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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Jun 16. 2023

완벽한 진리는 없으나, 늘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 학문

다른 학문도 비슷하겠지만, 의학은 계속 변한다.


치료 권고안도 매년 자잘하게 바뀌곤 하는데, 그때마다 보기엔 기존 진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런 작은 변화가 몇 세대가 누적되면 큰 변화가 되어 있는 거다. 따라서 지금의 변화는 늘 느끼기 어렵고 나중에 과거를 뒤돌아보며 새삼 깨닫게 된다.


#1

산모마다 상황은 달라도 분만은 결국 두 가지 중 하나로 하게 된다.


- 질을 통해 자연분만

- 제왕절개 수술


음... 써놓고 보니 너무 당연한 말을 한 것 같네. 그런데 산과학의 절반 이상은 결국 '자연분만해도 되나? 수술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내용이다. 산과학이 추구하는 목표는 산모가 최대한 안전하게 분만하는 것, 그리고 불필요한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난산은 매우 중요한 관심사이다. 분만을 앞둔 산모가 걱정하는 상황 중 하나가 진통을 겪을 대로 다 겪으며 고생하곤 결국 못 낳아서 제왕절개 수술하게 되는 것이다. 진통의 단점과 제왕절개의 단점을 모두 겪는 최악의 상황이다. 아니 그럼 난산을 예측해서 어차피 안 될 산모는 진통 전에 제왕절개 수술하면 안 되나? 그런데 그걸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과거 의사는 난산을 예측하기 위해 산모의 배를 방사선 촬영했다!


1895년 엑스선의 발견 후 1900년대 초중반 정도(흐지부지 사라져서 정확하게 끝난 연도란 없겠지만)까진 난산의 예측을 위해 방사선 촬영이 흔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바로 '협골반'을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방사선 사진 한 장만 찍으면 산도를 이루는 엉덩뼈 양측의 사이 간격을 손쉽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는 사진을 보며 "태아가 통과하기엔 골반이 너무 협소해서 자연분만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방사선 촬영은 의사가 내진으로 짐작하는 것보다 객관적이고 측정자 간 오차도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요즘 상식으로 생각하면 정말 식겁할 일이다. 하지만, 의외로 의료용 사진 몇 장 찍는 수준의 방사선 노출은 태아 기형을 유발하지 않는다. 더욱이 분만을 앞둔 시점에선 사실 출생 후 엑스선 촬영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도 하니까. 현재 골반 촬영으로 난산을 진단하지 않는 이유는 검사 자체의 효용성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즉 엑스선으로 엉덩뼈를 말끔하게 찍을 순 있어도 그것만으론 난산 가능성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었다는 거였다.


분만은 변수가 너무 많다. 산모의 골반만 아니라 살, 태아의 크기, 태아의 협조 등 여러 요인이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모든 요소가 잘 맞아떨어지면 협소한 골반을 가진 산모도 자연분만할 수 있다. 반대로 잘될 것 같은 산모도 뭔가 일이 꼬이면 난산이 된다. 결국, 난산은 진통을 해봐야 알게 된다. 산부인과 의사로선 경험적으로 짐작할 수 있어도 100% 확신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난감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난산 예측도 잘 못하고 불필요하게 방사선을 쬐는 산모 골반 촬영은 옛날이야기로만 남게 되었다. 그래봤자 불과 100년도 조금 안 된 과거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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