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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Sep 19. 2021

막다른 골목에서 그의 글을 다시 읽어본다

직접 글을 써보니 작가님의 글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의사 출신 작가는 많다. 그러나 사람들이 꽤나 알 정도로 유명한 작가는 손에 꼽을 것이다. 내가 의대생 땐 '시골 의사' 박경철 작가님이 유명했다. 많은 의대생과 의사들이 그를 벤치마킹하여 책을 써볼 생각을 했을 것이다. 병원 생활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을 때가 많았고, 그저 그걸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하면 작가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선배 P도 그런 꿈을 가진 분이었다.


학생 시절 P와 잠시 음료수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었는데, P는 자신의 의대생 시절을 일기로 기록하고 있다고 영업 비밀같이 말했다. 이걸 다듬으면 책으로 낼 수 있을 거라고. 의대 생활, 병원 실습, 인턴, 레지던트로 이어지며 소재는 계속 나올 거라고. 후배 앞에서 자신의 꿈을 말하는 선배의 모습이 나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도 P의 책은 나오지 않았다.


졸업 후 서로 바빠서 자주 만날 수 없었지만 그래도 P 선배는 가끔가다 한 번 정도는 만나곤 했다. P는 항상 꿈이 많은 분이었다. 다른 말로는 사업가 체질이라고 할까. 그의 전공과목도 그에게 딱 어울리는 과였다. 만날 때마다 우린 여러 가지 재미있을 것 같은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핫이슈라고 해도 좋고, 사업 아이템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선배와의 대화에서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지만 그는 늘 "오늘도 이야기 잘 '나누었다'"라고 하곤 했다. 난 P가 지금도 일기를 쓰고 계신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글을 한 번 써볼까 한다고 했을 때 P는 "'브런치'라는 게 있는데 한 번 해보면 어떠니?"라고 했다. 그게 벌써 4년도 더 전의 이야기인데, 심지어 나는 P가 말하기 전에도 이미 브런치의 존재를 알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브런치는 2015년 6월에 서비스를 개시했다.) 다만 수줍음과 걱정이 많은 나는 인터넷 공간에 내 이야기를 적는 것에 대해 과도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시작을 못 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글을 전혀 안 쓰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한국의 대표 블로그 서비스인 네이버나 다음, 티스토리 등등도 아닌 정말 외국의 생소한 블로그에다 글을 몇 개 써 놓고 반응을 살펴보곤 했을 뿐. 당연한 거지만 하루에 방문자가 한 명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쩌다 2~3명 방문하면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이 왔지? 어떻게 오셨어요?'하고 신기할 정도였으니 금방 흥미가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사람 없는 황야에서 홀로 나무 심는 노인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웹툰 같은 걸 좀 그리다가 흐지부지 관뒀다. 그 블로그는 지금도 있긴 한데, 아마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브런치를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면 나도 '출간 작가'라는 타이틀 하나 정돈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면 '해보니까 확실히 나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겠어'라고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을까? '만약에'라는 가정은 언제나 이미 늦은 법이다.


P와 브런치 이야기를 했을 때 P는 요즘 떠오르는 샛별이었던 의사 작가 A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A에 대해서는 물론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P는 자신이 요즘 존경하는 인물로 A를 꼽으며 그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했다. A는 사실 크게 보면 세대만 다를 뿐이지 박경철 작가님과 수법(?)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의사가 병원 이야기, 환자 이야기를 하는 것. 어쩌면 의사라면 숨 쉬듯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A는 그걸로 유명해졌다. P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시 A를 보며 약간의 조바심이 들었던 것 같다. 박경철 작가님은 아예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그의 성공에 별 느낌이 없었지만 A 작가님은 비슷한 연배였기 때문이었다. 나도 열심히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인생의 성적표가 훅 날아온 기분이 들었다. A는 지금 이만큼 성공했는데, 넌 지금 여기서 뭐하냐고. 하긴 그렇게 따지면 동년배의 누구는 지금 북쪽에서 최고 권력자를 하고 있고 남쪽에서도 누구는 어디 고위직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아예 다른 세상 이야기 같고 A는 같은 (?) 의사라서 좀 더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었다. 난 지금 뭐 하고 있는 걸까.




A 작가님은 동년배 의사들 사이에선 꽤 유명했다. 다만 그게 꼭 좋은 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와 함께 수련했던 동료, 선후배 의사들의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주워 들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1. 그는 관심종자다.


신기하게도 사건사고가 있는 자리엔 그가 있었다. 일본에도 비슷한 인물이 있는데, 명탐정 X난이라고. 사실 그 정도쯤 되면 사실 A가 사건의 원인이지 않을까 의심해봐야 할 정도일 텐데, 이슈를 잘 끌어주니 방송국에서는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본인도 유명해지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이것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방송에 나와서 유명해지고, 유명해지니 책이 팔리고, 다시 유명해서 방속국이 찾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이러한 과정이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그가 이렇게 뜰 줄 몰랐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가 결국 뜰 줄 알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냐면 그는 무명시절에도 좀 '특이 (관심종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감수성이 풍부했다고 볼 수 있겠다)'했었다고 하니까.


또한 아무래도 그가 글을 쓸 땐 등장인물들을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보니 글에 등장하는 A는 마치 자기 혼자서 다 일하고 고뇌하는 것처럼 그려질 수 있었다. 물론 제대로 된 각색을 거쳤다면 주인공 A와 실제 A는 별개의 인물이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 점이 동료 의사들이 보기엔 안하무인에 관심종자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가 안 유명했다면 비판받을 일도 없을 테니 시기 질투의 요소도 없진 않았을 것이지만.


2. 그는 환자 팔이다.


문제는 그의 방식이 논란의 여지가 많았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의료법 제19조에 따른 '비밀누설 금지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병원 이야기를 할 때 항상 조심해야 한다. 다른 의사들이 A보다 편안하고 평범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닐 텐데 잠자코(?)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A는 굉장히 아슬아슬한 선을 타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은 이슈일수록 각색이 덜 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야기가 '날 것'일수록 생동감이 넘치고 독자들은 눈앞에 피가 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자칫 소송감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A는 무사히 잘 넘긴 것으로 보인다. 그건 A의 이야기가 환자에게도 도움 (여론 등)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로 윈-윈인 그런 관계이다.


그렇다고 A의 방식에 문제가 없다곤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방식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의사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사람들이 오히려 A를 두둔하며, 비판하는 의사에게 "못 배운 의사가 시기 질투하네. 먼저 인간부터 되어라!"라고 욕했다는 것이었다. 이미 그에겐 '팬클럽'이 생겼던 것이었다. 유명하다는 건 그런 힘이 있었다.




이처럼 이런저런 논란이 좀 있긴 하지만 A 작가님은 현재 비교적 순탄하게 성공적인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P 선배와 나는 A 작가님을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P 선배는 솔직히 작가보단 사업가가 어울리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자기 앞길을 잘 개척해 가고 계신다. A나 P나 다 잘 달리고 있는데 나만 방향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늦게나마 브런치를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글은 쉽게 써지지 않았다.


결국 나도 대놓고 말하지 않았을 뿐 잠깐이나마 A 작가님의 글을 쉽게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그의 노력과 시간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고 대단한 건 대단하긴 한데, 솔직히 소재는 넘쳐나지 않았는가 하고 말이다. A가 아니어도 의사라면 누군가 그런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우연히 운때가 잘 맞고 과감해서 (상기 논란 참고) 인기를 얻었다고.


지금 난 공모전 출품용 글을 하나 쓰고 있다. 이 글은 밀리의서재X브런치 공모전 때 썼던 글 (지금은 삭제됨)을 재구성해서 쓰고 있다. 말하자면 '퇴고'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렇다고 저번에 퇴고도 안 하고 제출한 건 아닙니다...), 다시 쓰면서 오히려 결론을 못 내서 막혀 있는 상태이다. 이미 다 쓴 글을 가지고 편집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결론이 안 나다니. 도대체 지난 글의 꼬락서니가 어떻게 된 모양인지 나도 모르겠다. '에세이'라고 해도 좋고 '팩션 (fact+fiction)'이라고 해도 좋을 글인데, 어쨌든 '일기'는 아닌 결말을 내려니 쉽지가 않다. 답답한 마음에 지난 공모전 당선작들의 글도 다시 읽어보고 A 작가님의 책도 다시 읽어보았다. 솔직히 내가 A가 될 순 없고 따라 해 봤자 아류일 거라 별 기대도 안 하고 책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아... A 작가님의 글이 다르게 보였다. 그제야 말이다.


부끄러웠다. A 작가님이 정말 '작가'이긴 하구나 싶었다.




물론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내 글은 여전히 결론이 안 나고 있다. 답답하기도 하고 잠깐의 번뜩임은 이쪽이 더 강해서 잊기 전에 간단히 적어놔야지 해서 이 글을 썼다. 글 쓰다가 딴짓으로 글을 쓰고 있는 셈이다. 간단히 써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진 건 덤이다. 원래 공부보다 잡담이 훨씬 재밌는 법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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