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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Oct 19. 2023

나이 드는 게 무섭다

병들고 늙으면 없어지길 바라는 사회에서

#0

5~6시쯤 뉴스 알람이 떴다. 슬슬 진료 마감 시간이라 차트 정리하면서 별생각 없이 열어봤더니 이런 내용이었다.



아! 정정한다. '별생각 없이 열어봤다'가 아니고 '제목 보고 '이건 또 무슨 개수작이야? 차라리 "미친 의사 놈들"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지 그래?'라고 생각하며 열어봤다'가 맞겠다.


알람 온 뉴스는 중앙일보였지만, 출처는 일부러 조선일보로 가져왔다. 보아하니 감사원에서 내용을 받아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정부가 하는 여론전의 나발을 불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조선'과 그 '중앙'이니까. 사실 이런 식의 의사 헐뜯기는 '한겨레' 종류의 언론에서 허구한 날 보긴 했는데, 조선일보에서 먼저 만나니 참신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디서 나발을 불든 일단 국민의 분노와 공포부터 조성하고 시작하겠다는 건 똑같다.


하지만, 정부가 이러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화를 내봤자 내 성격만 버리는 일이다. 따라서 이번 글은 저 기사를 반박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의사는 치매 걸려도 환자 진료해도 괜찮다" 같은 걸 주장하는 게 아니다. 나도 그런 의사가 되는 게 싫고, 그런 의사에게 진료받는 게 싫으니까. 그저 저걸 보니까 생각나는 것들이 있어서 일단 두서없이 나열해 보고자 한다.


#1

정신질환자는 의사가 될 수 있는가?


의료법 제8조는 의료인(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조산사)이 될 수 없는 결격사유를 명시하고 있다. 그중 1항이 '정신질환자는 의료인이 될 수 없다'이다.


'정신질환자'는 모든 정신질환을 포함하는 것으로 원칙대로라면 우울증(이 결코 가볍다는 건 아니지만)조차 걸리면 의료인 자격이 박탈되는 것이었다.


2007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상기 조항이 정신질환의 경중을 불문하고 환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는 것이므로 기본권의 과도한 제한으로 판단했다. 또한 "일반인이 보기에 정신질환자 및 약물 중독자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리하여 상기 조항에 '단 전문의가 판단하여 보건의료 임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인정된 사람은 의료인이 될 수 있다'라는 조건 문항이 달리는 식으로 법 조항이 완화 개정되었다.



즉, 의료인이 우울해도 괜찮게 된 건 2007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23년 4월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정신질환자가 의료인 면허를 받을 수 없도록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07년에 왜 의료인 결격사유가 완화되었는지, 그 '인간에 대한 존중의 뜻'을 그분은 과연 알기나 할까? 본인은 언제나 제정신일 거라고 자신하나 보다.


내가 보기엔 정신질환자가 하면 안 되는 직업은 의료인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다. 높으신 분들이 겉으로는 인간 평등이 어쩌고저쩌고하셔도 속으로는 '정신질환자'를 경멸한다는 게 이번 뉴스에서도 보인다.


#2

의대생 시절. 한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나보다 몇 년 전에 입학하였으나, 계속 유급을 당하면서 나와 같이 병원 실습을 돌았고 결국 또 유급되어 내가 먼저 졸업했다. 의대 입학 땐 그래도 공부를 꽤 잘했을 텐데, 선배는 왜 그리되었는가? 바로 '조현병' 때문이었다. 당시엔 '정신분열병'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렸던 병이다.


"의대 공부가 너무 힘들어서 미쳐버렸다더라"라는 뒷말만 무성할 뿐 그분에 대해 우린 사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어린 의대생들에겐 선배는 그저 무섭고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다. '무섭다'는 건 조현병 증상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른다는 거였고, '성가시다'는 건 그분과 같이 실습 조를 꾸려서 단체 행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조현병' 환자라고 하면 무섭고 폭력적인 돌발행동 같은 걸 떠올리는 편견이 있는데, 막상 선배와 같이 다녀보니 생각보단 얌전한 (?) 사람이었다. 본인의 상태를 인지하고 약도 잘 챙겨 먹었는데, 한 가지 곤란한 점은 '무단 조퇴'였다. 분명 아침 브리핑 땐 같이 있었는데, 점심도 지나기 전에 어디론가 사라져 집에 가버리곤 했다. 선배는 그런 바람 같은 사람이었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도 없고 막지도 않았다. 실습 과가 바뀔 때마다 교수님은 "조원 1명은 어디 갔니?"라고 물었고 우린 매번 그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음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는 게 일상이었다. 선배는 결국 태도 불량 때문이었는지 또 유급하고 우린 무사히 졸업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의 행방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선배는 어떻게 되었을까? "학장님에게 선배의 아버지가 찾아가 무릎을 꿇고 울면서 "의사도 안 하고 죽은 듯이 살 테니, 제발 의대 졸업만은 시켜주십시오."라고 했다더라"라는 소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안타깝지만, 선배가 의사가 될 수 있겠냐? 그런 사람은 의사가 되어도 뽑아주는 원장도 없고, 찾아가는 환자도 없을 거야'라는 게 다른 의대생들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선배는 우리 기억에서 사라졌다.


의사는 정신질환자를 이해해 줘야 한다고 배웠지만, 막상 현실은 나부터도 그러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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