에서 나와 중앙에서 만나 하트를 그리는 거였다. 오오(라고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신기했다. 왼쪽에서 나온 물줄기와 오른쪽에서 만난 물줄기의 만남. 그 찰나의 만남이 하트를 형성한다. 그 찰나를 찍기란 나 같은 초보에게 쉽지 않은 일이라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며 수십 번을 시도했다. 찰칵. 찰칵.
한때 가장 순수한 사랑은 짝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상대방에게 마음을 되돌려 받지 못해도 사랑을 유지하는,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순도 백퍼센트의 감정이라고 여겼다. 분수 하트쇼를 바라보며 이제 좀 생각을 달리한다.
사랑은 마주 봄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한 발짝씩 움직여서 비로소 한 곳에서 만나는...
서로 눈빛을 맞추고 서로를 읽어 내려가며 소통하는 것.
그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마음속으로 감정을 키워가기만 하고 멈춰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분수쇼의 왼쪽 물줄기가 나아가듯 오른쪽 물줄기도 나아간다.
사랑하는 상대방 쪽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게 된다.
양 물줄기가 중간지점에서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하트는 형성되며 사랑이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쉽지 않다.
때로는 내가 가고 싶었던 방향과 어긋날 수도 있고
때로는 상대방이 오는 방향을 읽을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기꺼이 상대방과 합일점을 향해 나아간다.
마주 봄이라고 하면 장소의 일치로 생각하기 쉽다. 같은 장소에 가야 만날 수 있고 눈빛과 눈빛이 교차해야 마주 보니까. 그런데 사실 만남, '마주 봄'은 시간의 일치 또한 중요하다. 같은 곳을 향해 뻗어나간다고 해도 서로 다른 시간에 출발하면 물줄기는 어긋나기 마련이니까. 결국 사랑이 완성되려면, 아니 하트가 그려지려면 정확한 방향과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하다.
박연준 시인은 <쓰는 기분>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일이 기적이라고 했다. 왼쪽 물줄기가 커브를 돌아 내려앉는 저 찰나에 오른쪽 물줄기 또한 반대방향으로 커브를 돌아 내려앉아 적확한 타이밍에 두 물줄기가 교차하는 것. 그 타이밍은 과연 기적이라고 할만하다. 반전은 그 만남의 순간, 마주 봄의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아무리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가도 적확한 시간에 출발해 만남의 지점에 도달했어도
만남 뒤에는 흩어지기 마련이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게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불꽃처럼 흩어지는 순간의 찬란함.
찰나의 아름다움이지만 마음에 오랫동안 살아있는 지속력.
사랑을 하기 전으로는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나를 변화시키는 에너지.
그리고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 후회하지 않는 그 순간의 가치.
그래서 사랑은 드물고 귀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