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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Jun 13. 2023

브런치 먼지 털기

#1

평소 책상 정리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바빠서? 성격이 무던해서? 이유는 다양하게 갖다 붙일 수 있겠지만, 이과생인 내가 좋아하는 변명은 뭐니 뭐니해도 이거다.


"자고로 '정리'라는 것은 내 공간의 무질서(엔트로피)를 감소시키기 위해 추가로 에너지를 쓰는 행위이다. 내 공간은 인위적으로 질서가 생기지만, 우주 전체로 볼 땐 추가로 사용된 에너지는 총 무질서를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우주적 관점에선 책상 정리를 안 하고 그대로 두는 게 좋다."


언젠가 문과생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가 말했다.


"그럼 우주의 질서를 위해 당장 죽어버리지 숨은 왜 쉬고 살고 있냐?"


문과생은 꼭 이런 식으로 반박하기 어렵게 말하더라?


#2

집 책상에 먼지가 쌓였다. 손가락으로 쓱 훑어 묻어나는 먼지를 털며 '빈말로도 "열심히 글 쓰고 있어요"라곤 못 하겠네'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주로 일하는 장소는 병원 책상 앞이고, 쓰는 글은 환자 차트이다. 그러나 바쁘다는 건 핑계일 뿐 아니겠는가. 다들 바쁘게 일하면서 글 쓰는 건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진짜 내게 허용된 체력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맞다.


오랜만에 PC를 켜보니 쓰다가 중단한 글들이 바탕화면에 덩그러니 있었다. 간호법에 대한 글이라든가... 인생의 불안에 대한 글이라든가... 쓸 땐 의욕 충만해서 썼으나, 쓰다 보니 지쳐서 다음에 써야지 하고 내버려 둔 것들. 이걸 어떻게 다듬어서 올릴 수 있을까 고민해 보다가도 '에효.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공허한 메아리지'라는 결론을 내린다.


계속 이렇게 생각해선 브런치에 아무것도 못 쓰겠다 싶다.


#3

그래서 어깨에 힘 좀 빼고 아무 생각 종합세트 같은 짧은 글을 쓸 계획이다.


형식은 김하이라이트 (@glmat) 작가님의 브런치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작가님은 일과 육아를 하면서도 거의 매일 글을 올린다. 작가님을 보면 바빠서 못 쓴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다.


내용은 몬스테라 (@monstera) 작가님을 닮고 싶다. 작가님의 글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인생의 성찰이 담겨 있는데, 그걸 유난스럽지 않게 표현하는 점잖음이 매력적이다. 역시 문과생의 글은 뭔가... 뭔가가 다르다.


일단 생각은 이렇게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내 스타일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일단 써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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