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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Jun 14. 2023

간호법에 대한 짧은 생각 1

간호법에 대한 시시비비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너무 달라서 브런치 글 하나로 담기 어렵다. 게다가 무슨 말을 해도 불이 활활 잘 타는 좋은 소재이기 때문에 다루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대충 이런 생각이 들고 이런 얘기가 의사 사이에 오갔다 정도로 몇 가지 남겨볼까 한다.


#1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며칠 전이었다. 직원 식당에서 동료 과장님과 식사하고 있는데, 마침 TV 뉴스에 간호법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과장님은 간호법이 국회 통과를 해도 결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서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간호법이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사 집단의 힘이 아니고 [중범죄 의료인 면허 취소법] 때문일 거라고 했다.


[중범죄 의료인 면허 취소법]은 '의사 면허 박탈법'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로 뉴스에 오르내리곤 했다. 그런데 그 용어는 다소 선동적이다. 왜냐면 의사가 아니라 의료인 면허 박탈이기 때문이다. '의료인'에는 의사 말고도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가 포함된다. 과거에도 의료인은 '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의료인 결격사유라고 해서 면허가 취소되었다. [중범죄 의료인 면허 취소법]은 이를 '의료 관련 법령'이 아니라 모든 금고 이상의 형으로 확대 개정한 것이다.


뉴스엔 의사만 게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도 그럴 것이 직종 간 입장이 매우 달랐다.


● 치과의사

의사와 비슷. 그러나 사람들은 의사와 치과의사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다 의사로 보임.


● 한의사

법 통과 전까진 '의사(?)가 그동안 누려왔던 특권'을 개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법안보단 의사를 까 내리는 걸 우선시. 그러나 정작 법안이 통과되자 반대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 (...).


● 간호사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음. 당연한 것이 어차피 간호법이 통과될 걸로 기대되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되면 간호사는 의료법에서 분리되어 '의료인'이 아니게 되기 때문. 적어도 당시 [중범죄 의료인 면허 취소법]은 간호사에겐 남 이야기였던 셈.


● 약사

사람들이 잘 구분하지 못하는데, 약사는 '의료인'이 아님. 약사는 '약사법'이라는 그들만의 법이 있고 [중범죄 의료인 면허 취소법]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음. 괜히 한마디 거들었다가 주목받는 것보단 (어? 그러고 보니 약사 너네는 왜 면허 박탈법에서 빠짐?) 숨죽이고 있는 게 상책. 역시 한국 정치에선 약사가 최고 강자라는 게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의료인 중에선 의사가 총대를 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다른 직종은 의사 등에 칼만 안 꽂으면 다행이었다. 그 와중에 한의사는... 뭐 코미디가 따로 없지만 그만큼 두 집단의 갈등이 오래되고 깊음을 반영하는 게 아니겠는가. 어찌하리오.


어쨌든 [중범죄 의료인 면허 취소법]과 간호법을 같이 통과시키는 건 대놓고 특정 직종에 너무 많은 혜택을 몰아주는 거라 높으신 분들도 부담될 거라는 게 과장님의 의견이었다. 둘 중 하나는 안 되지 않겠냐고.


과장님의 선견지명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결국 간호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일단 보류되었다.


결국 의사가 승리한 거 아니냐고? 글쎄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닐까. 우리 같은 서민이 높으신 분들 큰 그림을 어찌 알겠나. 난 [중범죄 의료인 면허 취소법]을 무사히 통과시키기 위해 일부러 간호법과 같이 내놓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간호법은 어차피 지금은 버리는 카드 같은 느낌. 아무거나 금고 이상의 형을 때리면 의료인 면허를 박탈해 버릴 수 있는 강력한 족쇄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높으신 분들에겐 간호법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 아닐까. 이제 앞으로 의료인의 집단행동은 모두 잠재적 금고형 감이다! 그걸 약사도 못 집어넣을지언정 간호사를 빼준다고? 간호사가 오늘은 내 편이지만 내일은 누구 편에 붙을지 어찌 알고?


자고로 높으신 분들은 서민끼리 갈라치기 싸움으로 정신 팔고 있는 동안 자기 유리한 일은 조용히 두세 수 미리 준비하시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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