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차단, 손절이란 말이 유행인 듯 퍼져나간 것은 십여 년쯤 된 것 같다. 인간관계 책을 읽어도 심리 상담 글을 읽어도 나를 괴롭히는 사람과는 적당한 거리 두기를 넘어 연락망을 차단하고 인연을 정리해도 된다는 내용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그즈음 오랜 인연들과 삐걱거리는 갈등으로 마음이 괴롭던 나는 사람보다 활자를 신뢰한다는 나만의 논리로 망설임 없이 단톡방을 하나, 둘 빠져나오곤 했다. 처음에 단톡방에서 나가기를 누를 때에는 두근두근했지만 점점 무덤덤하게 쓱 나올 수 있었다. 후련했다. 묘한 쾌감이 들었다. 자유로워진 것 같기도 했다. 나를 툭 건드리는 사람이 없으니 평온했다.
그 평온함이 계속 이어져서 안정된 내면에서 성장이 이루어질 거라 믿었다. 몇 년이 흘렀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내 안의 나무는 자라기는커녕 말라비틀어져만 갔다. 평온이라고 믿었던 고요함은 평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정말 문제는 실타래가 꼬이면 풀지 않고 뚝 잘라버리는 성향이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라 일에까지 번져나간 것이다. 새로운 일을 제안받아도 그 일을 시작하고 나서 번거롭고 부담스러울 상황이 닥칠 것 같으면 일하기를 접었다. 삶의 목표가 생기면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실망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 내가 얻고 싶은 가치의 의미를 덜어냈다. 에이 그거 별로야. 그게 있다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야. 하나, 둘, 셋, 넷 주변의 모든 것에 의미를 덜어내는 것이 나를 실패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의미한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실패지만 무의미한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위안 삼았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나니 삶이 평온한 듯 여겨졌다.
그 평온함의 실체는 사실 무력함이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자극도 반응도 없는 상태를 평온함인 듯 붙들고 있었다. 도미솔라시 건반을 넘나들며 음역을 높였다가 낮췄다가 오가는 멜로디 없이 한음에만 머물렀던 셈이다. 자려고 누우면 마음에 구멍이 뚫린 듯 휑했지만 그때마다 내가 가진 걸 손으로 세며 불행하지 않다고 되뇌었다. 조금 더 욕심이 나는 날이면 행복은 어렸을 때나 꿈꾸는 것이라고 나 자신을 꾸짖었다. 나한테조차 푸념을 못한 채, 점차 무표정한 얼굴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무채색으로 채워나가고 있었다.
마음의 무기력함은 몸으로 이어졌고 며칠 동안 신발을 신는 일조차 없이 집에 있다가 보니 온몸이 다 저리고 쑤셨다. 건강검진을 앞두고 두려움에 휩싸인 나는 소파에 앉아 내 안을 휘저으며 무기력함을 곱씹는 대신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묘하게도 걸을수록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다. 한걸음 내디디기가 천근 같던 발걸음은 목표했던 동네 문화센터에 도착할 즈음 가뿐하고 가벼워졌다.
이 작은 일을 해낸 내가 대견스러웠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잎색 잎, 하늘색 하늘, 구름색 구름을 바람 쐬며 바라봤다. 바람 냄새도 오랜만에 맡아봤다. 내가 바라보는 것이 내 마음에 옮겨와 담겼다. 내 마음속 부대끼던 걱정대신 푸른 잎과 하늘색 하늘과 구름색 구름이 자리 잡았다. 물든다는 것이 이런 걸까? 하늘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하늘색이 되었고 구름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몽실몽실해졌다.
하늘빛과 구름빛으로 물든 내 마음에 잔잔한 파동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