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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Oct 15. 2023

와 진짜 의사가 좋긴 좋은가보다


오는 19일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확정' 발표하겠다고 한다. 얼마나 늘릴 것인지는 아직 내부 조율 중인 것 같으나, 대통령실에서 '인상적인' 증대를 요구했다 하므로 최소 1,000명 이상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난 의사이지만,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미 지금도 해외 의대라는 우회로(?)로 의사가 되는 방법이 있고 이는 거의 TO 제한이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번 발표 덕분에 약~간 실력이 부족하셨던 '있는 집' 자제분 매년 ○○여명은 이제 굳이 해외로 나가서 귀중한 청춘과 외화를 낭비할 필요가 없어졌다. 국가적으로 참 잘된 일이다.


한편, 침체에 빠진 이공계에도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이전에 왜 R&D 예산을 욕 먹어가며 삭감했나 했더니, 얼른 정신 차리고 기회 줄 때 의대 가라는 큰 뜻이었구나 싶다. 안 그래도 S대 공대는 과학고 애들이 잠깐 있으면서 의대 준비하는 곳이라는 소문마저 있던데, 국가적으로 참 잘된 일이다.


아니 이렇게 좋은 일 할 거면 좀 더 일찍 발표하지 그랬냐 싶다. 강서구에서 여당이 처참하게 패하고 난 뒤 발표하니까 사람들이 오해하는 거 아닌가! 예로부터 '좌우 상관없이 정치인의 과오를 덮기 좋은 건 의사 때리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다 좋은데 실소가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의대 정원 확대는 이미 너무 많이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찬성 측과 반대 측이 근거로 들고나오는 그놈의 OECD 통계도 둘 다 일리가 있다. 원래 통계라는 게 그렇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분석하냐에 따라 교묘하게 달라질 수 있는 것. 따라서 한국에 의사는 넘쳐나면서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상관없는데, 상대방을 '정부의 포퓰리즘'이니, '의사의 이기주의'이니 하며 매도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의사 단체는 난처한 입장일 것이다. 절대 또 파업은 못 한다. '병원 파업'은 강력한 힘이지만, 함부로 쓸 수 없는 카드이다. 그걸 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국회의원들이 좌우 합심하여 이에 대해 대비도 해놨다. 그게 '의료인 면허 취소법'이다. 다음 파업은 진짜 '강 대 강 대립'으로 '오냐 어차피 이래도 의사 면허 잘려서 죽고, 저래도 못 살겠는데 응급실 한번 쉬어보자' 정도는 될 정도로 의사가 코너에 몰려야 할 것이다. 최근 교사 파업(?)의 예를 보면 환자 갑질로 자살하는 의사가 여럿 나오는 정도는 되어야 '그래 의사가 파업할 만하네'라고 여론 조성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의사 단체가 반대를 안 해도 우습게 되어버린 처지이기도 하다. 뇌를 정치로 너무 절인 이들이 문재인 정권 땐 공공의대로 '400명' 증원한다고 하니 게거품 물던 의사들이 윤석열 정권이 '최소 1,000명 이상' 증원한다고 할 땐 조용하다고 벌써 조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빨더니(?) 이젠 어떻게 하나 보자"라고 하는데, 세상을 좌우로 나눠 보려고만 하는 사람에겐 그렇게 보이나 보다. 그러나 당시 젊은 의사들을 움직이게 만든 명분은 '400명 증원'이 아니라 '공공의대로'였다는 걸 간과하고 있다. 게다가 당시 초안은 '공공의대 입학은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게 하자'는 노골적인 '끼리끼리 해 먹기' 문구가 들어가 있어 수능 본 지 얼마 안 된 의대생을 제대로 열받게 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시에도 "400명 증원할 거면 차라리 수능으로 뽑아라"라고 말하는 의사들이 많았다. 물론 그렇게 의사들 사이도 의견 합일이 안 되어서 파업이 흐지부지 끝나고 망했지만... 아무튼, 의사 단체가 보수집단이라 가만히 있는 건 아니고 힘 빠진 종이호랑이가 되어서 찍소리도 못하고 있는 거다.


어찌 보면 의대 정원을 용케도 오래 잘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왜 의대 정원이 계속 이렇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의사도. 의대 정원 동결은 2000년 의약분업을 실시하기 위한 의약정 합의 사항이다. 정부가 의사에게 일방적으로 정책 강요를 하면서 대신 지켜주겠다고 했던 '약속'이다. 따라서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건 정부가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애당초 정부는 '어차피 이런 건 나중에 무시하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했다는 걸 지속적이고 노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과거 선배 의사들은 순진하게 뭐 이런 지키지도 못할 약속으로 정부랑 합의를 해줬나 웃음이 나오지만, 그래도 20년 정도면 오래도 버텨줬다. 이제 오래된 약속도 '드디어' 깨졌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적어도 정치인들 약속 같은 건 믿을 게 못 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의대 정원 확대'는 그런 의미이기도 하다.


난 의대 정원 확대 자체는 찬성한다. 불쌍한 수험생 중 1,000명의 숨통은 약간 트이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 의대 정원 확대는 환자보단 수험생 부모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애당초 왜 의대 가려고 하는 건가? 의대만이 헬조선의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버리고 다른 건 장래성이 없어진 사회가 문제 아닌가. 정치인 놈들은 민심의 화를 의사에게 참 쉽게 떠넘긴다는 느낌이다.


내 의사 생활을 돌이켜 보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의사는 흙수저 집안 출신인 내가 부모의 아무런 경제적 도움 없이 오로지 내 몸뚱아리 하나로 자립하게 해준 고마운 직업이다. 그것만으로도 사회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산모와 환자를 돌보고 있으나, '산부인과 12억 소송' 같은 뉴스를 보면 불안하고 좌절감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도시 노동자의 평균 임금과 비교하면 내 월급이 적다곤 할 수 없겠으나, 훨씬 안전하고 편하며(?)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으로 보이는 (이건 빛 좋은 개살구일 수 있다) '피부미용' 의사의 삶이 부러운 적도 물론 있다. 그들의 화려한 삶이 부러울 땐 여우의 신 포도처럼 '저 사람들은 화려해 보여야 사람들이 유명하고 실력 좋은 의사로 생각해서 저러는 걸 거야... 실제 실속은 나랑 도긴개긴일 거야...'라고 생각해본다. 그런데, 솔직히 나도 인간인지라 가끔은 '피부미용 의사들 한번은 좀 죄다 망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해본 적은 있다^^;; 어떻게 해도 내 삶이 여기서 더 나아지지 않는데, 다른 이들은 잘나가는 것처럼 보일 때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그들도 엄청나게 아등바등 살고 있는 건데 말이다.


사람들이 '의대 정원 확대'를 환호하는 반응을 보면 그게 정말 '필수 의료의 몰락'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것보단 그저 '의사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징벌적 의미로 원하는 목소리도 많이 보인다. 그들의 모습에서 '피부미용 의사들 망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내 모습을 본다. 사실 의대 정원을 1,000명 늘리든 2,000명 늘리든 어차피 뒷감당은 국민이 감내할 일이라 관심 없다. 그저 국민 정서가 '나도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라, 시기, 질투, 분노와 같은 '마이너스 기운'으로 움직이는 게 우려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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