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보내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는 것은
'준비'할 시간이 없다고 했지만, '응모'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내겐 지난 응모 글들이 있으니까. 고백을 퇴짜 놓은 여자에게 바로 다음 날 또 고백하듯이. 바뀐 내용도 전혀 없는 작년의 그 브런치북으로 심사위원에게 또 들이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게 민망하지만, 딱히 못 할 일도 아니다. 심지어 버튼만 몇 번 누르면 되고 간편하기까지 하니. 올해는 '아 맞다! 마감되었나?' 같은 느낌으로 생각났을 때 후다닥 해치웠다. 그건 마치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 번호표를 뽑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느낌이었다.
날 찬 사람은 다음에도 또 찰 확률이 높고, '내가 노력하면 날 좀 봐줄지도?'라는 희망만을 흘릴 뿐이지 않았던가. 그걸 20대 연애에서 이미 배우고 넘어가야 했는데, 아직도 못 배웠는지 그 거리감을 가늠하고 손절하는 게 지금도 참 안 되고 어렵다. 하긴 인생의 모든 도전마다 그랬다.
브런치는 이번 공모전에 10,500편의 작품을 응모 받았다고 한다. 작년에 8,800편의 작품이 응모되었으니 무려 19.3%가 증가한 것이다. 늘 "역대급"이라고 홍보하는데, 지난 공모전의 낙선작들이 쉽게 재응모를 할 수 있는 구조상 당연한 현상이라고 본다. 그렇다곤 해도 새 작품이 최소 2천여 편은 된다는 말 아닌가... 그 성장세가 놀랍다. 내 주식이나 좀 이렇게 올랐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질주 중인 게 참 씁쓸하다.
어쨌든 응모 작품들이 10,000편을 돌파했다는 건 뭔가 상징적이라 나의 '번호표'를 확인해 보게 된다.
1년에 10편이라는 건
10,000편을 다 뽑아주려면 1,000년이 걸린다는 명료한 계산.
브런치가 모든 작가님을 소중히 여기어 다 챙겨드리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날고 긴다는 현 권력자조차 5년을 못 채우게 생겼는데, 1,000년 뒤에 브런치가 있기나 할지... 따라서 난 "열심히 쓰다 보면 언젠가 당선되실 거예요" 같은 말은 차마 못 하겠다.
하지만, "어차피 안 되니까 쓰지 마라" 일침 같은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결국 브런치에서 대체 가능하고 무의미한 엑스트라A가 퇴장하면서 남기는 넋두리 같으니까.
그럼, 무엇을 위해 쓰는 '노력'을 투자해야 하나. 딱히 답이 없는 듯하다. 사실 이 글도 왜 쓰고 있는지 모르겠으니.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땐 누구나 꿈꾸듯 '인생의 파이프라인 하나 더 추가해 볼까?' 같은 목적도 없진 않았는데, 환상의 석유를 시추하겠다고 땅 파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이래선 오래 가지 못하겠다 싶다.
그러니 아무래도 "그냥 쓴다" 혹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브런치를 한다"라고 말해야겠다. 비관도 낙관도 없이, 의미도 허무도 없이 2025년은 그냥 쎃어봐야겠다. 내년은 운이 반등할 거라고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