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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Jul 14. 2023

피부미용의원은 좀 어때? (2)


#4

산부인과 전공의로 잠도 못 자고 고생하고 있는 후배에게 어느 날 슬쩍 물어보았다.


"OO야 산부인과 해보니까 어떠니? 피부미용의원에서 근무할 때가 더 좋지 않니? 솔직히 전공의보다 월급도 많이 주고 일도 편하고 쾌적할 거 같은데"


"아유~ 아니에요. 교수님. 산부인과 일이 힘들긴 한데, 전 피부미용의원은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아요. 직접 가서 일해보니깐 확실히 알겠어요."


"흠 그러냐... 거기는 분위기가 어땠는데?"


"거긴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어가야 해요. '내가 그래도 의사인데' 같은 알량한 자존심 있으면 한 달도 못 버텨요."


본인 입으로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후배는 피부미용의원에서 손님(?)들에게 꽤 인기가 많았고 그만큼 매출도 잘 나왔다고 했다. 병원장도 좋아했다고 하고, 당연히 그에 따른 인센티브도 받았다. 산부인과 전공의에 비하면 훨씬 편하고 돈도 많이 버는 일이었다.


하지만 후배는 피부미용의원 일이 자신이 생각하던 의사 상과 맞지 않고 재미가 없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곳에 오는 손님도 자신을 의사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과한 화장을 하고 온 아줌마들이 자신을 '언니! 언니!'라고 부르면서 하대할 때마다 그녀는 자존심이 깎여나가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결정적인 계기가 된 손님의 한마디가 있었다.


"언니! 내가 오늘~ 약간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은데~ 여기는~ 감기약은 처방 못 하겠죠?"


자신이 있는 장소, 그리고 자기 앞에 가운 입고 앉아있는 사람을 그 손님은 뭐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여긴 정말 올해까지만 일하고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5

"그럼, 거긴 남자 선생님은 없었어? 남자가 하기엔 어때?"


"있기는 한데요 교수님... 그런 곳은 여자 선생님이 인기가 많아요. 손님들이 여자가 많기도 하고... 접수할 때부터 여자 과장님만 원하시는 분이 많아요. 남자 선생님은 엄청나게 잘해서 소문나지 않으면 좀 힘들 것 같아요"


"엥 거기도 여자만 찾고 그러냐... 에효 나중에 갈 곳 없어지면 나도 다른 의사처럼 미용으로 빠지게 되나 걱정인데, 막상 그때 되면 날 받아주는 피부미용의원도 없겠구나. 절대 쉬운 곳이 아닌 건 알지만 네 얘기를 들으니 더 못 하겠군. 막막하네"


"교수님 거긴 별로 갈 곳이 못 돼요. 아니면 자존심 다 버리고 일해야죠"


후배는 같이 일했던 한 남자 과장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대학병원에서 내과 전공의를 했지만, 필수 의료에 대한 대우가 너무 좋지 않아 그만두고 나왔다고 했다. 막상 나와보니 갈 곳이 없어 피부미용의원에 취직하긴 했는데, 그가 그동안 겪었던 내과 일과 미용은 너무 괴리가 컸던 모양이었다. 남자 선생님이라 손님에게 인기가 없었는지, 그의 태도가 소극적이었는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출실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했다. 후배가 그를 옆에서 보면서 짐작한 바로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상상일 뿐이지만) 아무래도 대학병원에서 중환자를 보다가 오신 분이니 그가 피부미용의원에서 영업하고 있는 게 일은 편해도 자신의 일이 몹시 하찮게 느껴졌던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의 저조한 실적을 병원장이 질책하며 "자꾸 이럴 거면 여기서 일 못 합니다!"라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흥- 코웃음을 치곤 그대로 짐 싸서 나가버렸다고. 이후 소문엔 그는 대학병원으로 돌아가 내과 의사를 하는 것 같다고 후배는 말했다.


#6

후배의 이야기가 새삼 생각이 난 계기는 최근 지인을 찾는다고 인터넷 검색을 해본 것이었다.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찾은 건 아니다. '하... 그때 걔는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살까?' 같은 뜬금없는 궁금증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는가? 다만 그 사람이 의사라면 그를 좀 더 찾기 쉽다. 어딘가 병원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다면 병원은 '의료진 소개'를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찾아보니 그는 한 피부미용의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아 역시 이렇게 살고 계시는구나...'


왜 '역시'인지 자세히 말하는 건 너무 개인 정보이니 생략하기로 하고. 정작 내 눈길을 끈 건 엉뚱하게도 같은 병원의 어떤 과장님이었다. 그분의 프로필엔 '○○대 □□과 졸업'이라고 당당히 적혀 있었다.


그분은 다른 대학을 졸업 후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의사가 된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학벌 세탁'일지 모르겠으나, 보통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의사가 되면 본인이 학사 졸업한 대학 및 학과는 의료진 프로필에 언급하지 않는 것이 이 바닥 표준이다. 솔직히 ○○대 □□과 나온 것과 환자를 잘 진료하는 건 아무런 연관성이 없으니까.


그런데도 그가 굳이 프로필 첫 줄에 '○○대 □□과 졸업'을 언급한 건 당연히 그것이 한국에서 손꼽히는 상위 대학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무나 갈 수 없는 곳. 마치 그 한 줄이 그를 지탱하는 자존심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난 왜인지 안타까웠다. '○○대 □□과라는 어마어마한 곳을 졸업했다면 그대로 쭉 나가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도 보람 있는 걸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의사 되자마자 바로 피부미용의원에 취직한 게 더 행복한 인생이 맞는 건가 싶고... 잘 모르겠다. 어차피 다 괜한 오지랖이고 꼰대 냄새나는 생각일 뿐.


다만, 그 선생님의 인생사와 우리나라 의료 정책 역사를 나란히 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과거 정부에서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할 때 온갖 좋은 이유는 다 갖다 붙이고 기존 의대를 적폐 집단으로 매도하면서 밀어붙였는데, 그렇게 해서 나올 거라던 '훌륭한 의사'도 결국 이름 없는 피부미용의원 과장이 된다고 생각하니 퍽 씁쓸하다. 공공 의대, 의대 정원 확대... 앞으로도 또 다른 뭔가가 계속 나오겠지만, 바이탈 과 의사들이 좌절하는 분위기가 반전되지 않으면 어차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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