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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Jun 18. 2023

의대 정원 확대

#1

"신입생 여러분께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합니다만, 솔직히 의사가 돈 잘 버는 시절은 이미 끝났습니다. 심지어 여러분이 의사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건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입니다. 이미 막차도 한참 전에 떠났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굳이 의대가 아니라 어딜 가도 성공할 수 있을 실력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경제적인 성공에 집착하지 마시고 다양한 시각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내가 의대에 입학했을 때 학장님의 신입생 환영사가 대충 이랬다. 의사는 몰락(?)했고 막차는 한참 전에 떠났으니 지금 탑승한 너희는 한번 잘해봐라? 신입생 환영사로선 꽤 파격적이라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이게 벌써 20여 년 전 일이다. 10년이 두 번이나 지났으니 학장님 말씀대로라면 의대가 망해도 두 번은 폭삭 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


학령인구가 줄었음에도 아직 사람들은 자식을 의대에 못 보내서 난리다.


#2

의대 정원 확대를 놓고 말이 많다. 여론몰이를 통해 명분도 많이 쌓았으니 의대 정원 확대는 분명 될 것이다. 정원 확대 자체는 하도 좋다고만 하니깐 일단 그런가 보다 하자. 문제 제기는 아니지만, 몇 가지 다른 생각을 좀 해본다.


① 꼭 수능으로 의대를 못 가도 의사 될 수 있다


'헝즈러몽'이라는 줄임말이 있다. 헝가리,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몽골 등 한국 의사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는 해외 의대를 말하는 단어다. 사실 헝즈러몽은 일종의 멸칭처럼 사용되는 단어다. 해외 의대는 입학이 매우 쉬우므로 이를 통해 한국 의사 면허를 따는 걸 한국 의대생들은 돈으로 면허를 사는 '편법'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의사가 그냥 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일종의 자격시험을 봐야 하므로 여기서 어느 정도 질 관리가 된다(고 믿어야 한다). 어쨌든 나라에서 제도로 인정하고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다.


해외 의대생의 자질 논란은 일단 넘어가고 중요한 점은 해외 의대라는 방법이 있어서 의사 TO가 사실상 상한이 없는 상태라는 거다. 사람들이 아직 잘 몰라서 그렇지 이미 알음알음 많이 알려져서 해외 의대 출신 의사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난 차라리 헝즈러몽 같은 우회로가 생겨서 과열된 입시 경쟁에 숨통이 좀 트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까지 해서 의사를 할 정도로 사회가 젊은이에게 다른 대안을 못 준다는 점이 안타깝긴 하지만.


②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의대 좋지. 학생들에게 인기 폭발이고... 만들면 돈 좀 되겠는데?'라는 생각을 대부분 대학교와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을 거다. 공공의대든 의대 정원 확대든 무슨 일이 속셈 없이 진행되는 게 있겠는가. 과거 TO 조정 사례 등 몇 가지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첫째는 사범대. 2010년대였던가? 10년 전에도 이미 학령인구가 심각하게 감소하고 있었으나, 오히려 사범대는 더 늘어났다. 학생보다 너무 많아져 버린 예비 교사 문제가 심각한 게 요즘 상황. 임용고시 경쟁률이 과열되고 심지어 합격해도 바로 발령받지 못하고 대기한다고 한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인데, 그거 아는가? 그 10년 전에 사범대 축소를 주장한 이들에게 '밥그릇 프레임' 씌웠던 거? 지금은 일단 급한 대로 사범대 출신만 국영수 교사가 될 수 있게 제한한 모양인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둘째는 간호대. 간호사가 매우 힘든 직업인 건 사실이다. 그만두시는 분들도 많고. 그래서 2021년이었나?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이라는 게 '간호대 정원 확대'였다. '많이 뽑으면 덜 힘들다 하겠지? 지방에도 가서 일하고'라고 생각한 걸까... 하지만 간호사는 강렬하게 반대했다. 간호사는 "면허를 가진 간호사 수가 부족해 지방 병원 간호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처우나 보수가 좋지 않아 지방으로 가려는 간호사가 없는 것"이라며 근본적인 대안 마련을 요구했다. 이러한 시위는 2023년 간호법 제정 요구로까지 이어진다. 간호사가 말하는 논리 자체는 사실 의사에게도 비슷하게 적용 가능한데... 의사 이미지가 영 좋지 않아서 잘 안 먹히는 게 안타깝다.


셋째는 공대? 최근 서울대 공대 합격생들이 입학을 포기하고 의대(짐작)를 준비한다는 뉴스가 나왔고 역시 댓글은 의대 까는 글로 활활 탔다. 비록 기사는 직접 나쁘다곤 하진 않았으나, 서울대 공대 포기하고 의대 가는 걸 '인재 유출'이라든지 등의 표현으로 마치 좋지 않은 느낌이 들게 묘사되어 있었다. 다분히 의도가 있는 것이니 의사 까는 댓글이 달리는 것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되도록 했을 것이다. 때마침 의대 정원 확대 협상을 앞두고 있어 의사 협회를 압박하는 명분 쌓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개인이 서울대 공대 포기하고 의대 가는 선택을 하는 게 잘못인가? 교수가 학생 인생을 책임질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막상 의대 와보니 서울대 공대 가서 S전자 가는 것보다 연봉이 적을 줄 몰랐다며 후회하는 것도 본인 선택이다. 공대 자체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그만큼 학생을 더 많이 뺏기게(?) 된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학생들이 '와 의사 흔해져서 망하겠네'하고 공대로 돌아가나? 그건 교수님들이 또 어떻게 생각하실지... 서울대 공대 정도면 어차피 누군가는 갈 테니깐 걱정은 없으시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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