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109일 차
난 가끔 내가 너무 싫다. 지금껏 연애 한 번을 제대로 안 한 내가 너무 싫다.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우습게도 고백도 몇 번 받아봤지만 늘 혼자로 지내왔다.
처음엔 그저 겁이 났다. 난 이 친구를 좋아하지 않는데, 내 경험을 쌓자고 상처를 주면 어떡하지? 사람과 사람의 실은 붉고 굵어서 나중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데 나의 가벼움이 이 친구에게 큰 영향으로 돌아오면 어떡하지?
늘 무서웠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나자고 생각했다. 그럼 잘 안 돼도 내가 상처를 받고, 상대방은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오길 기다렸다. 그게 20대 초반이었다.
마침, 그때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난 혼자 지내는 것도 어려워하고 용기도 부족한 데 그 아이는 참 용기 있어 보였다. 심기체가 잘 균형 잡힌 친구 같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가갔고 점점 가까워져만 갔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다. 입대의 순간이었다.
점점 입대의 시기는 가까워졌갔고 주변에 조언을 구했다. 대부분의 조언은 비슷했다. 군대 가기 전에 사귀고 가는 건 정말 못된 짓이라고. 그렇게 내 첫사랑은 끝이 났다. 남몰래 전역만을 기다렸지만 그새 그 아이 옆엔 누군가가 있었다.
이때 한 가지 후회를 했다. 그래도 선택권은 그 친구에게 줬어야 한다고. 내 마음을 제대로 전해는 보았어야 한다고. 주변의 말만 듣고 결정한 내가 너무 후회스러웠다.
전역 후,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다 보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고 그렇게 내 20대 중반도 흘러갔다. 취업 후에는 다르겠지. 입사 후 소개팅도 자주 했다. 그리고 몇 번의 애프터와 고백도 2번 받았었다.
하지만 난 그 순간에 또 혼자를 선택했다. 똑같은 이유였다. 내가 이 친구를 좋아하지 않는데 만나도 될까? 하는 마음이었다. 난 상처받을 용기는 있지만 상처 줄 용기는 없다. 그래서 나한테 연애는 너무 어렵다.
대화를 하는 법도 듣는 법도 나를 가꾸는 법도 다 할 줄 알아도 딱 한 가지를 못한다. 누군가한테 상처 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렇다고 좋아하는 사람을 계속 찾기도 어렵다. 단순히 외모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 안정감, 태도 등이 멋져 보여야 좋아하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에서 '모태솔로'라는 말이 참 비수처럼 꽂힌다. 내가 정말 못나 보이고 한 없이 부족해 보인다. 주변에서 연애 얘기만 나오면 주눅이 들고 참 부끄럽다. 오늘 이 글을 적는 순간도 참 부끄럽지만, 익명이란 배경 뒤에 숨어서라도 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부끄러움과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짓말로 허황된 상상으로 포장하지 않고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아가고 싶었다. 물론, 난 연애를 빼면 정말 많은 것을 가졌다. 인생은 양자택일이라 하지 않던가. 적당한 몸도, 돈도, 안정적인 미래도 가졌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물질적인 것을 대부분 가졌지만 난 한 가지를 가지지 못했다. 저 용기 있는 자들이 누리는 가장 고귀한 가치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난 인격적으로 성숙해지지 못하나 보다. 인생을 고뇌하고 성찰해도 가장 중요한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심장을 드러낸 것처럼 두렵고 움츠리고 싶지만, 오늘을 시작으로 나를 더 사랑해줬으면 한다. 한 없이 못나 보이고, 부끄럽더라도 과거의 선택들은 어쩌면 최선이었을 거라고,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위로하며 나를 아껴줬으면 한다.
미래에서 오늘을 돌아봤을 때, 사람들에게 내 단점을 고백할 용기를 얻은 단초의 순간이었다고 기억하길 바란다. 사실은 부끄럽지 않은 하루였다고, 멀리서 보았을 때 정말 빛나던 순간이었다고 기억하고 싶다.